유정만리(有情萬里)

단야의 유정만리 1권 12화

썬라이즈 2023. 8. 13. 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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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가 무너지면 자유도 미래도 없다.

천지봉에서 남서쪽으로 2 십리쯤 떨어진 곳이었다.

계곡을 끼고 아름답게 가꾸어진 화원이 햇살아래 드러났다.

사방 100장은 족히 될 넓은 화원은 온통 국화꽃이 만발한 만화곡(萬花谷)이었다.

화원 입구에서부터 100장쯤 되는 길을 지나면 아담한 초막이 세 채 나란히 지어져 있었다.

 

초막 앞까지 쭉 뻗은 길은 금사(金砂)가 깔려있어 눈이 부셨다.

중앙에 있는 초막은 제법 컸다.

그 초막 앞엔 여러 명이 앉아서 쉴 수 있는 평상까지 놓여있었다.

 

무룡은 앞서가는 노인을 따라 국화꽃으로 만발한 화원을 가로질러 평상 앞에 다다랐다.

평상 앞엔 귀엽고 예쁜 두 소녀가 서 있었다.

소녀들은 신기한 것을 본 듯 무룡을 유심히 쳐다봤다.

 

“할아버지! 저들이 누구예요?”

“아시는 분이세요. 할아버지,”

두 소녀는 노인에게 질문을 하면서도 눈은 무룡에게서 떠나질 않았다.

“귀한 손님이시다.”

“귀한 손님이세요.”

한 소녀가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공자의 아버님이 다리를 다치셨다. 자영이는 방안에 자리를 준비하고 소연이는 침통을 준비해라.”

“네, 할아버지!”

“네!”

소녀들은 낭랑하게 대답하곤 초막으로 달려갔다.

 

무룡은 자신을 흘끔거리며 쳐다보는 소녀들을 개의치 않고 아버지가 편히 내릴 수 있게 지게를 기울였다.

“아버지! 조심해서 내리세요.”

“알았다. 거참 되게 아프네...”

“아이야, 아버지를 이리 모시고 들어오너라!”

“네 할아버지! 아버지, 저에게 기대세요.”

“음, 그래...”

“......”

 

초막 안은 제법 넓었다.

한쪽 벽으론 서가가 세워져 있었고 가지런히 꽂혀있는 서적이 적어도 수백 권은 되었다.

중앙엔 괴목(槐木)으로 만든 탁자가 놓여 있었으며 구석 쪽으론 커다란 화덕이 다섯 개나 나란히 놓여있었다.

서가 옆으론 침상과 잡다한 물건들이 잘 정돈이 되어있었다.

 

“아이야, 아버지를 이 침상에 눕혀라!”

“아버지, 이리로...”

“......”

만복철은 침상에 누워 바지를 걷어 올렸다.

정말 뼈가 상했는지 발목뿐만 아니라 발과 종아리까지 퉁퉁 부어있었다.

그런 아버지의 발목을 보고 무룡은 마음이 아팠다.

이제까지 한 번도 이런 경우를 당해 본 적이 없었던 아버지였다.

무룡으로선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계셨나 은근히 걱정이었다.

 

“아버지! 많이 아프시죠. 무슨 걱정이라도...”

“아니다. 내가 부주의해서 다친 것이다. 걱정 말거라!”

“빨리 나으셔야...”

“아이야, 아버지는 하루면 걸으실 수 있을 것이니 너무 걱정 말거라.”

“할아버지! 고맙습니다. 아버지를 꼭 낮게 해 주세요.”

“알았다. 이쪽으로 비켜 서거라!”

“......”

노인은 작은 나무상자를 들고 침상 옆에 앉았다.

상자엔 금색으로 된 반짝이는 길고 짧은바늘이 하얀 솜에 빽빽이 꽂혀있었다.

노인은 별안간 발목을 한차례 잡아챘다.

“악! 으-으-”

만복철은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다가 이빨을 꽉 깨물었다.

노인은 그런 것엔 신경도 쓰지 않고 금침을 꺼내 들었다.

무룡은 눈을 찔끔 감았다.

 

“오빠! 무서울 것 없어, 할아버지의 의술은 최고야!”

“우리 할아버지는 신의보다 더 훌륭하신 분이거든,”

옆에 서 있던 귀엽게 생긴 소녀들이 무룡의 얼굴을 쳐다보며 한 마디씩 해댔다.

무룡은 두 소녀의 얼굴을 쳐다보면서 고개만 끄덕였다.

 

노인은 여러 개의 금침을 발목 부위에 꽂았다.

그리곤 울상으로 지켜보는 무룡을 쳐다봤다.

 

“아이야! 한식경 후에 침을 뽑을 것이다. 그때면 아버지가 천천히는 걸으실 수 있을 것이다.”

“고맙습니다. 할아버지!”

무룡은 허리를 깊숙이 숙여 인사했다.

“오빠 두 참,”

“꼭 바보 같아,”

킥킥, 키들키들,

두 소녀는 무룡이 허리를 낫처럼 구부리자 우스웠던 모양이었다.

 

대략 한식경이 지나자 노인이 침을 뽑곤 미리 준비해 두었던 약초를 붙인 다음 헝겊으로 싸맸다.

 

“내일 아침에 붕대를 풀면 거뜬할 것이오. 그렇다고 무리를 한다면 도질 것이니 며칠은 지게를 지지 마시오.”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만복철은 발목을 만져보곤, 정중하게 인사했다.

 

밖은 날이 저물고 있었다.

산 속이라 일찍 어둠이 찾아든 것이다.

 

만복철 부자는 노인의 권고에 따라 하루 묵어가기로 했다.

그들은 간단히 저녁을 먹은 뒤 평상에 둘러앉아 국향이 그윽한 국화차를 마시며 이야길 나눴다.

 

무슨 일인지, 두 소녀는 저녁을 준비할 때부터 서로 준비를 하겠다고 나섰다.

특히 저녁을 먹고 차를 내올 땐 다투는 소리까지 들렸었다.

무룡 앞에 차를 내려놓을 때는 서로 눈싸움을 해댔다.

결국은 소연이란 소녀가 지고 말았지만...

“......”

어린 소녀들이지만 두 소녀의 마음을 누가 알겠는가,

소녀들은 만화곡에서만 살다 보니 사람구경조차 제대로 못하고 살아왔다.

그런 때에 같은 또래의 무룡을 만났으니 얼마나 좋았겠는가,

그들의 행동이 서로를 시샘한 것이겠지만 자연스러운 인간의 본능일 것이었다.

보기에도 아주 착하고 예쁜 소녀들이었다.

“선인께서 저 같은 촌부를 이렇듯 잘 대해 주시니 몸들 바를 모르겠습니다. 소인은 만복철이옵고 아들 무룡입니다. 무룡아! 선인께 인사를 올리거라!”

“할아버지! 만무룡이라고 합니다.”

“그래, 그놈 참, 나는 태궁(太弓)이라 불리네! 오래전에 불렸던 이름일세! 그리고 이 아이들은 내 손녈세, 이 애가 언니인 소연이고 이 아이는 동생인 자영이네! 무룡이 너하고는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것이야!”

노인은 근엄한 목소리로 자신을 소개하곤 무룡의 얼굴만 뚫어져라 쳐다보는 두 손녀를 소개했다.

 

“두 분 아가씨! 뵙게 되어 기쁩니다.”

만복철은 두 소녀가 맘에 들어 흐뭇했다.

“나는 무룡이다. 앞으로 잘 지냈으면 좋겠다.”

무룡도 두 소녀를 번갈아 쳐다보며 당당히 말하곤 고개를 숙여 보였다.

그런 무룡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난생처음 대하는 소녀들에게 인사를 하려니 쑥스러웠던 모양이었다.

 

“그런데 무룡아, 몇 살이냐?”

“할아버지! 저는 열세 살입니다.”

“허허, 열세 살이라, 자영이와는 동갑이고 소연이가 한 살 위이긴 하지만, 너희들 셋은 친구처럼 지내면 되겠다. 앞으로 친하게 잘 지내야 한다.”

“예, 할아버지!”

“네,”

“그럼, 소연이와 자영이는 무룡에게 이곳 구경을 시켜 주거라! 나는 대인과 이야기 좀 나누어야겠다.”

“네 할아버지, 가자 무룡아!”

“그래 가자.”

“......”

무룡은 두 소녀를 따라 달빛이 은은히 쏟아져 내리는 화원으로 뛰어갔다.

국화 향기가 얼마나 싱그러운지 마음까지 맑아지는 것 같았다.

 

“아까는 괜히 오빠라고 불렀네, 무룡아! 이 국화꽃들은 할아버지가 공들여 가꾸신 꽃들이야, 우리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네가 소연이, 정말 할아버지는 대단한 분이시다.”

“뭐 해, 빨리 와!”

앞서가던 자영이가 빽 하고 소리를 질렀다.

“알았어. 빨리 가자!”

무룡과 소연은 자영에게 뛰어갔다.

 

“무룡아! 나 잡으면 예쁜 선물 준다.”

그들이 쫓아오자 자영은 한길이나 되는 국화꽃 속으로 몸을 숨겼다.

무룡과 소연은 자영을 찾아 화원을 누볐다.

그렇게 달밤은 깊어만 갔고, 만복철과 태궁도 무슨 얘길 하는지 밤이 깊도록 이야기를 나눴다.

 

***

 

다음날 아침이었다.

조반을 마친 만복철은 화원 주위를 걷고 있었다.

다리는 평상시보다는 못했지만 걷는 데는 지장이 없을 정도로 좋아졌다.

만복철은 주위를 둘러보며 세상에 이런 곳도 다 있고나 경탄을 연발하고 있었다.

그때 무룡이 아버지를 찾아서 다가왔다.

 

“아버지! 걸을 만하세요.”

“선인께선 신의가 맞으시는 모양이다. 거뜬히 나았다.”

“잘 됐습니다. 그럼 아버지! 집에 가야지요.”

“네 어미가 걱정인 게냐?”

“그럼요. 어머니가 얼마나 걱정을 하시겠어요.”

“......”

 

“무룡아! 뭐 해, 할아버지가 찾으시는데...”

자영이가 뛰어오며 손을 흔들었다.

“어허, 꼬마 아가씨! 넘어져요.”

“괜찮아요. 할아버지가 찾으세요.”

자영은 뛰어오자마자 무룡의 손부터 잡았다.

 

“야!”

“얘는 우리는 저쪽에 가서 놀자!”

“집에 가야...”

무룡은 손을 뿌리치려다 말고 아버지를 쳐다봤다.

“갈 때 부를 테니 아가씨와 놀고 있어라!”

만복철은 한마디 하곤 초막으로 걸어갔다.

 

무룡은 자영과 함께 국화꽃 사이를 누비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어리긴 했지만 그동안 느껴보지 못했던 이상한 감정과 야릇한 기분까지 느낀 무룡이었다.

하지만 그런 감정 보다도 신선 같으신 할아버지가 더 구금했다.

신선 같은 할아버지에 국화꽃으로 만발한 화원이 정말이지 신기할 뿐이었다.

게다가 여자아이들과 손잡고 놀았다는 사실까지 감사했다.

난생처음 겪은 일이긴 했지만 이성에 눈뜨게 한 사건이도 했다.

무엇보다도 여자는 남자와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무룡은 깨닫게 되었다.

 

무룡과 자영이 놀고 있는 동안 만복철과 태궁은 무슨 얘긴지 두 식경 이상 얘길 나눴다.

그렇게 시간을 보낸 만복철과 무룡은 태궁과 두 소녀의 배웅을 받으며 만화곡을 떠나올 수가 있었다.

 

 

그날 이후부터 무룡은 만화곡과 깊은 인연을 맺게 되었다.

그 인연으로 3일에 한 번씩 만화곡에 찾아가 태궁 할아버지에게 부족한 공부를 배우게 되었다.

무룡에게는 태궁 할아버지와의 만남도 특별한 인연이긴 했다.

하지만 두 자매와 맺게 된 인연이야 말로 특별하고도 특별한 운명적인 만남의 시작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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