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정만리(有情萬里)

단야의 유정만리 1권 10화

썬라이즈 2023. 8. 11.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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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소년 만 무룡

 

흘러가는 세월을 누가 막으랴!

12년이 후딱 지나갔다.

 

12년 전,

만무가의 멸문으로 중원무림은 일대 혼란을 겪었다.

그 당시 소림사와 오대방파가 만무가의 멸문을 마교(魔敎)의 만행으로 규정하고 마교 타도(打倒)의 기치를 높이 내걸었었다.

그러나 결전을 치르기도 전 높이 내걸었던 마교 타도의 기치는 꺾이고 말았다.

 

그 후,

마교 타도가 무산된 것은 소림사는 물론이고 무림방파들이 마교에 의해 봉문을 당했기 때문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중원무림은 이미 마교의 손아귀에 들어갔다고 보는 것이 옳았다.

그럼에도 마교는 무림에서의 활동을 중단하고 어느 날 갑자기 중원무림에서 자취를 감췄다.

 

마교가 사라진 직후,

무림인들은 중원무림의 안녕과 질서를 지켜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무림맹을 결성하였다.

그리고 1년 만에 명실공이 무림을 이끄는 정도무림맹으로 부각(浮刻) 되었다.

그렇게 중원무림은 정도무림맹의 지도하에 큰 사건 없이 안정을 찾아갔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만무가의 멸문은 세간의 얘깃거리에도 끼지 못할 정도로 잊혀갔다.

만무가가 멸문한지 12년이라는 세월이 덧없이 흘러갔음이었다.

“.......”

 

어둠이 깔린 산자락을 따라 은은한 달빛이 내려앉고 있었다.

은은한 달빛에 초옥 한 채가 드러났다.

환하게 불이 밝혀진 방문엔 그림자가 어른거렸고 밝은 목소리가 방 안에서 흘러나왔다.

 

“공부도 좋지만 무룡이를 너무 닦달하는 것이 아니요.”

“무룡아! 너도 이 어미가 심하다고 생각하느냐?”

“아닙니다. 어머니! 소자는 어머니 가르침에 만족합니다.”

“그것 보세요. 저는 집에서 글공부를 열심히 가르칠 테니 서방님은 산에서 부족함이 없도록 자연공부나 잘 가르치세요. 공연히 아들 공부에 방해하지 마시고요.”

“어머니, 걱정 마세요. 소자는 아버지한테 자연공부를 열심히 배우고 있습니다. 그렇지요 아버지!”

“그럼, 산에 대해선 이젠 도사가 다됐지,”

“......”

호롱불에 드러난 방안,

노부부와 소년이 둘러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노인은 만복철이라는 사나이였고,

여인은 마마자국에 박색의 여인이었다.

그러고 보니 소년은 업둥이로 다시 태어난 아기 무룡이었다.

 

세월을 무상하다고 했던가,

여인은 노파가 되어 주름살이 쭈글쭈글했다.

만복철도 반백에 턱수염까지 백염이 되었고 몸집도 작아 보였다.

무엇보다도 아기였던 무룡은 듬직한 소년으로 성장했다.

언뜻 보기엔 무룡의 나이가 15, 6세쯤은 된 것 같았다.

그만큼 무룡은 덩치도 컸고 당당해 보였다.

 

노인이 된 만복철은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자랐다.

다만 가훈(家訓)을 생활의 일부로 여기고 살았다.

착하게 살아라!

열심히 일하라!

일한 만큼만 먹어라!’

이것이 아버지가 어린 만복철에게 가르친 가훈(家訓)이자 교육의 전부였다.

만복철은 아버지 말씀에 따라 오늘날까지 성실하게 살아왔다.

이것만 보더라도 만복철은 효자에 심성까지도 선하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만복철이 지금의 부인을 아내로 맞아드리게 된 것도 만복철만의 복일 것이었다.

부인의 이름은 조추월(趙秋月),

이상하긴 했지만 부인은 처음부터 자신의 신세 내력을 밝히길 꺼려했었다.

단지 자신의 이름이 조추월이며 서당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살았다고 밝혔다.

 

그러니까 30년 전이었다.

만복철은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화장(火葬)을 하고 나날을 낙심에 빠져 살았다.

그렇게 낙심에 빠져 살던 만복철은 산다는 것이 허무하게 느껴졌고,

삶에 대한 애착이고 뭐고 만사가 귀찮고 의욕까지 상실하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나날을 보내고 있었을 때였다.

한 여인이 초옥으로 찾아들었다.

갈 곳이 없다는 여인은 박색에 곰보였다.

 

만복철은 여인과 대화를 나누는 동안 차츰 이성을 찾게 되었다.

그때 여인의 말이면 모든 것이 이루어질 것만 같았다.

그만큼 여인은 달변이었으며 사람의 마음을 헤아릴 줄도 알았다.

만복철은 차츰 여인으로부터 위안을 받게 되었고,

삶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되었다.

사람을 평가할 때는 눈에 보이는 것보다 심성이 더 중요하다는 것도 깨달았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함께 지내다 보니 알게 모르게 서로 정이 들었고,

자연스럽게 부부 연을 맺게 되었던 것이다.

 

그들은 20년을 금실 좋은 부부로 살았다.

그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이 행복했으나 부부에겐 자식이 없는 것이 걱정이라면 걱정이었다.

그런데 천지신명의 도움으로 아들 무룡을 얻게 되었고,

부부는 그동안 누리지 못했던 행복까지 누리며 오늘날까지 살아오고 있었다.

 

우- 우- 우--

멀리서 들짐승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이젠 건너가거라!”

“그럼 어머니, 아버지, 편히 주무십시오.”

“......”

저녁을 먹고 담소를 나눈 시간은 정확히 한식경이었다.

무룡은 부모님께 인사하고 자기 방으로 돌아왔다.

 

무룡의 방은 큰방에서 쪽문을 열면 바로 대여섯 평 남짓한 방이었다.

들창 밑엔 밥상 같은 낡은 책상이 놓여있었다.

그리고 대나무를 엮어서 만든 작은 서가엔 어디서 구했는지,

누렇게 바랜 서책들이 한 50여권 빽빽이 꽂혀있었다.

 

무룡은 방으로 들어오자마자 책상 앞에 앉았다.

책상 위엔 서책 한 권이 놓여있었는데 겉표지가 뜯겨 나간 서책이었다.

서책은 사람형상만 그림으로 그려진 서책인데 그림들은 무술을 익히는 연결 동작들이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그림 옆에 작은 글씨로 그림에 대한 해설이 쓰여 있었다.

 

‘어머니께서 무공수련에 대한 말씀은 없으셨지만 무공서적을 탐독하게 하신 특별한 연유가 있으실 텐데, 아버지도 말씀이 없으시니, 음~ 어머니의 깊은 뜻은 헤아릴 길이 없고, 아버지의 천근바위 같은 마음은 한 치도 들여다볼 수가 없으니 정말 답답하다. 그래 언젠가는 말씀들이 계시겠지,’

무룡은 잠시 눈을 감았다 떴다.

 

무룡은 3세 때부터 어머니의 엄격한 훈육아래 학문을 배우며 자랐다.

무룡의 교육문제는 철저히 어머니 손에 맡겨졌다.

그렇다고 아버지가 훈육을 안 했다는 것은 아니다.

아버지는 실제생활 속에서 아주 자연스럽게 몸으로 실천해 보이셨다.

무룡에게는 둘도 없는 산교육이었다.

무룡의 어린 시절을 일일이 열거할 수는 없다.

하지만 무룡은 어릴 때부터 계획적인 일정표대로 생활했다.

만약 일정표에 어긋나는 일이 발생하면 그 날은 굶었다.

이는 아버지가 해야 할 일을 미루신 날은 굶으셨다.

그랬기에 무룡이도 주어진 일을 끝내지 못하면 굶어야 했다.

 

무룡의 나이 5살 때부터 하루 일과가 고되게 시작되었다.

그러니까 무룡은 아침을 먹고 나면 일기(日氣)에 관계없이 거리가 400장이나 되는 계곡으로 달려가 물을 길어왔다. 그런 다음엔 어머니가 가르쳐 준 글공부를 복습했다. 점심을 먹고 나면 어머니에게 이끌려 밥상 앞에 앉아 글공부를 해야 했다. 그렇게 공부를 하다가 저녁나절이 되면 어머니는 저녁을 하셨고 어렸지만 무룡은 장작을 팼다. 그때쯤 아버지는 통나무를 산처럼 짊어지시고 돌아오셨다.

 

저녁을 먹고 난 다음엔 가족이 둘러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담소도 나누고 차도 한 잔씩 했다.

그렇게 보내는 시간은 대략 한식경, 그 후엔 또다시 공부를 해야만 했다.

 

무룡은 언제나 낮에 배운 글을 복습했고 부모님이 구해주신 서책들을 밤늦은 시각까지 읽었다.

그러다 ‘시간 되었다.’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리면 그때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그렇게 어린 시절부터 규칙적인 생활 속에 엄한 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그뿐이 아니었다.

무룡은 그 누구도 누려보지 못한 사랑을 듬뿍 받으면서 자랐다.

비록 가난하게는 살았지만 그들 가족은 풍족한 것에 연연하지 않았고,

일한 만큼 노력한 결실대로 그렇게 행복하게 살았다.

 

지금 만복철 부부는 늙었다.

그렇지만 부부의 얼굴엔 그늘이라는 것이 없다.

그들의 얼굴엔 항시 행복하고 만족한 미소가 어려 있었다.

부모의 영향을 받은 탓에 무룡도 항시 즐겁고 행복했다.

가끔 공부에 짜증을 부리기는 했지만 언제나 자신의 일엔 충실했다.

 

보름달이 반쯤 열린 들창으로 무룡의 얼굴을 훔쳐보고 있었다.

보름달이 훔쳐볼 정도로 무룡은 수려한 용모를 지녔다.

아직 제대로 균형 잡힌 몸집은 아니지만 탄탄해 보였으며 나이답지 않게 힘도 장사였다.

그리고 몸 빠르기가 맹호를 능가할 정도로 날렵했다.

그것은 어머니가 틈틈이 읽고 배우라며 건네준 무공비급 때문이었다.

 

무룡은 일부러 시간을 내어 무공을 익힌 것은 아니다. 다만 어떤 책이든 한번 보게 되면 내용을 모두 기억했기에 흉내라도 낼 수가 있었던 것이다. 특히 아버지를 따라 나무를 하러 갈 때도 그랬고, 물통을 들고뛰면서도 흉내를 내듯 움직였다. 그리고 산을 탈 때도 무룡은 비급의 내용대로 몸을 움직였다. 그렇게 행동한 것들이 자연스럽게 몸에 배였고 이젠 눈을 감고도 그 동작들을 펼칠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잘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처음엔 비급에 수록된 대로 행동을 하려니 힘들고 불편스럽기도 했었다.

그러나 끊임없이 반복적으로 행동을 하다 보니 차츰 숙달이 되었다.

특히 가벼워진 몸도 몸이지만 이상하게 힘든 일을 해도 힘들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렇게 모든 일에 자신의 능력이상으로 거침이 없게 되자 무룡은 은근히 무공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

그 후부터 나름대로 무공을 익히고 연구하는 계기까지 되었다.

그러나 무룡은 어머니 말씀대로 일체 자신을 내보이지 않았다.

 

어느 날이었다.

무룡은 어머니에게 무공비급을 왜 봐야 하는지, 그 연유를 여쭤본 적이 있었다.

그때마다 어머니의 준엄한 훈계(訓戒)를 들어야만 했었다.

 

‘때가 되면 자연히 알게 될 것이다. 사내대장부는 너무 나대거나 듬직하지 못하면 대장부가 아니다. 때를 기다릴 줄도 알아야 큰일을 해낼 수가 있다. 너는 큰일을 해내야 할 사람이다. 때를 기다려라! 알겠느냐, 무룡아!’

어머니의 따끔한 훈계 말씀이었다.

 

무룡으로선 모든 것이 의문이었다.

하지만 어머니의 훈계에 따라 두 번 다시는 의혹에 대해 묻지를 않았다.

오로지 주어진 일과 공부에만 매진했다.

 

지금 보고 있는 무공비급은 며칠 전 중요한 서책이라며 어머니가 건네준 비급이었다.

비록 표지가 떨어져나간 비급이긴 했다.

하지만 무룡은 비급의 내용을 세세히 음미하며 놓친 부분은 없는지 열 번째 검토 중이다.

 

그렇게 마지막장을 검토한 무룡이 만족한 미소를 지으며 비급을 덮었다.

그리곤 편하게 팔베개하고 누워 들창 밖 적송에 걸린 달을 바라보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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