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각이었다.
여랑은 내청에 앉아 뜰을 바라보고 있었다. 일찍 찾아온 초여름의 더위가 속 타는 가슴에 부채질했는지 여랑의 얼굴이 붉게 상기가 되어 있었다. 두 눈엔 앞으로 어찌할지 답답하다는 듯 깊게 그늘이 져 있었다.
“아가씨! 뭘 그리 골똘히 생각하십니까?”
“할아범! 답답했는데 잘 오셨어요.”
조사의가 다가오자 여랑이 반갑게 맞이했다.
언제 봐도 깨끗하게 차려입은 조사의는 덕망이 있어 보였다. 단지 깊게 침잠한 눈빛이 뭔가 안타깝다는 눈빛이었다.
“아가씨! 뭐가 그리 답답하십니까? 원세 때문입니까?”
“그래요. 할아범! 이사한다는 말도 못 들었는데 갑자기 짐을 싸라니, 정말이지 답답해서 죽겠어요. 혹시 할아범은 무슨 일인지 아세요.”
“무슨 일인지 이 늙은이도, 그냥 시키는 대로 하세요.”
“정말, 이사 가는 거라면 어쩌죠?”
“대인께서 하시는 일인데 어쩌겠습니까, 따라야지요.”
“할아범! 원세는 어떻게 해요. 저는 절대로 못 가요.”
원세를 생각하자 눈물부터 흘리는 여랑이었다.
‘음, 아무래도 돌아가는 상황이 심상치 않다.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질 거라고 예측은 했지만, 도대체 무슨 일을 벌이는데 이렇듯 은밀하게 하는지---’
조사의는 예측했던 일이 빨리 다가오자 당황했다. 그렇다고 어떤 일이 벌어질지 그것까지 예측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니 더 답답할 수밖에, 이젠 죽은 듯 지켜볼 생각이다.
“아가씨! 원세 걱정은 하지 말라니까요. 그놈은 꼭 아가씨한테 돌아옵니다. 하지만,”
“하지만, 뭐예요.”
조사의가 말을 끝을 흐리자 여랑이 다그쳤다.
‘이곳을 떠난다면 오랫동안 못 볼지도 모르는데---’
조사의는 원세가 나오기 전에 이곳을 떠나게 된다면, 그 이별이 이삼 년은 걸리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측했다. 그렇다고 여랑에게 그 얘길 해 줄 수는 없었다.
“혹시라도 말입니다. 아가씨!”
“말씀하세요.”
“아가씨! 이곳을 떠나게 되더라도 아가씨 마음은 변치 않을 것이라 믿습니다. 하지만 아가씨께선 그동안 숙지했던 무공을 배우시게 될 테고, 많은 젊은 인재들을 만나게 되실 겁니다. 그렇더라도 원세를 잊으시면 안 됩니다.”
“할아범! 지금 뭔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저는 요, 원세 밖에 없어요. 할아범도 그랬잖아요. 원세는 천생배필이라 헤어져서는 못 산다고요. 그런데 제가 어떻게 원세를 잊어요. 절대 그런 일은 없어요.”
여랑의 눈에 독기가 어리자 조사의가 흠칫했다.
여랑의 눈에 독기가 흐르다니 정말 뜻밖이었다. 조사의가 흠칫할 정도로 눈빛이 강렬했다는 것은 착하기만 했던 여랑에게 심적 변화가 일어났다는 증거였다.
여리고 착한 여랑,
하지만 여랑은 변했다.
원세가 동굴에 갇힌 날부터 말수가 적었다.
그때부터 마음을 독하게 먹었던 모양이었다.
“하하하, 됐습니다. 아가씨의 그런 마음이라면 아무런 문제도 없습니다. 이사 가든, 어디를 가든, 아가씨 곁에는 원세가 있을 겁니다. 소인도 곁에서 아가씨를 모시겠습니다.”
“깜짝, 놀랬잖아요. 저는 할아범 말이라면 싸라기눈을 함박눈이라고 해도 믿어요.”
“허허허! 감사합니다. 아가씨, 원세도 믿으세요.”
‘여랑이 독해지면, 아니지 독해지는 것은 상관없다. 제발 악녀만 되지 마라. 어차피 무공은 배울 테고, 그래 원래 심성이 착한 아이니, 내가 괜한 걱정인 게야!’
조사의는 너털웃음으로 흠칫했던 기분을 풀었다.
그때 멀찍이 떨어져 앉아 있던 유모가 무료한 지 입이 찢어져라, 크게 하품을 했다. 그리곤 멋쩍은 웃음을 흘리며 가까이 다가왔다.
“아가씨! 차라도 내올까요?”
“아닐세! 곧 저녁을 먹을 테니, 나중에 한잔 부탁함세!”
“그렇게 해요. 유모!”
“네 아가씨!”
해가 서산에 걸렸는지 길게 그림자가 드리운 시각,
조사의는 밝게 웃어 보이곤 뒤뜰로 향했다.
그런데 조사의 얼굴이 무척 불편해 보였다.
-----------계속
3월 1일 삼일절, 태극기를 답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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