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암동,
언제부터 누워 있었는지 원세가 대자로 누워 천장의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천장에 걸렸던 달은 보이지 않고 별들만 반짝거린다. 그리고 흐릿한 어둠 속, 광마는 변함없이 가부좌를 틀곤 눈을 질끈 감고 있었다.
‘할아버진 정말이지 대단한 할아버지라니까, 난 며칠도 저렇게 앉아선 살지도 못할 것 같은데, 할아버진 몇십 년 동안 저렇게 앉아서 살았을 테니, 잠도 앉아서 잤을 것 아냐?’
별들을 바라보고 있던 원세가 별안간 노인을 쳐다봤다.
원세는 암동에 들어온 후부터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 것들이 있었다.
첫째, 할아버지의 능력이라면 충분히 쇠사슬을 끊고 암동을 나갈 수 있었음에도 그렇게 하지 않은 이유가 뭔지, 그것이 첫째 의문이었다.
둘째, 세상에 만빙어라는 물고기도 처음 봤고, 그 만빙어를 먹고 지금까지 살아온 할아버지가 너무도 신기했다. 게다가 원세 자신도 만빙어를 먹고 음공까지 익혔다는 사실까지 의혹 덩어리였다.
셋째, 몇십 년 동안 가부좌를 튼 자세로 죽지도 않고 살아온 할아버지는 어떤 사람인지 진정한 나이는 몇 살인지, 정말로 이해할 수 없는 의혹이었다.
“원세야! 잡념은 무공을 익히는데 독이 되느니라!”
“할아버진 귀신같다니까, 남에 속마음을 꿰뚫어 보다니,”
“이놈아! 심안(心眼)을 뜨게 되면 눈을 감고도 볼 수가 있느니라! 그뿐인 줄 아느냐? 육감(六感)이 극에 달하면 오감(五感)도 따라서 배가 될 뿐만 아니라 백 장 밖의 말소리도 들을 수가 있다. 그리고 멀리 있는 것도 한눈에 알아볼 수가 있느니라! 무공에선 심안통(心眼通), 천리통(千里通), 천리지청술(千里地聽術)이라고도 부른다.”
심드렁하던 원세가 노인의 얘기에 빠져들었는지 발딱 일어나 앉아선 귀를 쫑긋 세웠다. 하나라도 놓칠 수 없는 천금 같은 말씀이기에 흘려버릴 수가 없었음이었다.
“그럼 할아버진 육감이 극에 달했다는 말씀이네요.”
“그렇다 이놈아!”
“자꾸 이놈아 그러시는데요. 할아버진 그 능력으로 이곳에 갇혀 계신 이유가 뭡니까? 못난 이놈은 도통 이해가 안 됩니다. 참말로 괴상한 늙은이라니까?”
“뭐 뭐라! 괴상한 늙은이,”
“내가 늙은이라고 그랬나요. 할아버지,”
어험, 험험,
‘못된 놈, 늙은이의 심기를 건드리다니, 련주님! 소인 광마를 용서하십시오. 사황련을 이 땅에 우뚝 세우고자 했으나, 암튼 구차한 변명은 하지 않겠습니다. 소인의 눈엔 도련님께서는 사황련의 주인이 될 자격이 없음입니다. 련주님의 뜻을 받들지 못해 죄송합니다.’
노인은 질끈 감았던 눈을 떴다가 재차 감았다.
50년 전이었다.
감숙성 한 산에서 치열하게 벌어졌던 정사 대전은 7일간 치러졌었다. 그때 사황련 련주와 정파의 칠대 고수 7명이 최후의 결전을 벌였었다. 그 당시 사황련 련주의 무공이라면 훗날을 기약한다든지, 7대 1의 결전이라도 최소한 양패 구상으로 끝났을 싸움이었다. 그러나 련주는 결정적 순간에 손속을 거두고 스스로 칠대 고수들의 무지막지한 공격을 맨몸으로 받았다. 그 결과 죽음이 경각에 미치는 치명상을 입었다.
정파 칠대 고수들은 사황련 련주가 스스로 대항치 않았음을 알고 있었다. 그런 관계로 련주를 데려가는 광마와 일부 살아서 도망치는 련도들을 막지 않았다. 그때 광마는 미친 사람처럼 소리쳤었다. 훗날 반듯이 복수할 것이라고, 그때 죽은 자들은 사황련 1000여 명과 정파 700여 명이었다.
전 사황련 련주 진강민은 향년 50세에 운명했다.
련주는 운명 직전 광마에게 유언을 남기니, 아들 진충원의 대부가 되어 아들을 보살펴 달라는 것이었다. 훗날 사황련이 중원에 우뚝 선다면 그 공은 광마의 공일 것이라며, 죽어서도 지켜보겠다는 말을 끝으로 숨을 거뒀다.
광마는 련주의 손을 잡고 맹세했다. 도련님을 보필하여 사황련의 대업을 완수하겠노라고, 그런데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지금 광마는 암동에 갇힌 신세로 살아가고 있었다.
‘뭔가 찔리는 게 있으십니까? 할아버지,’
원세는 못 들은 척 눈을 감은 노인을 쳐다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리곤 천장의 하늘을 올려다봤다.
‘이젠 30일쯤 남았나, 아버지, 어머니, 평안하시죠. 소자 원세는 괴짜 할아버질 만나 무공도 배우며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러니 소자 걱정은 하지 마세요. 아가씨도 잘 지내죠. 탕약은 잘 드시나 모르겠네. 공연히 쓰다고 전처럼 투정을 부리면 안 됩니다. 그때는 제가 버린다고 해서 받아먹긴 했지만 이젠 그러지 않을 겁니다. 그러고 보니까, 의원 할아버지도 보고 싶네요. 말씀은 잘 안 하셨어도 언제나 용기를 주셨는데, 일부러 환약도 만들어 주시고, 할아버지, 정말로 고맙습니다.’
원세는 밖에 나가게 되면 그동안 고마웠던 분들에게 제대로 감사했다고 인사를 하고 싶었다. 그리고 아가씨를 잘 모셔서 다시는 벌 받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천장의 하늘엔 여전히 별들만 반짝거렸다.
별들을 바라보며 상념에 잠겼던 원세가 눈을 감았다.
그렇게 밤은 깊어만 갔다.
------------계속
3월 1일, 태극기를 답시다.
긍정의 삶으로 파이팅!
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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