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투사의 아들

검투사의 아들 2권 33화

썬라이즈 2023. 3. 18.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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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부신 아침 햇살이 장원으로 달려왔다. 가을비라도 올 것처럼 잔뜩 흐렸던 하늘이 밤사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낱낱이 밝히려는 듯 하늘은 청명하기만 했다.

 

백리세가의 참혹한 광경은 경악 그 자체였다. 어찌 인간으로서 이토록 천인공노할 만행을 저지를 수가 있는지 치가 떨릴 뿐이었다. 화마에 폭삭 주저앉은 전각엔 아직도 화마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 주위엔 처참한 시신들이 즐비했고, 전각 안에 갇혔던 사람들은 화형을 당하듯 불에 타 한 줌의 재로 사라졌다.

 

아직도 꺼지지 않은 불씨에서는 고약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고, 피비린내와 불에 탄 시신들로 인해 누린내가 장원에서 10리 밖까지 코를 찔렀다. 그 냄새만으로도 장원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짐작이 되었다.

 

그때였다.

일단의 인물들이 장원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그들은 관복을 입은 자를 선두로 십여 명의 포졸들이었다.

 

 

그 시각 영악산 서쪽 끝에 솟아있는 거암봉(巨巖峰)이 햇살 아래 모습을 드러냈다. 그때 붉은 옷에 검을 든 여인이 가파른 능선을 힘겹게 오르고 있었다.

 

장 사범! 꼭 살아남으세요. , 산을 넘어야 한다. 할아버지께 놈들의 천인공노할 만행을 전해야 해,”

 

여인은 장기풍과 함께 도망친 백리수련이었다. 그런데 무슨 일을 당했는지 백의무복이 핏물에 흠뻑 젖어 있었다. 마치 붉은 물감을 풀어놓은 우물에 빠졌다가 나온 것 같았다. 수련의 옷자락은 여러 군데 너풀거렸다. 아마도 뒤쫓는 자들과 치열하게 일전을 치른 모양이었다.

 

수련과 장기풍은 살신성인의 행동을 보여준 집사로 인해 장원을 무사히 벗어날 수가 있었다. 그러나 이내 사황련 암행 무사들이 쫓아왔고, 그들은 가전 신법을 펼쳐 산속으로만 도망을 쳤다. 다행하게도 산세를 잘 알고 있었던 관계로 추적자들을 따돌릴 수가 있었다.

 

하지만 암행 무사들이 어떤 자들인가, 귀곡부에서 지옥훈련과 살수 수련을 받은 자들이었다. 수련과 장기풍은 무조건 깊숙한 계곡으로 숨어들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지치는 것은 그들이었다. 특히 어둠에 잠긴 험악한 산속을 뚫고 도망친다는 것 자체가 수련에겐 무리였다. 수련은 나뭇가지에 긁히고 돌부리에 넘어져 성한 곳이 없었다. 장기풍도 수련을 보호하느라 몸이 엉망이었다.

 

두 사람은 죽을힘을 다해 봉우리 하나를 넘었고 또다시 계곡으로 숨어들고 있었다. 그런데 언제 쫓아 왔는지 계곡에 내려서자마자 암행 무사들이 나타났다.

 

킬킬, 너희들은 우리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나타난 자들은 세 명이었다.

장기풍은 어쩔 수 없음을 직시하고 무사들을 막아서며 수련에게 도망치라고 말했다. 그러나 세 명을 상대하기엔 무리가 따랐다. 장기풍은 두 무사를 상대했고, 수련은 자신을 잡겠다고 나선 무사와 대치했다.

 

네가 백리수련! 적노께서 네년을 잡아 오라고 말씀하셨다. 순순히 따른다면 몸을 상하진 않을 것이다.’

 

어림없는 소리 덤벼라!’

 

수련도 검을 빼 들곤 무사를 상대했다.

 

쾌도(快刀) 장기풍, 아무리 장기풍이라고 해도 두 명의 암행 무사를 상대하기엔 버거웠다. 게다가 수련의 안위를 걱정하다 보니 몸의 움직임이 둔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장기풍은 두 무사를 상대로 일전을 치렀고 수련은 난생처음으로 생사를 건 일전을 치렀다. 시간이 지날수록 수세에 몰리는 것은 장기풍과 수련이었다. 그래도 다행한 것은 수련을 상대하는 자가 사정을 봐주고 있다는 것이었다.

 

수십 합은 교환했을 것이었다.

그때 장기풍이 두 무사를 일거에 몰아붙이곤 몸을 날렸다. 수련을 공격하느라 허점을 내보인 무사를 공격하기 위해서였다. 무사는 뒤쪽에서 득달같이 달려든 장기풍의 검에 속절없이 당하고 말았다. 무사는 비명을 지르며 거꾸러졌다. 잠시의 방심이 목숨을 앗아간 것이었다. 하지만 장기풍도 무사치는 못했다. 그 틈을 노린 두 무사가 협공했고 공격을 막아내지 못한 장기풍은 치명상을 당하고 말았다.

 

아가씨! 어서 도망을 치십시오.’

 

장 사범!!’

 

수련은 눈물을 머금고 도망을 쳤다.

장기풍이 치명상을 당한 몸으로 두 무사의 발을 얼마 동안이나 묶어둘 수 있을지, 그것이 문제였다.

 

수련이 산 능선으로 올라섰을 때까지 금속성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잠시 후 금속성 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수련은 무조건 앞으로만 내 달렸다.

 

그렇게 사력을 다해 달려온 곳이 하남성 경계를 넘어 섬서성에 위치한 거암봉이었다. 수련이 가고자 하는 숭산과는 정반대 방향에 있는 산봉우리였다.

 

, 여기서 쓰러지면---”

 

수련은 이빨을 앙다물며 걸음을 떼었다.

한 발짝을 떼어놓는 것도 힘겨워 보였다.

 

... 할아버지...”

 

수련은 한차례 휘청거리곤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 순간 기우뚱거린 수련이 곤두박질치듯 넘어지며 굴러떨어지기 시작했다.

 

아아악--”

 

낙엽 속에 불룩 튀어나온 돌부리를 밟는 바람에 수련은 그대로 넘어지고 말았다. 그렇게 수련은 능선 아래로 무한정 굴러떨어지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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