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졸간이라 장내는 잠시 적막이 감돌았다. 그때 검을 떨어트린 사나이가 목을 부여잡은 채 짚단처럼 거꾸러졌다. 역시 일검절명이란 이름답게 혁 노인은 검을 거둬들이며 놀란 듯 쳐다보는 사나이들을 직시했다.
“쳐 죽일 놈들 모조리 죽일 것이다.”
혁 노인이 눈을 부라리며 두 사나이에게 다가갔다.
“무슨 일이냐!”
휘익- 휙-
그때 싸늘한 일갈과 동시에 적노가 사나이들 앞으로 날아내렸다. 적노는 앞을 가로막는 호위무사 사마일을 단 세수에 죽이고 달려온 길이었다.
바로 그때였다.
한 사나이가 비틀거리며 수련에게 다가왔다.
그 뒤를 십여 명의 무사들이 쫓아왔다.
“장 사범! 어찌 된 일인가?”
“어르신! 모두 죽었습니다. 이일을 어떻게 합니까?”
“무엇이라! 아가씨 아무래도 피신을...”
집사는 정신이 아뜩했다.
어디서 몰려온 놈들인지 놈들은 사람을 죽이기 위해 몰려온 살인귀들이었다. 어찌해볼 틈도 없이 장원의 식솔들은 물론이고 무사들까지 전멸을 당한 상태였다. 집사로서는 이처럼 난감할 때가 없었다. 당장에라도 나서서 놈들과 사생결단을 내고 싶었다. 하지만 수련의 안위가 걱정이었다.
“클클- 남은 놈들은 이놈들뿐이다. 모조리 죽여라!”
“잠깐! 난, 일검절명이다. 그대가 수장인 모양인데 나와 일전을 치르는 것이 어떠한가?”
“뭐라! 나와 일전을...”
“그렇다. 일전을 치르겠는가?”
“......”
‘장 사범은 듣게, 나와 집사가 놈들을 막을 것이네. 그 틈을 이용해 낭자를 데리고 도망을 치게, 이 사실을 맹에는 알려야 하지 않겠나! 아셨는가?’
혁 노인은 빠르게 전음을 보냈다.
“그렇게 하시게, 장 사범!”
집사도 장기풍에게 눈짓을 보냈다.
지금 수련은 다리가 후들거려 제대로 서 있기도 힘이 들었다. 이곳까지 달려올 때는 분노가 치솟아 겁날 것이 없었다. 그러나 막상 현장에 달려와 끔찍하게 죽음을 맞은 시신들을 보자 그것이 아니었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현 상황이 악몽처럼 두렵기만 할 뿐이었다.
“아가씨, 기회를 봐서 이곳을 벗어나야 합니다. 정신 차리십시오.”
“장 사범, 으음...”
수련은 퍼뜩 정신을 차리곤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는 이미 포위를 당한 상태였다.
“클 클, 백리세가라 내가 직접 나섰거늘, 토끼 새끼들만 잡게 생겼군.”
“무엇이라! 토끼 새끼, 야 적발아! 오늘 나 일검절명이 네놈들을 쳐 죽여 저들의 한을 풀어줄 것이다.”
“클, 모처럼 만에 몸을 풀어볼까! 애송아, 나서라!”
“......”
‘집사는 내가 나설 때 탈출로를 뚫으시오.’
혁 노인은 힐끔 집사를 쳐다보곤 대갈을 터트렸다.
“뭐라 애송이! 이놈 적발아! 간다.”
적노를 위시해 포위한 자들은 20여 명이었다. 그들은 충천하는 화광(火光)에 저승사자처럼 보였고 수련을 위시한 세 명은 사자에 끌려갈 죽은 자들처럼 처량하게만 보였다. 그래도 눈을 번뜩이는 혁 노인과 집사는 비껴든 검을 단단히 잡으며 기회를 노렸다.
아주 잠깐의 시간이 흐르고,
혁 노인의 입에서 대갈이 터져 나왔다.
“이얍! 받아랏!!”
혁 노인은 성난 호랑이처럼 적발 노인을 덮쳐 갔다.
슉- 슈슉- 슉--
챙강, 챙, 챙강, 챙강...
눈 깜박할 순간이었다.
일장 높이로 날아오른 혁 노인이 직선으로 검을 찔러 갔다. 그러나 이미 방어 자세를 잡은 적노가 유연하게 걸음을 좌우로 움직이며 검을 휘둘렀다. 요란한 금속성에 이어 푸른 불꽃이 사방으로 튀었다.
“일검을 받아라!!”
“어림없다.”
두 노인이 공력을 얼마나 끌어 올렸는지, 움직임에 따라 바람이 거칠게 몰아쳤다.
챙강, 챙강,
하늘로 날아올랐던 두 노인은 교차하여 2장 거리에 내려섰다간 다시 도약했다.
휙- 휙-
챙강, 챙강, 챙강,
용호상박이란 말이 어울릴 것 같았다. 두 노인의 결전을 지켜보는 무사들과 세 사람은 손에 땀을 쥔 채 숨을 죽였다. 그런 사이 집사의 눈은 뒤쪽의 무사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일검을 받아라!”
“혈루혈사!!”
두 노인의 입에서 대갈이 터져 나온 순간, 두 노인은 마치 하늘로 솟구치는 붉은 용과 호랑이 같았다. 이를 지켜보는 무사들은 두 노인의 무위에 감탄하여 일시 눈을 떼지 못했다.
바로 그때였다.
집사가 몸을 날리며 소리쳤다.
“지금이다. 아가씨를 모셔라!”
휘익, 휙, 휘익--
크헉! 으악-
비명에 이어 두 무사가 가슴을 부여잡으며 쓰러졌다.
그 순간, 장 사범과 수련이 장내를 벗어나고 있었다.
“놈들이 도망친다. 잡아라!”
십여 명이 몸을 날렸다.
“네놈들은 내가 상대할 것이다.”
슈슉- 슉--
챙그랑, 챙강, 챙강...
윽, 큭,
으...
땅을 박차며 몸을 날린 집사가 뒤쫓는 자들에게 검을 휘두르곤 한차례 휘청거렸다. 그리고 이내 두 무사가 비명을 지르며 거꾸러졌고, 집사의 왼팔이 피보라를 일으키며 떨어져 나가는 것이 보였다.
“이놈! 죽어라!”
집사는 피분수가 솟구치는 것도 무시한 채 두 눈을 부릅뜨곤 무사들을 향해 재차 검을 휘둘렀다. 무사들이 집사의 기세에 일시 주춤거렸으나, 팔 한 짝을 잃은 집사는 살인귀 같은 무사들에겐 역부족이었다.
“죽어라! 늙은이- 이야얍!”
휘익- 푹!
“윽! 아가씨!”
한 무사가 몸을 틀어 공격을 피하곤 집사의 가슴에 검을 깊숙이 찔러 넣었다. 억울하다는 듯 눈을 부릅뜬 집사는 맥없이 무릎을 꿇은 채, 가는 신음을 토했다. 그리고 이내 고개를 꺾었다.
퍽!
휙, 휙, 휙--
집사의 가슴에 검을 쑤셔 넣었던 자가 검을 뽑으며 집사를 걷어찼다. 그리곤 수련이 도망친 곳으로 몸을 날렸다. 그 뒤를 다른 무사들이 바람처럼 쫓아갔다. 그때는 혁 노인과 적노도 마지막 결전을 치르고 있었다.
“이 애송이놈! 이번엔 내 차례다.”
슈슉-
챙강-
“크윽, 분하다.”
챙그렁--
적노가 분기탱천해 공력을 배가시키며 검을 휘두르자, 일검절명도 적노의 상대가 되지 못했던지 맥없이 당하고 말았다. 적노의 예리한 검이 혁 노인의 목을 그었음이었다. 처참히 죽음을 맞은 일검절명 혁 노인은 생에 아쉬움이 남았던지 부릅뜬 눈을 감지도 못하고 죽었다.
“도망간 년과 놈을 사로잡아 대령하라!”
“복명!!”
옆에 늘어섰던 무사들이 분분히 땅을 박차고 사라졌다.
“클클클, 백리청! 기다려라! 네놈을 죽여 백리세가를 영원히 지상에서 사라지게 할 것이다.”
일부 남았던 자들까지 장내를 벗어나자 남은 자는 적노 뿐이었다. 화광이 충천한 장내를 살피는 적노는 마치 불의 악마인 화마(火魔)처럼 서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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