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투사의 아들

검투사의 아들 2권 31화

썬라이즈 2023. 2. 23.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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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이 깔릴 때부터 불길한 기운을 감지한 듯 하늘은 잔뜩 흐렸다. 가을비라도 내린다면 머지않아 추위가 닥칠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도 장원은 평상시처럼 고요했다.

 

왜 이렇게 불안하지, 비가 오려나,”

 

언제 갈아입었는지 날렵한 무복 차림의 백리수련이 대청 앞을 서성거리고 있었다. 가을비라도 올 것처럼 흐린 하늘을 쳐다보는 수련의 얼굴이 흔들거리는 등불에 드러났다. 몸에 잘 맞는 흰색무복에 검을 든 모습 때문이었을까, 장옷을 입었을 때는 성숙한 아름다움이 눈길을 끌었다면 이번엔 야생미가 풍기는 아름다움이 눈길을 끌었다. 하지만 별 하나 보이지 않는 하늘을 쳐다보는 수련의 얼굴엔 수심이 가득 어렸다.

 

지금 수련은 세가를 책임진 가주다. 현재 세가의 식솔들은 60여 명, 여인들과 어린아이들이 대부분이었다. 검을 들고 적과 싸울 수 있는 사람은 회의에 참석했던 인원이 전부였다. 수련으로선 마음이 무거울 수밖에 없었을 것이었다. 아니 무서웠을 것이다.

 

 

밤은 자정으로 치달리고 있었다.

잔뜩 흐린 하늘 때문에 지척의 사물도 제대로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어둠이 사위를 뒤덮었다. 그런 때에 어둠을 뚫고 장원으로 다가드는 검은 인영들이 있었다.

 

스스슥-사사삭--

 

검은 인영들은 빠르게 장원으로 다가들었다.

 

지시한 대로 움직여라! 닥치는 대로 주살하라!”

복명!!”

불을 질러도 좋다.”

 

어둠 속에서 칼날 같은 일갈이 흘러나왔다.

 

스스슥---

어둠을 타고 움직이는 죽음의 사자들은 사방으로 흩어져 거침없이 장원의 담을 넘기 시작했다.

 

그나마 등불이 내 걸린 장원은 사물들이 흐릿하게 보였다. 그때 담장을 끼고 보초를 서던 무사가 섬뜩함을 느꼈던지 눈을 부릅뜨곤 주위를 살폈다. 그 순간, 무사가 있는 곳으로 두 명의 검은 인영이 기척 없이 다가들었다.

 

누구냐?”

슈슉-

으악!!

 

어둠을 가르는 칼바람 소리에 이어 끔찍한 비명이 어둠을 뒤흔들었다. 무사가 낌새를 느꼈을 땐 상대가 검을 휘두른 뒤였고 무사는 짚단처럼 쓰러지고 말았다.

 

아악!!

 

적이다. 기습이다.

 

난데없는 비명과 다급한 외침이 고요한 장원을 들쑤셨다. 거침없는 발걸음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왔다.

 

불이야! 불이야!!

 

-챙강, 챙강--

 

엄마!!

아버지!!

 

아아악---

 

한 전각에서 불길이 치솟기 시작했다.

가신들의 숙소에선 지옥도가 펼쳐지고 있었다.

 

모두 죽일 거야!”

 

흰색무복의 여인이 불길이 치솟는 전각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손에는 번뜩이는 검이 들려있었다.

 

아가씨! 어디 계십니까? 아가씨! 멈추세요. 아가씨!!”

 

집사인 양 노인이 대청으로 달려왔다가 불난 전각으로 달려가는 수련을 보곤 기겁해 뒤를 쫓았다. 그러나 수련의 귀엔 아이들의 비명만 들릴 뿐이었다. 지금 수련의 눈엔 분노의 불길이 활활 타올랐다. 태어나서 처음 당하는 끔찍한 일이지만 조금도 두려운 기색을 내보이지 않는 수련이었다.

 

! 챙강- 챙챙--

 

이얍!!

으악! 크헉!

 

저놈은 내 몫이다.

 

이얍!!

챙강-챙강

 

큭윽-!!

 

곳곳에서 병장기 부닥치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고 죽음을 맞이하는 비명이 끔찍하게 들려왔다.

 

세상에 이럴 수가?

나란히 지어진 다섯 채의 전각이 불길에 휩싸여있었다. 충천하는 화광에 주위는 대낮같이 밝았다. 여기저기 피를 흘리며 쓰러진 아낙들과 아이들이 보였다. 아직 숨이 끊어지지 않은 아이들 입에선 고통의 신음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불길 속에 갇힌 사람들의 아비지옥(阿鼻地獄)은 상상만으로도 몸서리가 쳐졌다.

 

클클, 저 계집이 백리청의 손녀다.”

계집은 사로잡아라!”

네가 백리청의 손녀렷다.”

 

수련이 전각 앞에 다다르자 흑색무복에 적색머리띠를 한 세 명의 무사들이 앞을 가로막았다.

 

휘익-

 

한 노인이 수련 앞으로 날아내렸다.

뒤를 쫓아온 집사였다.

 

아가씨! 비켜서십시오.”

그렇게 하시게 낭자!”

 

혁 노인, 일검절명이 정원수 옆에서 불쑥 튀어나와 무사들을 막아섰다.

 

늙은것들이 감히 앞을 가로막아!”

무엇이라! 이 천인공노할 놈들 난, 일검절명이다.”

말이 많다. 쳐 죽일 늙은이 얍!!”

 

볼 것도 없었다.

앞에 나섰던 자가 이죽거리곤 순간적으로 몸을 날렸다.

 

휘익- 슈슉--

 

사나이의 검에서 푸른 검기가 일렁인 순간, 날카로운 검 끝이 일검절명의 미간을 향해 날아들었다.

 

어림없다. 이야얍!”

 

일검절명의 입에서 대갈이 터진 순간이었다. 흐릿한 인영이 우측으로 몸을 틀며 언제 뽑아 들었는지 검을 후려치고 있었다. 일촉즉발의 순간이었다.

 

챙강, 챙그랑-

크헉!

 

푸른 불꽃이 사방으로 튀는 가운데 금속성이 귀청을 때렸고 누군가의 입에서 괴로운 신음이 흘러나왔다.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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