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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라 5

악마와 거래했다. 30

2020년 1월 7일 새해를 맞이한 지 7일째다. 오늘도 나는 고당봉에 올라가 경자년(庚子年)에는 꼭 손자가 벌떡 일어날 수 있게 해달라고 천지신명께 빌고 또 빌었다. 그렇게 천지신명께 빌고 있을 때였다. 괴상하게 생긴 적발 노인이 홀연히 나타나 자신을 신선이라고 소개했다. 나는 놀라긴 했지만, 산전수전 다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당당한 척 내 소개를 했다. 그리고 물었다. 내게 뭔 볼일이냐고? 사실 신선이라면 편견인지는 모르겠지만 외모부터가 청수하고 위엄이 있으며 백염을 멋지게 기른 편안한 인상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노인은 치렁치렁한 적발에 먹빛 장포를 입었고 마주치기조차 싫은 눈빛에 붉으락푸르락하는 얼굴도 최악이었다. 꿈에서도 만나고 싶지 않은 그런 노인이었다. 나는 적발 노인이 청수한 외모의..

악마와 거래했다. 15

'아저씨 말대로 경찰에서 사건을 덮었다면, 그냥 둘 수가 없지, 그런데 무슨 수로 증거들을 찾지, 그동안 할아버지는 울화통에 정말이지 죽을 지경이었을 거야,‘ 명상 중이던 대박이의 얼굴이 별안간 일그러졌다. ‘그동안 할아버지는 일기를 쓰셨잖아, 일기장에 단서가 될 만한 얘기를 써 놓으셨다면 정말 좋을 텐데, 분명 할아버지는 부모님 사건이 의도적으로 벌인 뺑소니 사고라고 하셨어, 자신이 범인을 잡지 못하고 죽으면 나보고 부모님 원수를 꼭 갚으라고까지 말씀을 하셨잖아, 아저씨에게 다시 물어보자.’ 대박이는 사고당하기 전의 기억뿐이었다. 사고 후 3년간의 기억은 없다. 한날 할아버지는 대박이를 앉혀놓고 말씀하셨다. ‘대박아, 네 부모님 뺑소니 사고는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사고를 낸 것이다. 근처에 cctv가 있..

악마와 거래했다. 13

으 아아아, 별안간 적발 노인이 고속열차의 속도로 솟구쳐 올랐다. 대박이는 심장이 내려앉는 기분에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괴인 할아버지 앞에서는 절대로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던 대박이었다. 그런데 약한 모습을 보이고 말았다. 대박이는 이빨만 으드득 갈았다. “네놈은 앉아있을 자격도 없다. 그대로 서 있거라!” 언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주위는 고요했다. 바람도 멎었다. 두 사람은 예의 칼바위 위에서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다. 대박이는 서 있었고, 적발 노인은 가부좌를 틀고 앉아있었다. 그런데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인간이 적발 노인 옆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사나이는 대박이를 불쌍하다는 눈빛으로 쳐다봤다. 언제 어떻게 나타났는지 대박은 보지도 못했다. 사실 칼바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

악마와 거래했다. 11

2017년 3월 15일, 오늘부터 일기를 쓰기로 했다. 사랑하는 손자 대박이가 뺑소니 교통사고를 당한 지 꼭 한 달째다. 의사 말로는 뇌사상태는 아니라고 한다. 그런데도 의식이 없고 움직이질 않는다. 다행스럽게도 미음을 먹이면 곧잘 받아먹는 것이 신기할 뿐이다. 고무적인 현상이라는 의사의 말과 깊은 잠에 빠진 것 같다는 간호사의 말에 위안을 삼았다. 우리 대박이가 깊은 잠에서 깨기만 한다면, 우리 대박이가 거짓말처럼 벌떡 일어날 것만 같다. 2017년 3월 16일, 새벽에 산에 올라갔다. 천지신명께 우리 대박이를 살려달라고 기도했다. 마누라가 생전에 정화수(靜閑水)를(靜閑水) 떠놓고 비는 모습이 문득 떠올랐다. 마누라가 손자를 살리려거든 기도를 하라는 계시 같았다. 그래서 날마다 천지신명께 빌기로 했다...

악마와 거래했다. 10

3월 15일, 안 여사네 가족이 이사를 왔다. 그리고 집들이는 1층 식당에서 하기로 했다. 그동안 힘이 되어준 분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리는 것이 좋겠다는 홍 씨 아저씨의 말에 따른 것이었다. 대박이는 모두에게 감사했다. 특히 홍 씨 아저씨와 간병한다고 고생하신 아줌마가 정말이지 고맙고 감사했다. 저녁이 되자 손님들이 식당으로 몰려왔다. 손님들은 대부분 시장에서 장사하는 상인들이었고, 식탁에는 미리 준비한 고기와 떡, 술, 음료수가 차려졌다. 손님들은 집들이하면 빠지지 않는 화장지와 세제 등을 들고 왔다. 시장슈퍼마켓을 운영하는 나 씨 아저씨는 통도 크게 주방세제를 박스 채 들고 오셨다. 함께 온 나씨 부인은 뭐가 못마땅한지 도끼눈으로 남편을 흘겨봤다. 아마도 세제를 박스 채 들고 와서 화가 난 모양이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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