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사랑/어린이 사랑
감꽃
5, 아범아! 고맙다.
글/썬라이즈
오늘따라 집안이 북적거렸다.
멀리 있다던 큰아들이 며칠 전에 왔고, 그 바람에 자식들이 다 모인 모양이었다.
자식들이 일일이 나는 누구라며 인사를 했으니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누가 누군지 하나도 알아보지 못했을 것이다. 정말이지 애길 들었음에도 누가 누군지 정확히 알지 못 했다. 그냥 눈치로 큰애, 둘째, 큰딸, 막내딸 등으로 건성건성 대답했을 뿐이었다.
그뿐 아니라 손자들이라고 인사를 하는데 언제 이렇게 컸는지 도통 이해를 못했다. 초중등학교에 다닐 때의 기억만 어렴풋이 있을 뿐이니, 눈에 보이는 현실이 아닌 기억은 아무런 도움도 되질 않는다. 오히려 기억의 찌꺼기를 꺼내, 아니 그것이 나에겐 진실이지만 말했다가 추궁 당하 듯 일일이 설명을 들어야만 했다. 손자들 앞에서 부끄러운 일이었다. 그래도 그런 부끄러움을 느낀 다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큰아들은 말했었다.
어쨌든 자식들이 이것저것 많은 선물과 먹을거리를 사왔다.
누가 무엇을 사 왔는지 기억도 못하지만 먹을 거라면 신났던 나는 과일에 빵에 떡에 과자까지 배부르게 먹었다.
“어머닌, 너무 많이 드리면 안 좋다. 적당히...”
“엄마가 드시면 얼마나 드시겠어요. 먹고 싶은 거 못 먹으면 오히려 병나요.”
“오늘만 드시게 하시지요.”
큰아들의 말에 막내딸과 셋째 아들이 나섰다.
그들로서는 엄마가 먹고 싶다는데 뭔들 아깝겠냐는 생각일 것이었다. 그 바람에 큰아들이 눈살을 찌푸리면서도 별반 말없이 모른 척했다. 나는 양껏 먹을 수가 있었다. 그렇게 먹은 것이 사단이 날줄은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어쨌거나 저녁을 먹고 늦은 밤이 되자 자식들이 다 돌아가고 집안은 썰렁했다. 믿는 형이요, 오빠가 왔으니 조금은 부담을 덜고 편한 마음으로 돌아갔을 것이었다.
원래 다리와 무릎이 아팠으니 잠자리에서 끙끙거리는 것은 예사였다. 그렇다고 신음소 릴 크게 내지는 않았다. 신음소리가 컸다면 자식들이 벌써 병원으로 데려갔을 것이다. 어쨌거나 나는 배가 쓰린 것인지 아픈 것인지 이상한 것을 느꼈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몸이 아픈 것에 이골이 나서 그렇겠지만 참을 만했다. 무엇보다도 내 인지능력이 많이 떨어졌다는 사실이다. 그런 연유로 아픔까지도 고통스럽게 느끼질 못했으며 소 대변을 가리는 능력까지도 감퇴되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살았다. 혹여 실수를 했더라도 크게 부끄럽다는 인식을 못한다는 것이 문제긴 문제였다.
아마도 새벽 2시쯤 되었을 것이다. 사실은 시간관념도 없고 시계를 볼 줄도 몰랐으니, 2시쯤이라고 말한 것은 큰아들인 아범이 말한 것이었다. 어쨌든 나는 시원하게 볼일을 봤다. 화장실에 가야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그땐 볼일을 본 후였다.
“아휴, 냄새야! 엄마, 방귀 뀌었군요. 아니 너무 독한데... 어디 봅시다. 혹시 많이 드셔서 실수... 거 보세요. 음식에 욕심을 부리지 말라고 그랬잖아요. 일단 가만 계세요. 씻고 옷부터 갈아입읍시다. 목욕은 내일 하시고요.”
아범은 먼저 물을 떠다가 씻기곤 옷을 갈아입힌 다음 따뜻한 매실차를 마시게 했다. 어떻게 된 일인지 나는 편하게 잠을 잤다. 그동안 아범은 실수로 더럽혀진 속옷을 빨았을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니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잘 잤냐고 묻는다. 실은 간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나는 기억조차 없었다.
“엄마, 엄마가 어제 음식을 너무 많이 먹어서 실수를 했어, 냄새가 독해서 아들 머리 다 빠지는 줄 알았다니까, 그러니까 엄마, 음식에 욕심을 내면 밤에처럼 실수를 하게 된다니까, 그러니 앞으론 먹는 음식에 욕심부리지 마세요. 그리고 난 큰아들이잖아 부끄러울 게 없어요. 내가 어렸을 땐 엄마가 날마다 목욕시켜줬잖아, 그런데 뭐가 부끄러워 큰아들이 엄마 목욕시켜드린다는데 누가 뭐래, 집엔 아무도 없고 문도 꼭 잠갔거든...”
아침을 먹을 때도 말이 없던 아범이 아침나절쯤 목욕을 시키겠다고 한다.
나는 목욕을 못하겠다고 했지만 아들의 설득에 마지못해 하듯 목욕을 하기로 했다.
“엄마, 너무 말랐다. 제길............ 이것 봐요 엄마! 때가 국수야 국수... 흐흐 그래도 좋지요. 이렇게 아들이 목욕시켜드리니까... 우리 엄만 호강하는 거야, 세상에 나 같은 아들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 엄마, 앞으론 음식 욕심내지 마세요. 자, 시원하지요. 와, 새색시가 따로 없네,”
아범은 중얼거리긴 했지만 즐겁게 말도 시키며 시원하게 목욕을 해줬다. 어쨌거나 나는 허리가 낫처럼 굽은 노파에 앙상하게 마른 몸이라 죽은 시체만도 못할 것이다. 이런 내 몸을 보고 아범이 많이 놀랐을 것이다. 속이 말이 아니었을 것이다. 아마도 겉으론 웃고 있었지만 가슴으론 뜨거운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그냥 내 생각도 아닌 생각이다.
‘아범아! 고맙다.’
나는 그냥 아범이라는 중늙은이가 고마웠다.
---계속
자연사랑/어린이 사랑
자연사랑은
어린이들의 미래이자 희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