쿵! 쿵! 쿵!
잠시 아기를 쳐다보며 허허거린 사나이가 이번엔 구멍이 난 벽을 허물기 시작했다.
힘이 장사인 사나이의 몇 번 도끼질에 구부리면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벽이 무너져 내렸다.
사나이는 횃불을 들고 무너져 내린 동굴 안을 들여다봤다.
“아니...?”
사나이는 의심이 들었는지 눈을 몇 번 비벼댔다.
동굴 안은 무너져 내린 입구만 커다란 돌들로 막아 놨을 뿐 천장과 사방이 암벽으로 된 암동(巖洞)이었다.
암동 안은 누군가 살았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암동의 넓이는 폭이 5장이 훨씬 넘어 보이는 타원형 암동이었다. 암동의 동쪽 벽 앞엔 음식을 해 먹었는지 잡동사니 그릇들이 널려있었다. 그리고 한쪽으론 크고 작은 호리병들이 놓여있었고, 그 옆 화덕 위에는 커다란 약탕기까지 놓여있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바위를 어떻게 깎았는지 서쪽 벽은 서가로 만들어져 있었으며 서가엔 누렇게 바랜 서적들이 적어도 일백 권은 꽂혀있었다. 그리고 한쪽 벽 밑엔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평평한 바위가 놓여있었는데 호피가 깔려있는 것으로 봐선 침상으로 사용했을 것이었다. 그리고 바위침상 밑엔 제법 커 보이는 길쭉한 궤짝이 하나 놓여있었고, 중앙엔 역시 바위로 된 탁자가 놓여있었다.
“누가 살았을까? 오랫동안 비어 있는 것으로 봐선, 한동안 이곳에 기거를 해도 문제될 것이 없겠다. 정말 잘 됐다.”
사나이는 암동 안을 세세히 살핀 후 밖으로 나와 여인의 시체를 동굴 한쪽에 잘 눕히고 마른풀들로 덮었다.
그리곤 꺼내놨던 물건들을 대충 포대에 넣고는 아기를 안아들었다.
암동으로 들어온 사나이는 아기를 바위침상 호피 위에 눕혔다.
그리곤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아기를 살펴보더니, 아기의 기저귀를 슬쩍 들춰봤다.
그 순간 사나이의 입이 쭉 찢어졌다.
거기엔 튼실하게 생긴 아기의 고추가 곧 오줌을 갈길 기세로 빳빳이 곤두서 있었다.
“이런, 알았다 이놈아! 쉬부터 하자, 그렇지, 쉬, 쉬,”
사나이의 입은 찢어질 듯 벌어졌다.
아기는 시원하게 오줌줄기를 갈겼다.
며칠 동안 오줌도 누질 않았는지, 젊은이의 오줌줄기보다도 더 세차게 뻗어나갔다.
오줌을 다 누고 진저리 치는 아기를 호피에 감싸서 눕힌 사나이는 고개를 끄떡이며 의미심장하게 입을 열었다.
“아가야! 앞으론 울지 말거라! 이젠 혼자가 아니다. 욕심 같아서는 너를 평생 내 아들로 키우고 싶지만, 나 같이 무식쟁이를 어찌 아버지로 두겠느냐! 분명 너희 가문은 일등 가문이 분명하다. 네 어미가 너를 살리기 위해 그토록 처참한 죽임을 당한 것은 훗날을 기약해서일 것이다. 네가 철들 나이쯤 되면 오늘에 있었던 일을 모두 말해 줄 것이다. 그 후엔 네 뜻대로 해도 말리지 않을 것이다.”
“......”
“이 놈아! 내가 아직 자식이 없다. 참 잘된 일이다. 너를 이렇게 얻게 되니 친자식을 낳은 것처럼 기분 좋다. 네 엄마 노릇할 사람도 정말 착한 사람이다. 네가 어른이 되어 이곳을 떠나기 전까진 잘 모셔야 한다. 알겠느냐? 어쨌거나 너는 오늘부터 내 아들이다.”
사나이가 아기를 내려다보며 진중한 표정으로 중얼거리는 동안 아기는 눈을 말똥거리며 벙글거렸다.
사나이는 동굴 밖에 나와 깜깜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밖은 이미 칠흑처럼 어두워졌고 쏟아붓듯 내리던 눈도 그쳐있었다.
그러나 아직 하늘은 잔뜩 흐려있어 별 하나 보이지 않았다.
사나이는 한참 동안 하늘만 올려다보며 서 있었다.
으앙, 으앙, 으앙--
“그러면 그렇지, 울 때가 되었지, 네 엄마는 죽은 지 삼일은 지났을 것이다. 꽤나 배도 고플 것인데 잘도 참았다. 그나저나 무얼 먹이지,
이럴 땐 새끼 밴 늑대라도 있었으면 잡아다가 젖을 짜 먹일 텐데, 내 평생 나무를 해다 파는 나무꾼이지만 이런 난감할 때는 처음이다. 이를 어쩐다. 아! 그렇지 산삼 죽이라도 먹여야겠다.”
으앙, 으앙, 으앙--
“알았다 이놈아! 잠시만 기다려라.”
암동으로 들어온 사나이는 큰 포대 속에서 작은 자루를 꺼냈다.
그리곤 자루 속에서 아기 팔뚝만 한 산삼(山蔘)을 조심스럽게 꺼내 들었다.
“이놈아! 이것이 무엇인 줄은 아느냐? 추운 겨울 그것도 눈밭에서만 꽃이 피고 열매가 열린다는 천년 설삼(千年雪蔘)이니라! 어젯밤 꿈에 말이다. 산신령님이 나타나 신선바위 밑에 가면 천년설삼이 꽃을 피울 것이다. 꼭 쓰일 곳이 있을 것이니 빨리 올라가라고 호통을 치셨다. 그러고 보니, 네놈을 살리기 위해 산신령님께서 날 보내신 모양이다.”
천년 설산을 꺼내든 사나이는 아기를 쳐다보며 넋두리하듯 떠들어댔다.
사나이가 떠드는 동안 아기도 눈을 말똥거리며 대꾸라도 하듯 벙끗거렸다.
먼저 화덕을 점검한 사나이는 약탕기와 그릇들을 챙겨 밖으로 나갔다.
그리곤그릇을 눈으로 깨끗이 씻은 다음 눈을 가득 담았다.
다행히 화덕 주위엔 마른 나뭇가지와 장작이 있어서 불을 피우는 데는 지장이 없었다.
화덕에 불을 지핀 사나이는 호리병들을 점검하기 시작했다.
제법 큰 호리병은 꽤 묵직했으며 출렁거리기까지 했다.
사나이는 꽉 틀어막은 나무마개를 아주 조심스럽게 열었다.
마개가 열리는 순간 진한 약 냄새가 진동했다.
사나이는 코를 병 주둥이에 대고는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았다.
이상이 없음을 느꼈는지 사나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마개를 닫고 다른 호리병마개를 열었다.
마찬가지로 병엔 약물이 가득 들어있었으며 그윽한 향기가 났다.
사나이는 일일이 일곱 개의 병들을 모두 조심스럽게 점검했다.
생긴 모습과는 다르게 아주 차분한 행동이었다.
“......”
“분명 이곳에 기거하셨던 분은 신의(神醫)가 틀림없을 게야, 짐작컨대 한 50년은 비어있었을 것이야, 일단 퍼온 눈은 버리고 그래 병에 든 약물을 반씩만 넣은 다음, 천년설삼을 넣고 달인다면, 그렇지 이 보다 더 좋은 영약은 없을 것이야,”
“......”
“아가야, 이놈아! 오늘 너는 큰 횡재를 했다. 신의께서 만드신 갖가지 영약과 천년설삼을 함께 달여 먹게 되었으니, 모르긴 몰라도 천하장사가 될 것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네 어미의 원수를 갚는데 큰 도움이 될게다. 그럼 슬슬 달여 볼까,”
사나이는 호리병에 들어있는 약물들을 약탕기에 절반씩 따랐다.
그리곤 아쉽다는 표정을 지으며 마지못해 넣듯 천년설삼을 약탕기 속에 집어넣었다.
그리고는 나무로 된 약탕기의 뚜껑을 소리가 나도록 덮더니, 화덕 앞에 철퍼덕 주저앉았다.
“제길, 약이나 잘 다려졌으면 좋겠다.”
천년설삼을 약탕기에 넣을 때 불현듯 사나이의 뇌리를 번개 치듯 강타한 것이 있었다.
그것은 아직도 늦지 않았다는 탐욕(貪慾)의 속삭임이었다.
그러나 사나이는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화덕의 불꽃만 쳐다봤다.
사나이는 산삼이 얼마나 비싼 가격에 팔리는지,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특히 천년설삼의 가치는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그 가치가 크다는 것도...
사나이로선 하루아침에 부자(富者)가 될 수 있는 횡재를 포기한 것이다.
또한 나무꾼 마누라를 평생 동안 호강시켜 줄 절호의 기회도 포기했다.
인간이기에 느꼈던 탐욕을 훌훌 털고 우직하고 욕심이 없는 나무꾼으로 돌아갔다.
호리병에는 내용물에 대한 설명서가 붙어있었다.
그렇지만 사나이는 일자무식이었다.
사나이는 지금 자신이 행하고 있는 일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그런 것엔 관심도 아는 바도 없었다.
그냥 순수한 믿음만 있을 뿐이었다.
사나이는 오로지 아기가 배고파서 우는 일 따위는 결코 없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부디 튼튼하게 자라서 훗날을 기약해 주길 바라는 마음뿐이었다.
으앙, 으앙. 으앙--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곤히 잠자던 아기가 급기야는 울음을 터트렸다.
“이놈아! 잠시만 기다려라! 곧 먹을 것을 줄 테니,”
사나이는 아기를 어르고는 토기그릇과 나무국자를 챙겼다.
“조심, 조심,”
사나이는 조심스럽게 약탕기의 뚜껑을 열었다.
진한 약향이 암동에 퍼졌다.
사나이는 국자로 조심스럽게 국물을 떠서 토기그릇에 담았다.
국물은 감청색이 나면서도 진득진득했다.
“이 정도면 됐겠지, 앗 뜨거워...”
후~ 후~ 후~~
사나이가 탕약이 담긴 토기를 들고 아기 앞에 앉았다.
그리곤 손가락으로 탕약을 휘 저어 보았다.
탕약이 뜨거운지 사나이가 손가락을 얼른 빼냈다.
잠시 탕약을 후후 불어대던 사나이가 다시 손가락으로 탕약을 휘저었다.
“이젠 되었다. 자 아가야, 이것이 네 어미 젓보다 더 좋은 것이란다. 많이 먹고 쑥쑥 자라라, 옳지, 잘 먹는다. 옳지,”
아기는 쩝쩝거리며 떠주는 대로 잘도 받아먹었다.
사나이는 그릇을 기울여 단 한 방울도 소홀히 하지 않고 아기에게 다 먹였다.
사실상 토기의 크기는 어른들 밥그릇보다 더 컸다.
사나이가 사발의 절반 정도로 담기는 했으나 양으로 치자면 어른이 먹는 양과 비슷했다.
“그놈 참, 푹 자거라!”
사나이는 아기가 싱긋이 웃으며 꿈나라로 떠나자,
그때서야 자루에서 건량(乾糧)을 꺼내 씹어 먹었다.
사나이는 나무를 하러 갈 때마다 마누라가 챙겨주는 건량을 빼놓지 않고 갖고 다녔다.
어떤 경우든 집을 나설 때는 꼭 건량을 챙겨가라는 마누라의 당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건량은 꿩고기와 산토끼를 삶아서 뜯어말린 것 등이었다.
“이 안에 무엇이 들었을까? 분명, 아기의 신상에 대한 물건이 들었을 게야, 일단 열어보자.”
사나이는 여인의 몸에서 떨어진 작은 목합을 집어 들었다.
그리곤 조심스럽게 목합의 뚜껑을 열었다.
“에게, 이게 뭐야, 별거 없잖아...?”
사나이는 실망스러운 얼굴로 목합을 들여다봤다.
목합을 열자 푸른색으로 변색된 구리동전 같은 것이 서책 위에 놓여있을 뿐 다른 것은 없었다.
단지 동전은 목에 걸 수 있게 금줄에 꿰어져 있었으며 서책은 달랑 한 권뿐이었다.
“아무래도 이것은 마누라에게 물어보는 것이 좋겠다. 우리 마누라는 어려운 서책도 줄줄 읽는 여장부잖아, 허허--”
사나이는 마누라를 여장부라고 말한 것이 맞는 말인지 헷갈린다는 듯 한차례 허허거렸다.
그리곤 서책을 펼쳐보거나 동전을 만져보지도 않은 채 목합의 뚜껑을 닫았다.
잠시, 이런저런 생각에 잠겼던 사나이가 침대로 걸어가 아기 옆에 몸을 눕혔다.
눈밭을 헤매고 돌아다녔으니 얼마나 피곤했을까, 사나이는 아기 옆에 눕자마자 잠이 들었다.
----------계속
^(^,
오늘은 월요일, 힘차게 출발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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