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동(巖洞) 안이 밖에서 들어오는 빛으로 인해 훤했다.
그때서야 사나이가 기지개를 켜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으앙, 으앙, 으앙,
“너도 깼구나, 어디 보자 우리 아기,”
사나이가 아기를 안아 어르자 금방 울음을 그친 아기가 작은 손으로 사나이의 덥수룩한 수염을 잡아당겼다.
“허허, 이놈 봐라! 수염을... 그래 너는 오늘부터 내 아들이다. 곧 맘마를 줄 테니 조금만 기다려라.”
사나이는 화덕에 불을 지피곤 암동을 나섰다.
해가 높이 솟은 것을 보니 한나절은 지난 것 같았다.
하늘은 언제 눈을 퍼부었냐는 듯 맑고 푸르렀다.
온 천지가 너무도 깨끗한 순백의 세계였다.
눈부신 태양이 황금빛 햇살을 설원(雪原) 위로 마구 뿌려댔다.
그러자 설원은 아름다운 은빛을 하늘로 쏘아 올렸다.
너무도 눈부신 햇살과 은빛의 현란함에 사나이는 한참 동안 눈을 뜨질 못했다.
동굴 앞에서 바라보는 설경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잡티하나 보이지 않는 은빛능선과 하늘높이 치솟은 봉우리 하며 그 어느 것 하나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었다.
무식하기는 했으나 법이 필요 없는 때 묻지 않은 사나이,
사나이는 한동안 아름다운 설경에 취해있었다.
“으앙, 으앙---”
얼마동안 그렇게 서 있었는지 모른다.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았다면 사나이는 마냥 그렇게 서 있었을 것이다.
“어허, 큰일 날 뻔했다. 내가 무슨 생각을...”
사나이의 곰 같은 덩치가 암동으로 날아들었다.
보기보다는 날렵한 몸놀림이었다.
“탕약을 태울 뻔했잖아, 다행이다 아가야,”
불부터 끈 사나이는 어제처럼 토기에 탕약을 퍼 담았다.
그리곤 김이 풀풀 나는 탕약을 불어가며 아기 옆에 앉았다.
아기는 앙증맞은 손으로 그릇을 잡으려고 버둥거렸다.
“이놈아, 그만 버둥거려라. 그래 맛있지,”
사나이는 천천히 탕약을 떠서 아기에게 먹였고, 아기는 사나이가 떠주는 대로 날름날름 잘도 받아먹었다.
“나는 써서 못 먹겠던데, 이놈은 쓰지도 않은 모양이지, 아주 잘 먹잖아...”
사나이는 탕약을 맛있게 받아먹는 아기를 보고, 신기한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신나 했다.
***
하루 이틀, 사흘...
사나이는 날마다 반복되는 생활을 4일째 계속하고 있었다.
오늘밤만 지나면 5일째다.
이 생활도 무료했던지, 눈이 쌓인 계곡과 능선을 둘러보는 사나이,
“눈이 다 녹을 때까지 기다리다간 이 겨울이 다 지나가도 힘들겠지, 내일 하루만 더 지내고, 모레 아침쯤 내려가자.”
사나이는 암동으로 들어와 아기를 안고 어르며 실실 웃어댔다.
그동안 사나이의 낙은 아기를 봐주는 일이었다.
하늘이 점지한 아들을 얻었으니, 그 기쁨은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다음 날,
사나이는 아침 일찍부터 서둘렀다.
산을 내려가려면 준비할 것이 몇 가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보니 아기는 뒷전이고 마음만 급했다.
서두르던 사나이가 이젠 거의 바닥이 드러난 약탕기의 탕약을 그릇에 모두 담았다.
아기에게 마지막 밥을 주고 잠깐 나갔다가 올 생각이다.
그런데 아기는 새근새근 잠만 자고 있었다.
“이놈이 늦잠을 다 자네. 이 아비가 바쁜 줄 아는 게지, 푹 자거라! 산을 내려가려면 덧신이라도 만들어야 한다.”
사나이는 그릇을 탁자 위에 올려놓곤 도끼를 집어 들었다.
한 시진은 지났을 것이다.
사나이가 아기 팔목정도 되는 나뭇가지를 한 아름 안고 들어왔다.
그때까지도 아기는 쌕쌕거리며 잠만 잘 자고 있었다.
그런데 아기의 숨소리가 여느 때와는 사뭇 달랐다.
아기의 숨소리가 이상하게 들렸던지 사나이가 아기에게 다가갔다.
“이놈이 왜? 잠만 자지, 벌써 울고불고 난리가 났을 줄 알았더니, 숨소리도 이상하고, 어디 보자 아가야! 어디 아프니...?”
사나이는 아기의 숨소리가 이상하자 조심스럽게 아기의 이마를 짚어봤다.
그 순간 사나이의 얼굴이 경직되었다.
“열이 펄펄 끓네, 이러다 아기가 죽으면, 이런 땀 좀 보게, 이럴 땐 마누라가 있어야, 아가야! 아가야! 죽으면 안 된다. 아가야!”
사나이는 아기가 덮고 있는 호피를 모두 벗겼다.
아예 옷까지 모두 벗겼다.
아기는 눈을 꼭 감은 채 쌕쌕거리며 힘들게 숨을 몰아쉬었다.
땀을 얼마나 많이 흘렸던지 호피까지 축축했다.
아기의 몸은 완전 불덩이였다.
그런 아기를 안아 든 사나이는 안절부절 어찌할 줄 몰라 발만 동동 굴렀다.
“이거, 큰일이다. 가만가만 생각 좀 해 보자...”
사나이는 아기를 안은 채 암동을 왔다 갔다 하면서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그렇게 왔다 갔다 하던 사나이가 별안간 아기를 안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아기를 안고 밖으로 뛰쳐나온 사나이는 주저 없이 푹푹 빠지는 계곡으로 서너 걸음 들어섰다.
그리곤 아기를 눈 위에 가만히 내려놓더니, 아기에게 눈을 덮기 시작했다.
아기의 얼굴까지 눈이 덮이고 코와 눈만 내놓은 형국이 되었다.
그래도 아기는 울지를 않았다.
“아휴, 후, 후후, 후후,”
사나이는 아기를 내려다보며 몇 차례 한숨을 내쉬곤 아기에게 말하듯 중얼거렸다.
“아가야! 걱정 말거라! 어렸을 때 어떤 할머니가 열병에 걸린 손자를 찬 얼음물속에 집어넣는 것을 봤었다. 그때 그 손자는 금방 열병이 낳았다. 그러니 너도 곧 나을 게다. “
사나이는 아기의 신세내력에 대해서도 아기는 무엇을 먹어야 하는지도 몰랐다.
호리병엔 어떤 종류의 약물이 들어있었는지 그런 것도 관심 밖이었다.
사나이는 무조건 아기가 건강하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아기가 울지 않으면 그것이 배가 불러선 줄 알고 마냥 기뻐했던 사나이였다.
사실 지금의 아기는 너무 과다한 영약을 먹었다.
그로 인해 발달치 못한 아기의 몸이 영약의 약효를 흡수하지 못하고 과부하를 일으켰다.
어쩌면 뇌에 손상을 입어 바보천치가 될 수도 있는 위급한 상황일 수도 있었다.
아기의 뱃속에서는 흡수되지 않은 영약들이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내부에서 일어나는 약기운에 의해 아기는 악전고투를 벌이고 있는 중이었다.
양기가 최고로 강한 천년설삼을 먹었기 때문에 발생한 고열이었다.
게다가 온갖 영초(靈草)들로 달여 만든 희대의 영약들을 함께 복용했다.
그것도 양기(陽氣)와 음기(陰氣)를 구분하지 않고 마구잡이로 먹인 것이 화근이 되었다.
그렇지만 사나이는 아기가 단순히 열병에 걸린 것으로만 생각했다.
지금 아기의 몸에선 열양기가 너무 강하게 작용하고 있었다.
다행히 음기가 강한 영약을 함께 복용했기에 아직까지 숨이 붙어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렇더라도 열양기를 다스리기엔 음기의 기운이 턱없이 부족했다.
다행인 것은 아기가 탕약을 먹은 부작용으로 치명적일 수 있는 설사나 토악질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것만 보더라도 아기의 체질이 일반 아기들 체질과는 확연히 다르다는 것이 입증된 셈이었다.
사나이는 속수무책으로 아기의 감고 있는 눈만 멀뚱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일반 아기였다면 벌써 죽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었다.
성인이라 하더라도 크게 다를 바가 없었을 것이다.
아무리 좋은 영약도 과다하게 복용하면 독이 된다는 말이 있다.
아기가 먹은 영약들이 아기에겐 과했음을 의미했다.
사나이는 쌕쌕거리는 아기의 숨소리를 들으며 가슴까지 파묻힌 눈 속에 그대로 서 있었다.
그런 사나이의 눈엔 아기가 잘못될 것을 염려한 나머지 두려움과 자신의 무지를 원망했다.
----------계속
^(^,
태풍이 온답니다.
철저히 대비하시기 바랍니다.
^(^,
응원은 모두에게 큰 힘이 됩니다.
긍정의 삶으로 파이팅!
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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