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리링, 휘리링,
삼일전서부터 내리기 시작한 폭설(暴雪)은 오대산 중지에 위치한 천지봉(天池奉) 일대를 고립무원의 세계로 만들고 있었다. 시야를 가릴 정도로 매섭게 몰아치는 눈보라는 마치 죽음의 계곡을 지나듯 호곡성(號哭聲)을 질러댔다.
그 눈보라 속,
강보를 안은 한 여인이 몰아치는 눈보라를 뚫고 천지봉을 오르고 있었다.
얼마나 오랫동안 눈보라 속을 헤매고 다녔는지 여인은 맨발이었고 청색무복은 넝마처럼 찢겨 너풀거렸다.
아예 한쪽소매는 떨어져 나가 검상(劍傷)을 입은 팔이 그대로 드러났다.
여인은 숭산 운무곡에서부터 도망쳐온 수련이었다.
수련은 평정객잔에서 도망친 그날 밤부터 평도를 향해 달렸다.
그러나 지나는 곳마다 추적자들을 만나게 되었고,
그럴 때마다 죽을힘을 다해 도망쳐야만 했다.
그렇게 도망을 치다 보니 산동성을 벗어나 이곳 천지봉까지 쫓기게 되었다.
휘잉, 휘잉,
수련은 눈보라도 눈보라지만 운신하기조차 힘든 추위와 싸우며 앞으로만 계속 달렸다.
한 번씩 뒤를 돌아다보는 수련의 눈엔 독기가 풀풀 날렸다.
그렇게 앞으로만 내달리던 수련의 두 눈에 일순간 두려움이 일렁거렸다.
여인의 육감이 추적자들이 가까이 다가왔음을 감지한 때문이었다.
“으앙, 으앙, 으아앙~”
아기도 두려움을 느꼈던 것일까,
내내 죽은 듯이 두 눈을 꼭 감고 있던 아기가 별안간 울음을 터트렸다.
“클클, 이젠 도망칠 곳도 없다. 곱게 죽어줘야겠다.”
“으...”
너무도 싸늘한 목소리가 뒤쪽에서 들려오자 수련의 입에서 절로 신음이 흘러나왔다.
‘오늘 죽는다 해도 아기씨만은 살려야 하는데...’
수련은 침착하게 주위 상황을 살폈다.
둘러보니 3장 앞쪽은 더 이상 나갈 곳이 없는 천길 벼랑이었다.
눈보라 속을 뚫고 앞쪽으로만 달리다 보니 막다른 절벽 끝으로 달려온 꼴이었다.
뒤와 좌우엔 흑포를 걸친 흉흉한 복면인들이 차츰 거리를 좁혀왔다.
복면인들은 붉은색 복면인을 필두로 모두 여섯 명이었다.
‘죽어도 곱게 죽을 수는 없다.’
수련은 아기를 힘 있게 추켜 안으며 돌아섰다.
그리곤 옆구리에 차고 있던 검을 뽑아 들었다.
휘휙! 휙!
추적자들이 도주로를 차단하듯 수련의 좌우와 앞으로 내려섰다.
놈들의 몸에서 풍기는 살기가 살을 떨리게 만들었다.
“죽일 놈들, 덤벼라!”
숨을 헐떡거리면서도 수련은 복면인들을 싸늘히 노려봤다.
“발악을 하시겠다. 클, 죽여라!”
붉은색 복면인이 한 발짝 물러서며 싸늘하게 일갈했다.
그러자 검을 꼬나 쥔 검은색 복면인들이 수련에게 다가들었다.
수련은 검을 곧추세우며 주춤주춤 뒤로 물러섰다.
“네년은 독 안에 든 쥐다. 곱게 죽어줘야겠다.”
“으, 절벽이라니--”
수련은 뒷걸음치며 흘끔 뒤를 돌아다봤다.
적어도 20장은 넘을 낭떠러지가 바로 눈앞에 드러났다.
그대로 뛰어내린다면 뼈도 못 추릴 것은 불을 보듯 뻔했다.
여차하면 그대로 뛰어내릴 생각이었지만 눈앞이 캄캄했다.
“가가!”
수련의 입에서 절규가 터져 나왔다.
“사정 봐줄 것 없다. 도륙을 내라!
“얏! 죽어라!”
“이얍!”
창, 챙강, 창,
서걱, 푹!
금속성소리에 이어 피보라가 무지개처럼 뿌려졌다.
마치 화폭에 매화를 그려 넣듯이 핏방울이 하얀 눈 위에 선홍색으로 번져나갔다.
“윽! 죽일 놈들, 으,”
수련의 입에서 괴로운 신음성이 흘러나왔다.
수련은 달려드는 복면인들을 상대로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아기를 보호해야 한다는 의식 때문에 몸은 자유롭지가 못했다.
아니 복면인들의 무위가 너무도 악랄했고 강했다.
“킬킬 킬, 킬킬 킬,”
“으윽! 으,”
두 명의 복면인들 중 일인은 수련의 팔을 내리친 상태로 서서 수련을 싸늘하게 노려봤고,
다른 자는 수련의 복부에 검을 깊숙이 박아 넣은 채 소름 끼치게 웃고 있었다.
그것도 잠시, 복면인이 수련의 복부에 박힌 검을 비틀며 뽑아 올렸다.
너무나 악랄한 수법이었다.
수련의 입에서 또다시 처절한 비명성이 터졌고 피보라가 뿌려졌다.
“으으으...”
수련은 신음을 흘리면서도 아기를 꽉 끌어안곤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다행히 아기에겐 이상이 없는 것 같았다.
수련이 자신의 몸을 내주면서도 아기를 보호한 때문이었다.
비틀비틀 힘겹게 일어선 수련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복면인들을 노려봤다.
수련의 눈에선 피눈물이 흘러내렸고 원한이 서리서리 뿜어져 나왔다.
“으, 이놈들... 으 천벌을, 내 죽어서도 용서치 않겠다.”
피를 튀기며 수련이 악을 썼다.
“독한 년, 둬져라!”
휘이익!
내내 비릿한 미소를 흘리며 상황을 지켜보던 붉은색 복면인이 미끄러지듯 나서며 대갈했다.
언제 검을 휘둘렀는지 칼바람이 눈발을 날리며 수련을 훑고 지나갔다.
아니 그렇게 보였을 뿐이었다.
수련은 붉은색 복면인이 검을 휘두르는 그 순간 몸을 틀어 낭떠러지로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아아악!”
끔찍한 수련의 비명소리가 절벽 아래서 크게 들려왔다.
“음 핫! 하하하!”
붉은색 복면인의 광소(狂笑)가 산중을 쩌렁쩌렁 울리며 눈발을 흩날렸다.
얼마나 막강한 무위를 지녔는지 풍기는 기운마저 살벌하게 느껴졌다.
“이제야, 씨를 말렸다. 후한은 없을 것이다.”
잠시 절벽 아래를 맹금(猛禽)의 눈으로 쏘아보던 붉은색 복면인이 대갈을 터트리며 몸을 날렸다.
섬뜩한 대갈이 산봉을 울렸을 때는 복면인들이 폭설 속으로 사라진 뒤였다.
----------2장, 업둥이 편으로 이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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