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날이 밝으려는지 별들이 하나 둘 사라지고 있었다.
“날이 밝기 전에 돌아가자, 아지트는 어떻게 하지, 일단 해제를 시키자, 그게 좋겠다. 이얍,”
대박이는 자연스럽게 손을 흔들었다.
자연친화적인 진은 사라지고 3미터 반경의 평평한 원만 덩그러니 생겼다. 누가 봐도 이상한 현상의 장소가 되었다. 그야말로 미스터리 서클이 생긴 것처럼 보였다.
주위를 둘러본 대박이는 걸음을 빨리했다.
휙휙, 나아가는 소리가 바람소리처럼 들렸다.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그것도 새벽안개가 자욱한 숲 속을 대박이는 잘도 빠져나가고 있었다. 대략 10여분 만에 숲을 빠져나온 대박은 걸음의 속도를 줄였다. 혹시나 지나치는 사람은 없는지 상황을 살피기 위해서였다. 시내에도 새벽안개가 잔잔히 깔려있어서 10미터 이상은 시야확보가 어려웠다.
“야, 이거 흠뻑 젖었잖아, 진 안에서는 괜찮았는데, 그렇다면 진 안에서는 눈비도 피할 수 있다는 얘긴가, 야 또 하나 배웠어, 어쩐지 밤을 새도 이슬에 젖지 않았다는 것이 이상하긴 했어, 왜 진즉 생각하지 못했을까,”
대박이는 진에서 생활하는 동안 밖의 출입을 일절 하지 않았다. 졸리면 잠을 잤고 눈 뜨면 항마심법을 운기 했다. 그렇게 마음만 닦다 보니 다른 것은 신경 쓸 겨를도 없었다. 그리고 참기 힘들다고 여겼던 식탐도 사라졌고 배도 고프지 않았다. 참으로 신기했지만 그 때는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대박은 가로등이 길게 늘어선 길을 따라 걸음을 빨리했다. 안개는 대박이가 지나가자 모세의 기적처럼 길을 냈다가 흔적을 지웠다. 그만큼 대박이의 걸음이 빠르다는 증거였다.
대박이가 사직동을 거쳐 초읍동, 연지동을 지나서 서면 희망이네 분식집 앞에 도착한 시간은 5시 20분경이었다. 대박이는 주위를 둘러보곤 천천히 2층으로 올라갔다.
“이젠 내 자신을 믿어도 될까, 그러면 아주머니께 한 약속은 지킨 것이고, 소라에게 선물을 준다고 했는데 뭘 주지, 그냥 말로만 큰소리친 것이 되면 정말 안 되는데... 그래 꿈, 꿈을 이루게 해주면 되잖아, 앞으로 내가 할 일도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이루게 도와주는 거잖아, 그래 꿈,”
대박이는 2층에 올라서서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대박이가 오늘은 꼭 돌아왔으면 좋겠는데...”
옥상텃밭에서 할머니의 기척이 들렸다.
“우리 할머니 여전하시네, 할머니, 저 왔어요.”
이미 대박이는 옥상텃밭에 올라와 있었다.
“우리 대박이, 꿈이 아니고 생시가 맞겠지,”
할머니는 안개가 걷히지 않았음에도 텃밭을 가꾸고 계시다가 대박이의 목소리에 놀랐다. 잠시 멍했던 할머니는 대박이를 건네다 봤다. 얼굴에는 기쁨이 눈엔 눈물이 글썽였다.
사실 할머니는 대박이가 집을 나가는 것도 보았고, 편지도 읽었다. 표현은 못했지만 손자가 집을 나간 것처럼 마음이 아팠다. 무언가 가족으로서 그것도 사랑이 부족했던 것은 아닌가, 자책도 하셨다. 날마다 무사히 돌아오길 천지신명께 빌고 빌었던 할머니였다. 그러니 그 기쁨이 남다를 수밖에...
대박이는 할머니 마음을 헤아린 듯 달려가 끌어안았다. 친 할머니가 계셨다면 지금 이 먹먹한 이 기분, 바로 이런 기분이었을 거라고 대박이는 생각했다.
“할머니 죄송해요. 앞으론 말없이 집을 비우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겁니다. 정말입니다 할머니,”
“이렇게 건강하게 돌아왔으면 되었지, 이만 내려가자,”
“예 할머니, 제 손 잡으세요.”
“......”
이른 아침부터 대박이네는 이산가족을 만난 것 같은 분위기였다. 그들은 멀리 집을 떠났다가 돌아온 자식을 대하듯 대박이를 그렇게 맞이했다.
소라는 식구들이 오빠를 얼마나 걱정했는지 아느냐며 한바탕 난리를 쳤다. 그리곤 엄마가 자식에게 묻듯 무슨 일은 안 당했는지, 밥은 제때에 먹고 다녔는지, 잠은 어디서 잤는지, 전화를 하면 어디가 덧나느냐고 역정까지 내면서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아주머니는 대박이의 손을 꼭 잡곤 친 자식을 만난 것처럼 눈물까지 글썽였다.
소라나 안 여사, 그리고 할머니는 첫날은 크게 걱정을 안 했다. 대박이가 돈도 없이 나갔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 문제도 신경 쓰지 않았다. 돈이 필요하면 집이나 친구에게 전화를 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틀이 지나고 삼일이 되자 정말로 걱정이 되었다.
사실상 대박이에겐 3년간의 공백이 사회생활의 모든 것을 앗아간 시간이었다. 가족도 친구도 다 잃었다. 도통 아는 것이 없었다. 그런 대박이가 사회 물정에 대해 무얼 알겠는가, 누구에게 전화를 걸어 돈을 빌려달라고 할 만한 주제도 못 되었다. 그들이 보기엔 순진무구한 착한 대박이 일 뿐이었다.
4일이 되었을 때는 홍씨와 의논하여 실종신고를 할까 생각도 했었다. 그때 할머니가 며칠만 더 기다렸다가 결정하자는 말에 동의했고,, 그들은 어젯밤까지 대박이가 돌아오지 않는다면 오늘 오전에 실종신고를 할 예정이었다. 그런 때에 대박이가 돌아왔으니 얼마나 기뻤겠는가, 이산가족을 만나 것처럼 그들은 그렇게 기뻐했다.
“많이 걱정들 하셨지요. 제가 이렇게 돌아왔으니 이젠 마음 편이들 가지세요. 참 아저씨에게도 전화를...”
“오빠, 아저씨한텐 내가 전화할게, 오빠는 좀 씻어라, 얼굴도 그렇고 옷도 엉망이다. 오빠는 거울도 안보고 지냈나 봐,”,”
“......”
사실 대박이의 얼굴은 수염도 제법 자랐고, 검댕이 칠을 한 것처럼 오른쪽 뺨에 검은흙이 칠해져 있었다. 그리고 옷에도 흙탕물에 뒹굴었나 싶을 정도로 더러웠다.
“그게 좋겠다. 대박이는 우선 샤워부터 해라! 밥도 제대로 못 먹었나, 얼굴도 엉망이네.”
안 여사는 안쓰럽다는 표정으로 한 마디 하곤 주방으로 갔다. 할머니는 다 안다는 듯 말씀 없이 미소만 지으셨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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