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9시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배꼽시계는 자꾸만 밥을 달라고 신호를 보낸다.
속이 쓰렸다.
속 쓰림에 인상을 구기고 있던 대박이의 귀가 쫑긋거렸다. 대박이의 눈빛이 향한 곳, 대략 5미터쯤 되는 거리였다.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인이 매점 바로 옆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불안한 기색이 역력한 여인의 손에는 핸드폰이 들려있었다. 아마도 대박이가 여인의 불길한 통화 내용을 들었던 모양이었다.
여인은 어찌할 바를 몰라 전전긍긍 종종거렸다.
여인의 행동은 안 좋은 일에 직면한 듯 보였다.
“제길 통화를 그렇게 끊으면 내가 어떻게 알아, 분명 남편이 죽인다고 했는데, 그래서 집엘 못 가는 건가,”
‘여보, 그럼 어떻게 해,’ 대박은 여인이 한 말을 들었고,
‘그럼 넌 내 손에 죽는다.’란 남자의 목소리도 들었다.
대박이는 통화 내용을 유추해 봤지만 가정사에 있을 수 있는 일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여인이 걱정되었다. 만에 하나 여인이 잘 못 된다면 자신 탓이란 생각이 들었다. 남의 통화내용을 들었다는 것은 그만큼 대박이의 청력이 높아졌다는 것을 의미했고, 책임 또한 따른다고 생각했다.
한참 동안 종종거리던 여인이 전철역을 빠져나갔다.
이를 지켜보던 대박이가 여인의 뒤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그래 따라가 보면 무슨 일인지 알겠지,”
대박은 여인을 계속 따라갔다.
의혹을 느꼈다면 끝까지 확인하는 것이 대박이의 성격이다. 지금 여인은 횡단 보도를 건너 구서동 방향으로 걸어갔다. 처음엔 힘이 없어 비틀거리기도 했지만 정신을 차렸는지 그런대로 꼿꼿하게 걸어갔다. 대략 200미터쯤 걸어간 여인은 좌측 주택가 쪽으로 길을 잡았다.
“저쪽에 집이 있다면 못사는 집은 아닌데...”
대박이가 보기엔 위치상으로 잘 사는 동네였다.
여인은 주택가를 끼고 한참을 걸어갔다.
제법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던 여인의 걸음걸이가 점점 느려졌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그런 기분의 걸음걸이였다. 자세히 보니 주위는 3층에서 5층의 연립주택들이 여러 채 지어진 곳이었다. 여인은 연립주택 중에서도 제일 낡은 연립주택 입구에서 멈췄다.
“아까 한 말은 거짓말이겠지, 연희 엄마,”
음침한 주차장 입구에서 한 사내가 걸어 나왔다.
보통체격의 남잔데 목소리부터가 짜증 나는 목소리였다.
“여~보, 기다리고 있었어요.”
흠칫 놀란 여인이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연희 엄마, 아까 한 말은 거짓말이지, 얼른 내놔!”
남자는 맡긴 것을 달라듯이 손을 내밀었다.
“정말 구하지 못했다니까요. 미안해요 여보, 정말요.”
“뭐, 너 따라와, 이게 정말...”
“여~보, 왜 그래요. 여보,”
“그럼 여기서 죽어볼래, 쌍~~아, 에잇,”
짝, 짝,
윽, 으윽,
남자는 여인의 멱살을 잡아끌다가 반항하자 쌍말을 해대곤 귀싸대기를 갈겼다. 여인의 입에서 신음이 새어 나왔고 얼마나 세게 때렸는지, 입술이 터져서 피가 흘렀다.
“그러니까, 이년아, 시끄럽게 하지 말고 따라와,”
남자는 여자를 개처럼 끌고 어린이 놀이터로 데려갔다.
‘이거 어쩌지, 나서야 되나, 모른 척 그냥 갈까, 가정폭력으로 경찰에 신고를 할까, 제길 핸드폰도 없잖아, 일단 조금만 더 지켜보자, 그래 맘 내키는 대로...’
대박이는 남녀의 뒤를 조심스럽게 따라갔고, 일단은 그들을 지켜보기로 했다. 만약 문제가 생긴다면 마음이 시키는 대로 행동할 생각이다.
“야 이 썅~~ 아,~~아, 네가 내 말을 우습게 여겼어, 씨팔 뒤져라, 썅~~아, 얏 얏, 이얏!”
윽, 허억헉, 우욱, 으...
여인의 입에선 죽을 것 같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남자는 놀이터에 도착하자마자 폭력을 행사했다. 주먹질에 발길질까지 물불을 안 가렸다. 정말이지 여인을 죽일 것만 같았다. 이를 지켜보던 대박이의 눈에서 분노의 불꽃이 일렁였다. 틀어쥔 주먹이 부르르 떨었다.
‘이런 일이 한두 번도 아닐 텐데, 이웃사촌이라는 주민들은 숨어서 구경만 했다는 얘기, 너무들 하는 것 아냐!’
대박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울화통이 터졌다. 특히 숨어서 지켜보는 인기척을 느끼곤 이웃주민들이라면, 너무들 했다고 생각했다.
“야 쌍년아, 오늘은 끝장을 보...”
크흑, 윽, 컥!
남자가 재차 여인을 때리려고 손을 든 순간이었다. 검은 그림자가 나타나 남자의 면상을 퍽퍽 갈겼다. 남자가 휘청거렸고, 검은 그림자가 남자의 복부를 걷어찼다. 남자는 1미터나 날아가 개구리 죽듯 뻗어버렸다.
“아주머니, 정신 차리세요.”
“연희 엄마, 정신 차려,”
대박이는 멍하니 주저앉은 여인을 일깨웠다. 이를 지켜봤던 한 아주머니가 달려와 여인을 일으켰다. 그때서야 하나둘 모여든 주민이 댓 명은 되었다.
“여러분, 지나가다가 봤는데 정말 화가 났습니다. 폭력은 나쁜 겁니다. 특히 가정폭력을 저지르는 놈은 죽어도 쌉니다. 암튼 여러분들은 이웃주민들이니, 앞으론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도와주세요. 우선 경찰에 신고부터 하세요.”
대박이가 남자를 노려보며 말했다.
“음, 너 개새끼, 죽었어,”
남자가 정신이 들었는지 일어나며 악을 썼다.
그 순간 대박이가 남자의 배를 가차 없이 걷어찼다.
크헉!
“넌 새끼야, 남자도 아니야 죽을 새끼야, 니 딸인지 아들인지 연희에게 부끄러운 줄 알아라, 에이 개~끼야, 나가 뒤져라, 여러분, 연희 엄마 부탁합니다.”
대박이는 꾸벅 인사하곤 자리를 떴다.
사람들은 정신이 없는지 대박이가 사라진 뒤에야 부랴부랴 경찰에 신고도 하고 연희 엄마를 챙겼다.
----------계속
긍정의 힘으로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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