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시간인 오후 5시경,
희망이네 분식집은 한산했다.
사실상 저녁 장사는 접기로 했었다. 하지만 희망이네 분식집 사장인 안 여사께서는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 한다면서 밤 7시까지 장사를 하기로 결정했다. 사실 오후 5시 이후에는 단골손님들을 위해 문을 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희망이네 단골손님들은 대부분 저녁에 일을 나가는 사람들이었다. 특히 술집에서 일하는 종사자들이 많았다. 지금도 아가씨 두 명이 국수를 먹으면서 수다를 떨고 있었다.
“엄마, 저 왔어요.”
소라가 깡충거리며 가게로 들어섰다.
좋은 일이 있었던 듯 밝은 표정이다.
“왔니, 저녁은 먹고 올라갈 거지,”
“아니, 오빠하고 같이 먹을 거야, 오빠 있지,”
“오빠 아직 안 왔는데...”
“엄마, 오빠가 아직 안 왔다고요.”
소라는 잘못 들었나 싶은 얼굴로 엄마를 쳐다봤다.
“얘가 정색을 하고 그래, 친구라도 만나겠지,”
“알았어, 나 먼저 올라간다.”
소라는 이미 가게를 나서고 있었다.
“그러던지...”
안 여사는 관심도 없다는 듯 힘없이 말했다.
전 같았으면 맑은 목소리로 반갑게 대했을 텐데, 오늘 따라 안 여사의 목소리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아무래도 로펌에서 왔다는 변호사 마 동창 때문일 것이었다.
안 여사는 마 동창이 돌아간 뒤 홍 씨에게 전화를 걸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대충 얘길 했다. 홍씨는 안 여사의 얘기를 듣고 가게 끝마칠 시간에 들리겠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사실상 생각지도 않았던 일을 당하고 나니까, 천하의 안 여사도 기운이 빠졌던 모양이었다.
소라는 옷을 갈아입곤 혹시나 하는 맘으로 대박이 방문을 열어봤다. 오늘따라 이상하게 방안이 썰렁해 보였다.
“오빠가 어딜 간 거지, 정말 친구를, 핸드폰도 없으니 연락도 못하고, 그 흔한 핸드폰 하나 없는 사람은 오빠 한 사람뿐일 거야, 집에 오면 스마트폰부터 사라고 해야지,”
소라는 쫑알거리며 방안을 둘러 봤다.
“키가 크니까 침대도 크고, 그런데 특별한 책들은 없네, 이건 중학교 교과서들이잖아, 그렇지 오빠는 고등학교 입학하고 얼마 안 있어서 사고가 났잖아, 그러니까 오빠는 중학교 졸업은 했지만 고등학교는... 아무렴 어때, 오빠는 고등학교를 나온 사람들보다 더 똑똑한데, 난 그런 대박이 오빠가 좋아,”
소라는 책꽂이의 책들을 훑어보며 자연스럽게 책상 위를 보았다. 소라의 시선이 책상 위에 놓인 메모지에 꽂혔다.
“이건 편지잖아,”
순간 소라 얼굴에 근심이 어렸다.
‘아줌마 보세요.’
편지 옆에는 ‘아줌마 보세요.’ 쪽지가 붙어있었다.
소라는 편지를 들곤 내용을 읽어 내려갔다.
아줌마에게
아줌마 한 열흘쯤 집을 비웁니다.
아시겠지만 심란한 마음을 추스르기 위한 것이니 너무 걱정은 하지 마세요. 마음이 편안해지고,, 나 자신을 믿을 수 있을 때 돌아오겠습니다. 아마도 그때가 열흘 후가 될 겁니다.
아줌마, 여러 가지로 감사합니다.
할머님께도 걱정 마시라고 전하시고, 소라에게는 공부 잘하고 있으면 오빠가 돌아가서 큰 선물 준다고 말하세요.
모쪼록 건강하시고, 암튼 심려를 끼쳐 죄송합니다.
그럼 뵐 때까지 모두 평안하세요.
박 대박 올림
편지 내용은 심각하게 받아들일 게 없었다.
하지만 소라는 생각이 달랐다.
어쩌면 어제의 일 때문에 맘이 쓰였나 생각했다.
“치 그깐 일로 집을 나간 것은 정말 아니겠지, 그런데 돌아와서 선물이라니 기대가 되는데...”
소라는 편지를 책상 위에 그대로 두고 방을 나왔다.
그 시각 대박이는 고당봉에 올라가고 있었다.
늦은 시간이라 하산하는 몇 사람을 만났을 뿐 고당봉엔 아무도 없었다. 고당봉에 올라서니 기분은 상쾌하고 좋았다. 그런데도 배가 출출하게 느껴지는 것은 자연현상이었다.
어쨌거나 사람이 며칠 굶는다고 죽지는 않는다. 하지만 지금의 대박이는 영양가 있는 음식으로 잘 먹어야 할 때다. 그렇다고 문제가 있다는 얘기는 아니다. 그것도 3년 동안 소식(小食)인 미음만 먹고 달련된 몸이라 음식을 많이 먹는 것보다는 영양가 있는 음식을 먹는 것이 건강에 좋다는 얘기다.
사실 대박은 몸속에 내재된 기운만으로도 인간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게 되었다. 이를 대박이는 모르고 있을 뿐이다.
“아직까지 불안증세가 나타나지 않는 것을 보면, 아까 그 사건 때문에 해소가 된 건가, 정말이지 내가 생각해도 대단했어, 어떻게 그들의 얘기를 들을 수가 있었는지, 어떻게 그런 용기가 났었는지 말이야, 정말 대단했어,”
대박이는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해 자화자찬(自畵自讚)을 했다. 그것이 사실이긴 했지만 아직까지도 자신에게 어느 정도의 능력이 내재됐는지,, 감을 못 잡고 있음이었다.
꼬륵, 꼬르륵,
“제기랄, 아무래도 돈벌이를 나가봐야겠어, 한두 시간 아르바이트할 곳이 있으면 좋을 텐데, 집 나가면 개고생이라는 어른들 말씀이 이해가 되네,”
한창 먹성이 좋을 대박인데 빵과 우유로 배고픔이 해결될 리가 만무했다. 대박이 자신의 능력을 안다면 참기라도 하겠지만 식탐의 욕구를 떨쳐버리기엔 무리가 있음이었다.
“시내 구경도 할 겸, 온천장에나 나가볼까,”
일단 결정한 일은 실천해 옮기는 것을 철칙으로 생각하는 대박이었다. 잠시 주위를 둘러본 대박은 곧바로 하산했다. 이미 해는 서녘으로 넘어가고 어둠이 서서히 몰려올 때였다.
긍정의 힘으로 파이팅!
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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