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3시경이었다.
아침과 점심을 굶은 대박이는 빵이라도 사 먹을 겸 산성마을에 와 있었다. 한 가게에 들려 빵과 우유를 산 대박이는 가게 앞 의자에 앉아 빵과 우유를 먹었다. 빵을 맛있게 먹은 대박이는 입맛을 쩝쩝 다시곤 우유를 꿀꺽꿀꺽 마셨다.
그때였다.
계 모임이라도 있었는지 20여 명의 아주머니들이 한 식당에서 우르르 몰려나왔다. 산성마을에 왔으니 산성막걸리는 기본으로 먹었을 터였다. 그들 중 일부 아주머니들은 말하는 언사나 얼굴이 불그레한 것이 과하게 술을 마신 것 같았다.
“태성 엄마, 언제 묻지 마 관광이라도 가야겠네.”
“이 여편네가 미쳤나, 술주정은...”
“왜 내가 못할 말 했어, 요즘 굶었다며...”
“그래도 여편네가 못하는 소리가 없어, 정말 이럴 거야,”
“...뭘... 과부가 뭐가 어때서 난리야...”
“자자, 태성이 엄마도 빨리 차에 타요. 모두 갑시다.”
“......”
아주머니들 얘기만 들어도 어떤 상황인지 짐작이 되었다.
이를 지켜본 대박이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꼬르륵, 꼬륵,
“이런 빵 하나론 간에 기별도 안 갔단 말이지, 어떻게 한다. 돈은 없고, 이럴 줄 알았으면 돈은 챙겨 오는 건데, 하여튼 생각이 없다니까, 어쩌지 그렇다고 다시 들어갈 수도 없고, 암튼 마성을 제압하기 전에는 들어가지 않기로 했으니까, 다른 대책을 찾아봐야겠지...”
대박은 집에서 나올 때 입은 옷 그대로 나왔다.
비상금은 물론 주머니엔 겨우 3000원이 전부였다.
빵 하나에 우유를 사니까 3100원, 100원이 부족했지만, 주인아줌마가 그냥 3000원에 주었다.
“일단 밥값 정도는 벌어서 살자. 그래 이딴 일이 걱정거리나 되 남, 남들 다하는 아르바이트라도 하자,”
“......”
사실 고등학교 3년을 정신없는 인간으로 누워있었으니, 특별히 할 줄 아는 게 없었다. 그렇지만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배를 채울 돈벌이는 어떤 일이건 할 생각이다.
“음, 이게 무슨 소리지...”
별안간 대박이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대박이의 귀는 계속 쫑긋거렸고, 날카로운 눈빛은 건너편 산 밑에 있는 한 식당을 노려보고 있었다. 분명 식당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음이었다.
‘이 쌍년아, 그럴 거면 왜 따라왔냐? 에이그 썅,’
‘점심이나 먹으러 가자고 하셨잖아요.’
‘뭐라, 점심, 그래 그랬지, 다 깊은 뜻이 있어서 말이야, 흐흐흐, 너 같은 년은 다루는 방법이 따로 있거든,’
‘년이라니요. 자꾸 욕하지 마세요.’
‘그래도 이년이...’
‘과장님이면 부하 직원에게 이래도 돼요,’
‘이년이 그래도...’
‘저는 이대로는 못 참 아 요. 어어 어지러워...’
‘그러게 말 잘 들었으면 좋았잖아, 괜히 시끄럽게...’
“......”
“이런 개자식이...”
대박이의 입에서 쌍말이 튀어나온 순간이었다. 대박이의 몸은 식당을 향해 쏜살같이 날아가고 있었다. 정말이지 발에 바퀴라도 달린 듯 그렇게 눈 깜짝할 사이에 대략 60미터 거리의 식당 안으로 슈욱 날아들었다.
꽈당, 쿵쾅,
퍽, 끄응...
대박이는 볼 것도 없었다.
식당의 한 방문을 발로 걷어찼고, 문이 박살이 나면서 방안의 정경이 드러났다.. 세상에 꼴불견도 이런 꼴불견은 없을 것이었다. 그것도 대낮에 식당 방 안에서40대 초반의 남자가 20대 후반의 여자를 겁탈하려는 순간이었다.
가뜩이나 눈에 불을 켠 대박이가 놀라서 쳐다보는 남자를 걷어찼다. 남자는 대박이의 발길질에 벽까지 날아가 기절하고 말았다. 그러니까 여자는 약을 먹었는지 홍알홍알 거리고 있었고, 남자는 팬티 바람에 여자의 하의를 벗긴 상태에서 대박이가 들이닥쳤던 것이다.
무슨 일이래,
어머 세상에...
왁짝지껄, 왁짝지껄,
사람들이 방문 앞에 모여들었고, 식당 주인이 나타났다.
“당신 뭔데 난동을 피워! 젊은 사람이 형편 없구 만,”
“아저씨가 식당 주인입니까, 아저씨, 성매매 장소를 제공한 것이 맞지요, 저 새끼가 아가씨를 겁탈하려고 했으니까, 책임지십시오. 거기 아줌마 112에 신고 좀 하십시오.”
“저 요, 전 바빠서...”
지적당한 아줌마는 주인의 눈치를 보며 뒤로 빠졌다.
그때 한 아주머니가 나섰다.
“제가 벌써 신고했어요.”
아주머니는 쌤통이라는 듯이 식당 주인을 노려보며 말했다.
“잘하셨습니다. 그런데 아주머니, 저 아가씨 옷 좀 입혀주세요. 약을 먹였는지 해롱해롱 합니다.”
대박이는 말을 마치곤 기절한 남자에게 다가가 상태를 살폈다. 정신이 들었는지 남자는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옆구리에서 가슴 쪽으로 맞았으니, 어쩌면 갈비뼈 하나쯤은 부러졌을 가능성이 컸다.
“으윽, 으, 너 개새끼, 사람을 쳤겠다. 으윽, 사장님, 이 새끼 좀 어떻게 좀 해봐 주십시오. 이건 전적으로 저 개새끼가 오해한 겁니다. 아가씨가 일어나면 물어 보...”
“정말 이 새끼가, 잘못했다고 싹싹 빌어도 용서가 안 되는데, 뭐라, 오해에 날 겁박해, 씨팔, 경찰 올 때까지 죽치고 가만있지 않으면 죽통을 날려버릴 거다. 새끼야!”
대박이의 목소린 한기가 날릴 정도로 차가웠다.
눈에서는 푸른빛이 일렁였다.
으, 음...
대박이의 말에 남자는 신음을 흘렸고, 이를 지켜본 사장이나 식당 아주머니들은 소름이 돋는지 오싹함을 느꼈다.
대략 10분쯤 지났을 때 지구대 경찰들이 들이닥쳤다.
경찰은 현 상황을 신고한 아주머니로부터 자세한 설명을 들었다. 그리고 현장 사진을 찍은 다음 아직도 해롱거리는 여자는 구급차에 남자는 연행을 했다.
참고인으로 대박이를 찾았지만 언제 사라졌는지 자리에 없었다. 부득이 신고한 식당 아주머니가 대동했다. 식당 사장에겐 필요하면 부르겠다고 말하곤 현장을 떠났다.
대박은 멀리 떨어진 숲 속에서 현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다행히 있는 그대로 사건이 정리되는 것 같았다. 대박은 고개를 끄덕이며 회심의 미소를 짓더니 숲 속으로 사라졌다.
대박이가 사라진 직후였다.
바람처럼 삿갓 노인이 그 자리에 나타났다.
“이러다 정말 암흑의 꼭두각시가 되는 것은 아니겠지, 마성을 완전히 제어하지 못한다면 문제가 심각한데...”
무언가 못마땅한 표정의 삿갓 노인도 홀연히 자리를 떴다.
사실 명덕 도인은 처음부터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대박이의 행동에 문제가 있음을 인식하면서도 나타나지 않은 것은 자신이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당사자인 대박이가 스스로 마성을 이겨내야만 한다는 것이다. 명덕 도인으로선 안타까울 뿐이었다.
3월 1일, 태극기를 답시다.
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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