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월의 땡볕이 쑹산으로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고송들조차도 땡볕에 가지를 축 늘어트렸고 준극봉 중턱의 작은 암자는 더위를 먹은 듯 헉헉대고 있었다. 그래도 선선한 바람이 암자를 스쳐 지나갈 때면 평상에 앉아있는 신선 같은 노인과 추레한 노인의 장포가 너풀거렸다.
천길 벼랑 끝에 놓인 평상,
보기에도 어울리지 않는 두 노인이 마주 앉아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나마 고송이 땡볕을 가려 평상으로 그늘을 드리웠다. 까마득한 아래로는 건재해 보이는 무림맹이 내려다보였다. 두 노인은 무슨 얘기를 나누는지 안색이 수시로 변했다.
“방주! 놈들의 만행이 날로 극심해질 것이네.”
“소인도 그것이 걱정입니다.”
두 노인은 청산 진인과 개방 방주 주신개였다.
주신개는 진가장의 참혹한 현장을 둘러보고 모종의 지시를 내린 뒤 쑹산으로 달려왔다. 오는 길에 잠시 민심을 살피긴 했다. 하지만 흉흉해진 민심은 강호 무림에 대대적인 싸움이 벌어질 것이라는 악성 소문 때문에 더욱 흉흉해진 상태였다.
“방주! 진충원이 자취를 감췄으니, 제갈 세가를 집중적으로 감시를 하게, 물론 소문에 대한 진위도 파악해야 할 것이네. 알겠는가?”
“여부가 있습니까, 하지만 맹주님, 무림맹이 나서지 않는 한 개방의 능력만으론 놈들의 실체를 알아내기에 어려움이 많습니다. 어떤 조치든 취하셔야 합니다. 소인 생각으론 일련의 사건들이 아무래도 무림맹을 교란하기 위해 저지른 놈들의 음모인 것 같습니다.”
“잘 봤네. 놈들은 지금 모종의 음모를 진행 중일 것이네. 분타를 습격한 것만 봐도 그렇고, 게다가 괴한들이 습격한 것처럼 위장하여 식솔들을 몰살한 천인공노할 짖을 저지른 것만 봐도 알 일이지, 인두겁을 쓰고는 저지를 수 없는 만행이었네. 아무리 생각해도 진충원 그자가 사황련의 련주일 가능성이 크네. 진충원이 련주라면 놈은 악마일세!”
“맹주, 그럼 그자가 사황련 련주란 말입니까?”
“놈이 식솔들까지 죽일 정도로 냉혹한 놈이라면 의심할 여지가 있지 않겠나. 진즉 놈을 알아봤어야 했는데---”
“워낙에 철저한 놈이라, 그동안 수상한 점은 많았지만 확인된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지금에서 생각해보면 놈의 행보가 다 연관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갈 세가를 집중적으로 감시를 하라는 것일세!”
“알겠습니다. 제갈왕민, 그자가 하는 짓거리를 보면 부친인 제갈 통천과는 딴판입니다. 통천의 아들 같지가 않습니다.”
“아니지, 오히려 판박이네. 원래 통천은 야심이 큰 사람이었네. 정사 대전에 참여하여 힘을 과시한 것도 강호 무림을 장악하려는 속셈을 내보인 것이었지, 암튼 광마란 자에게 패한 것이 통천으로서는 한이 됐을 것이야, 아마 운명할 때도 제대로 눈을 못 감았을 테지---”
“그런 일이, 그러고 보면 소인은 눈뜬장님이었습니다.”
“그런 말 말게, 자네처럼 사람 보는 눈이 정확한 사람도 현 무림에선 찾아보기 힘들 것일세!”
“어쨌든 통천과 판박이라면 큰일 낼 인물이군요.”
“.......”
제갈 통천은 무림 10대 고수의 반열에 올랐던 인물이었다.
정사 대전에 참여한 제갈통천은 수행했던 세가의 무사들을 거의 다 잃었고, 자신은 중상을 당한 몸으로 몇 남지 않은 수하들과 세가로 돌아갔다.
보름 후,
강호를 떠받칠 무림맹이 쑹산에서 결성되었다.
어떤 이유에선지 무림맹 결성에 관한 사전 통보가 제갈 세가엔 닫질 않았다. 제갈 통천은 이런 사실도 모른 채, 광마에게 패하여 병석에 누워있는 자신을 자책만 하고 있었다.
그리고 며칠 후,
제갈통천은 분통이 터지는 보고를 받았다. 보고는 겨우 도사(道士) 십여 명만 대동하고 정사 대전에 참여했던 무당파 청산 진인(靑山眞人)이(靑山眞人) 초대 무림맹 맹주에 추대되었다는 그야말로 충격적인 보고였다.
그래도 제갈 통천은 무림 10대 고수 중 으뜸이고 성인군자로 통하는 청산 진인이 맹주가 되었다는 사실에 크게 분개하진 않았다. 하지만 맘에 들지도 않는 인물들이 장로에서 총관에 이르기까지 권력의 중심에 추대되었다는 보고를 듣고는 얼마나 억울했던지 각혈까지 했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제갈 통천은 정사 대전에서 얻은 중상(重傷)이 원인이 되어 2년 만에 운명했다. 그 뒤를 이어 아들인 제갈왕민이 어린 나이에 대를 이어 가주가 되었고 무림맹과는 담을 쌓고 지냈다.
“맹주님! 이충입니다.”
준수한 젊은 무사가 암자를 돌아 평상으로 다가왔다.
힘들게 달려왔는지 이마엔 구슬땀이 맺혔다.
“왔느냐?”
“이게 누구신가, 맹주께서 아낀다는 이충!”
두 노인이 평상에서 내려오며 젊은이를 반갑게 맞았다.
“방주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동안 무량하셨습니까?”
“암, 볼수록 탐나는 젊은 입니다.. 맹주님!”
“쓸데없는 소리, 그래 무슨 일이냐?”
“장로 태청노사께서 긴급회의를 소집했습니다. 대 총관께선 회의에 맹주님도 참석하셔야 한다며 모셔오랍니다.”
“이젠 내려갈 때가 된 모양이군. 방주, 함께 내려감세!”
“늙은이들 잔소릴 어떻게 듣습니까? 소인은 이참에 산동성 제남에나 가 봐야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하시게, 일단 내려감세.”
두 노인과 무사가 암자를 벗어나자 어디에 숨어 있다가 나타났는지 십여 명의 무사들이 그들을 호위하듯 따라갔다. 하나같이 흰색무복에 흰색 머리띠를 했으며 검을 들고 있었다.
무림맹(武林盟), 작은 성을 방불케 하는 웅장한 장원이 눈앞에 펼쳐졌다. 먼저 육중한 대문 위에 내 걸린 커다란 현판이 눈에 들어왔다. 현판엔 무림맹이란 글씨가 강호 무림의 태두라는 것을 자랑하듯 용사비등(龍蛇飛騰)의 필체로 양각되어 있었다.
무림인들이라면 무림맹이란 현판만 보고도 두려움과 위엄을 느꼈을 터였다. 그러나 장원에 드리운 무사 태평한 기운처럼 더위에 지쳐 보이는 무림맹이란 글씨엔 기강도 없는 안일함만이 어려있는 듯 보였다.
육중한 문을 들어서자 2장 넓이의 길이 쭉 뻗어있었고, 자연 그대로의 정원에 집을 지은 것처럼 크고 작은 100여 채의 전각들이 산재해 있었다.
그리고 문을 지키는 일단의 무사들은 그런대로 기강이 잡힌 듯 절도가 있었으나, 지나치는 무사들이나 곳곳에 보초를 서는 무사들의 얼굴엔 권태와 나태가 그대로 드러나 보였다.
무림맹이 창설된 지 장장 50년이었다. 그동안 큰 사건 없이 반세기를 지나다 보니 하늘을 찌를 것 같았던 위용도 땅바닥에 곤두박질친 꼴이었다. 어쨌거나 무림맹이 아직도 건재한 것은 계파 간에 힘을 내세우려는 권력다툼이 그나마 무너지려는 무림맹을 지탱하는 원동력이었다.
직선 도로를 따라 150장쯤 들어가자 웅장한 전각이 버티고 있었다. 바로 대전이자 맹주 전이었다..
응원은 모두에게 큰 힘이 됩니다.
긍정의; 힘으로 파이팅!
'검투사의 아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검투사의 아들 50화 (2) | 2022.08.24 |
---|---|
검투사의 아들 49화 (6) | 2022.08.20 |
검투사의 아들 47 (0) | 2022.07.16 |
검투사의 아들 46 (0) | 2022.06.05 |
검투사의 아들 45화 (0) | 2022.05.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