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투사의 아들

검투사의 아들 45화

썬라이즈 2022. 5. 4.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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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이 그린 암벽화(추상화)

자연이 그린 암벽화(추상화)

그 시각이었다.

밤이 되자 여느 때처럼 장원의 대문은 굳게 잠겼다.

종일(終日) 바쁘게 일했던 일꾼들은 더위 때문인지 거처 밖에 모여 앉아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천수의 거처에서도 소곤소곤 얘기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렇게 별빛 아래 드러난 장원은 평화로워 보였다.

 

바로 그때였다.

무슨 일이 벌어지려는 것일까,

장원 안팎을 은밀히 감시하는 검은 인영들이 있었다.

하나같이 검은 무복에 복면을 한 자들이었다.

 

시간은 계속 흘러갔다.

자정이 가까워질수록 장원은 숨이 막힐 정도로 살기가 감돌기 시작했다. 그때 후원 밀실에서 은밀하게 나서는 자가 있었다. 덩치가 커 보이는 사나이였고 복면에 검을 단단히 거머쥐고 있었다. 덩치가 커서 그런지 무거워 보이는 걸음걸이가 불안해 보이긴 했다. 그러나 사나이는 후원을 빠르게 벗어나 천수의 거처인 허름한 전각 쪽으로 향했다.

 

바로 그 시각,

천수는 부인과 나란히 누워 잠을 청하고 있었다.

부인은 세 식구가 행복하게 살 생각에 피곤도 잊었다.

그렇지만 자꾸만 눈이 감기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동안 누적된 피곤이 쏟아졌음이었다.

부인은 행복한 꿈을 꾸듯 스르르 잠들고 말았다.

 

부인은 낮엔 잡일을 하느라 피곤이 싸였고 밤엔 천지신명께 비느라 제대로 잠도 못 잤었다. 그러다 지아비가 돌아왔고 기쁜 소식까지 접하다 보니 긴장감이 풀렸음이었다.

 

두 달 만에 그 곱던 얼굴이 이토록 야위다니,’

 

천수가 부스스 일어나 흐릿한 불빛에 드러난 부인의 얼굴을 들여다봤다. 야윈 부인의 얼굴을 보자 울컥 눈물이 날 것 같아 눈을 꽉 감았다가 다시 떴다.

 

부인, 미안하오. 정말 미안하오.’

천수는 부인에게 미안한 마음뿐이었다.

 

부인, 약속하리다. 앞으론 근심 걱정 없이 살게 해주겠소! 우리 원세도 효자이니 속을 썩이진 않을게요. 우리 행복하게 삽시다. 원세야, 기쁜 소식을 빨리 전해 주고 싶구나, 우리가 평화롭게 살 곳이 정해졌단다. 아버진 네가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으리라 믿는다.’

 

천수는 부인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원세를 생각했다. 천수의 지금 심정은 하루가 여삼추라 날짜가 바람처럼 지나가길 바랐다. 아들인 원세를 하루라도 빨리 봤으면 정말이지 소원이 없었다. 그뿐인가, 미리 보고 온 산골에서 세 식구가 함께 살아갈 날을 생각하면 꿈만 같았다.

 

휘히잉--

사라락, 사라락

바람이 정원수를 흔들곤 전각을 휘돌아 지나갔다.

 

그때 언제 나타났는지 검은색 일색의 복면을 한 사나이가 방문 앞에 우뚝 서 있었다. 그런데 복면 사이로 드러난 사나이의 두 눈빛이 순간, 흔들거렸다가 이내 싸늘한 눈빛으로 변했다. 사나이 입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천수! 천수! 급한 일이네. 빨리 나와 보시게,”

급한 일이라니, 무슨 일인가?”

 

덜컹-

휘익! 서걱!

 

으윽! ---

 

친구의 다급한 목소리에 천수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방문을 나섰다. 그 순간, 번뜩이는 빛이 목을 스쳐 가슴을 가르고 지나갔다. , 피가 뿌려졌고 피비린내가 퍼졌다. 검술이나 무공에도 한 수 위였던 천수였기에 복면 사나이는 황급히 나서는 천수를 기습했다. 그래도 천수는 벽을 잡고 버티고 서서 부릅뜬 눈으로 복면 사나이를 쳐다봤다.

 

덕보! 자네가...”

대인! 무슨...”

문소리에 깬 부인이 사색이 되어 부들부들 떨었다.

 

부인, 그대로 계시오. 이보게, 이유라도 알려 주시게,”

미 미안하네. 내 죽일 놈일세! 하지만 어쩔 수~ !”

복면인의 검이 또다시 빛을 뿌렸다.

 

휘익!

!

 

대인! 대인!”

부인은 스르르 무너져 내리는 지아비에게 다가갔다.

 

이얍!”

그리고 천인공노할 만행이 또다시 저질러졌다.

휘익!

“크억! 대~~인, 원 세 야~~~”

 

시퍼런 검이 바람 소리를 일으키며 부인을 베었다. 피가 뿌려졌고 신음성이 흘러나왔다. 그러나 죽음 앞에서도 지아비를 부둥켜안은 부인은 지아비와 아들의 이름을 불렀다. 그 목소린 너무도 처절했다.

 

추객 고천수, 무공도 무공이지만 노예 검투사로 몸을 단련한 덕에 죽음의 살기를 느끼는 데는 남다른 면이 있었던 인물이었다. 그리고 호위무사로서 잠을 잘 때도 검은손이 닿는 곳에 두었고, 특별한 일이 아니면 옷을 입은 채 잠을 자는 천수였다. 그런 천수가 친구의 손에 죽임을 당했다.

 

천수에게 유일한 친구 중 한 명이 덕보였다.

친구인 덕보의 목소리가 아니었다면 경각심을 일으켰을 것이었다. 그러나 친구의 다급한 목소리에 일시 무사의 본분을 잊었다. 그것이 화를 자초한 꼴이 되고 말았음이었다.

 

- 내가 무슨 짓을...”

덕보! 수고했다.”

 

멍청히 두 구의 시신을 바라보고 서 있는 복면인 뒤로 다른 복면인들이 바람처럼 나타났다. 허리가 굽은 자는 분명 쌍노일 것이었다.

 

듣거라! 장원에 불을 질러라! 한 놈도 살아있는 자가 없어야 할 것이다. 모조리 죽여라!”

복명! 복명!”

꼽추인 쌍노의 일갈에 복면인들이 분분히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덕보! 정말 수고했다. 장주께서 큰상을 내리실 것이다. , 이곳에도 불을 질러라! 흔적을 남겨선 아니 될 것이다.”

쌍노는 들고 있던 솜방망이에 불을 붙여 덕보에게 건넸다.

 

 

불이야! 불이야! 불 불이야!!!

아악!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엄마! 엄마!

아버지! 아버지!

으악! 아악!! 아아악!!!

 

장원은 순식간에 불바다가 되었다.

눈을 뜨곤 볼 수 없는 아비지옥이었다.

 

복면 사나이가 두 구의 시신 앞에 무릎을 꿇곤 천천히 복면을 벗었다. 이웃집 아저씨처럼 마음씨 좋아 보였던 얼굴이 드러났다. 강덕보, 바로 천수의 친구 덕보였다.

 

잠시 두 구의 시신을 내려다보던 덕보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세상을 원망하듯 부릅뜬 친구의 두 눈을 감겼다.

 

천수! 날 원망하시게, 아주머니! 용서를 빌진 않겠습니다. 천수, 아주머니, 부디 극락왕생을---”

 

덕보는 복면을 다시 썼다.

그리곤 횃불로 전각에 불을 붙였다.

삽시간에 瓦家는 불길에 휩싸였다.

 

 

처절했던 비명이 잦아들자 하늘을 태울 듯이 화광만 충천했다. 장원에 남아있던 남녀노소 70여 명이 영문도 모른 채 처참히 불귀의 객이 되어가고 있었다. 너무나도 비참하고 억울한 죽음들이었다.

 

!

天人共怒할 만행의 증거가 불길에 사라지고 있었다.

 

장원이 내려다보이는 산 능선이었다.

20여 명의 복면 사나이들이 화광이 충천한 장원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른거리는 불빛에 드러난 복면인들은 마치 불의 축제를 구경하는 살인귀들 같았다.

 

듣거라! 풍객은 뒷수습을 말끔히 마치고, 기간 내에 목적지로 귀환하라! 나머진 날이 밝기 전에 읍을 벗어나야 할 것이다. 나를 따라라!”

 

일단의 무사들이 산속으로 사라지고,

풍객은 남은 인원을 대동해 장원으로 향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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