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가장의 순찰 무사가 살해당한 후, 량산은 범인을 잡으려는 무사들로 벌집을 쑤신 듯 시끌시끌했었다. 그러나 범인은 잡지 못했다. 그 와중에도 장주인 진충원은 모종의 계획을 서둘러 진행시키고 있었다.
그렇게 날짜는 훌쩍훌쩍 지나가고,
암동도 어김없이 새날을 맞이하고 있었다.
날이 밝는가, 암동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원세는 눈을 뜨자마자 샘 앞에 앉아 운공 중이었다.
광마인 노인도 운공을 하는지, 미동도 없었다.
‘저놈의 자질로 봐선 마류 흡자결을 쉽게 대성할 것도 같은데, 검법도 그렇고, 추풍검로라고 했던가, 내공을 활용해 펼친다면 그 위력이 상상을 초월할 것이야, 최연소 고수가 탄생하는 건가, 활용법만 제대로 가르친다면 대성할 놈인데,’
노인은 원세만 생각하면 뭐든지 다 가르쳐 주고 싶어 안달이 났다. 하지만 목숨처럼 받들어온 주인의 명을 어겨가며 무공을 가르칠 수는 없었다. 원래 융통성 없이 고집불통이긴 했다. 그런데 나이가 백 살이 훌쩍 넘은 지금에도 유통성 없는 고집은 여전한 모양이었다.
그랬던 노인인 광마가 원세에게 무공을 가르쳐 주겠다며 조건을 내걸었다는 것은 정말이지 고무적인 일이었다.
노인 광마는 한을 풀 수만 있다면 무공을 가르칠 결심을 굳히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조건을 전제로 한 것이라 원세의 결정에 딸린 문제였다. 하지만 은근슬쩍 각종 무공의 활용법을 그것도 원세의 체질과 습성에 맞게 흘리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습득하게 만든 조처였다.
그동안 원세는 마류 흡자결을 연공 하는 한편 틈틈이 추풍검로를 수련했다. 검이 없다 보니, 들고 들어왔던 육각 몽둥이를 목검으로 생각하고 수련에 임했다. 목검보다 몇 배로 무거웠지만, 검법을 수련하는 데는 장점이 훨씬 많았다.
‘아직도 운공이 원활히 안 되는 걸 보면 방법에 문제가 있는 건가, 하여간에 음공은 다루기도 힘이 드네. 젠장, 이러다가 언제 대성을 하지---’
원세는 지금 좌측 단전에 갈무리한 음공을 운공 중이었다. 음공은 극음기(極陰氣) 자체인 만빙어를 먹은 덕에 생성된 음기였다. 그 음기를 내공으로 융화시킨 것도 상상을 초월한 것이었다. 원양지체인 원세가 아니라면 꿈도 못 꿀 일이었다.
만빙어를 먹고 생성된 음기를 끌어모아 좌측 단전에 갈무리하기까지 원세가 당한 고통은 말로는 다 설명할 수가 없었다. 지금도 문득문득 생각나면 짜릿짜릿 진저리가 쳐졌다. 거기엔 광마 할아버지의 조언과 은밀하게 상승의 음공으로 도와준 결과이기도 했다.
어쨌거나 극음기의 음기를 내공으로 갈무리하기까지, 온몸으론 얼음송곳으로 쿡쿡 찔리는 고통이 엄습했고, 창자는 창자대로 토막토막 잘리는 끔찍한 고통을 당했었다. 결국은 그 고통을 견디지 못해 몇 번이나 주화입마에 당할 위기에 처하기도 했었다. 그 위기의 순간마다 광마 할아버지의 호통에 정신을 차렸고 위기를 면한 원세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위기의 순간마다 노인 광마가 자신의 정순한 내공을 그것도 은근히 흘려 넣어 뒤틀린 혈을 풀어주었기에 주화입마에서 벗어날 수가 있었다. 원세는 뭔가 이상함을 느꼈지만 다급한 마음에 깊이 생각하지 못했다.
‘오늘이 58일째다. 앞으로 42일, 부모님은 평안하시겠지, 아가씨도 잘 지낼 거야, 그래 42일만, 그때는 집에 돌아갈 수가 있다. 그 안에 마류 흡자결은 물론이고 양공과 음공을 확실히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추풍검로도 대성을 해야겠지, 일단은 마류흡자결부터...’
한참 동안 상념에 잠겼던 원세가 양손을 천천히 가슴으로 끌어모았다. 마류 흡자결을 펼치기 위한 동작이었다. 이번엔 가슴으로 끌어모은 양손을 자연스럽게 벌리곤 좌우로 흔들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좌우로 흔들던 양손을 다시 가슴으로 모은 순간이었다. 우렁찬 기합 소리와 함께 원세가 양손을 앞으로 쭉 내뻗었다.
“이얍!!”
슈슉-
퍼펑! 철벙!
반 장 앞의 샘물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솟구쳤다가 떨어져 내렸다.
“어! 이거 위력 한번 센데,”
별안간 암동이 흔들릴 정도로 큰소리가 났지만, 노인은 힐끔 원세를 돌아봤을 뿐이었다.
정작 놀란 것은 원세였다.
“쯧쯧- 멍청한 놈! 그렇게 한다고 만빙어가 잡히겠느냐? 그건 흡자결이 아니라 장풍이니라!”
“너무 야단치지 마세요. 마류 흡자결을 운용한다는 것이 그만, 그런데 할아버지! 장풍이라고 하셨습니까?”
“그렇다 이놈아!”
“아, 기를 모았다가 내 뻗는 것이 장풍이란 말이지요. 듣던 대로 장풍이 있기는 있었구나!”
“쯧쯧, 제대로 배우질 못했으니 저 모양이지,”
“할아버지! 너무 신경 쓰지 마십시오. 할아버지에게 제대로 무공을 배웠으면 좋겠지만, 사람을 죽이라는 조건 때문에 저는 이대로가 좋습니다. 그러니 할아버지는 문제 있을 때만 지적해 주십시오.”
“이놈아! 그게 그거지,”
“할아버지! 이놈 소린 빼세요. 그리고 정식으로 배우는 건 아니잖아요. 할아버지가 손자 잘못하는 것 지적한 거니까, 안 그래요. 할아버지!”
“내 저, 에 잉-”
노인은 꼴도 보기 싫다는 듯 고개를 휙 돌렸다.
‘음, 장풍이라, 응용하면 요긴하게 써먹겠고, 하지만 마류 흡자결은 큰 진전이 없으니, 내 손으로 만빙어 잡기는 틀린 건가, 아니지 할아버지가 잡는데 나라고 못 잡겠어, 그래, 너무 조급했고 방법이 틀렸어!’
원세는 무슨 생각을 했는지 슬그머니 일어서선 주위를 둘러봤다.
‘저놈이 뭘 찾지?’
노인 광마는 원세를 힐끔 쳐다보곤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래, 마류흡자결, 내 수법으로 만들 때까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
원세는 바닥에 뒹구는 몇 개의 돌덩이를 주워선 일정 간격을 두고 크기대로 바닥에 늘어놨다. 그리곤 그 앞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사실 원세는 마류 흡자결을 어느 정도는 성취를 본 상태였다. 원세가 자연스럽게 손을 놀리자 작은 돌덩이는 움직이기 시작했고, 손을 끌어당기자 돌덩이는 날아오르듯 떠올라 원세의 손으로 날아왔다.
‘그래 바로 이거였어, 그런데 뭐가 문제지,’
원세는 차례대로 돌덩이를 움직여 손에 잡았다. 그러나 주먹만 한 돌덩이는 움직이기만 할 뿐 떠오르진 않았다.
‘가만, 마류 흡자결은 분명 제대로 운용했다. 그런데도 큰 놈은 통하지 않는단 말이지, 그렇다면 문제는 그렇지, 아직 내공이 부족해서 그럴 거야, 좋다. 누가 이기나 해보자. 더 열심히 내공 수련을, 그땐 돌덩이가 아니라 육각 방망이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을 거야, 그때는 할아버지가 대성했다고 인정을 하시겠지,’
원세는 천천히 그리고 자연스럽게 가슴까지 끌어올렸던 손을 단전으로 모았다. 음공을 갈무리하는 동작이었다. 갈무리가 끝났는지 지그시 감았던 눈을 뜬 원세가 육각 방망이를 집어 들곤 벌떡 일어섰다.
----------계속
충!
'검투사의 아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검투사의 아들 39 (0) | 2022.02.07 |
---|---|
검투사의 아들 38 (0) | 2022.01.29 |
검투사의 아들 36 (0) | 2022.01.21 |
검투사의 아들 35 (0) | 2022.01.17 |
검투사의 아들 34 (2) | 2022.01.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