량산의 서쪽에 자리한 한 협곡이 노을에 물들어가고 있었다. 그때 검정 무복의 육 척에 가까운 건장한 사나이가 협곡으로 내려섰다. 사나이의 얼굴은 평범해 보였으나 눈이 부리부리한 것이 대장부다운 기질이 엿보이는 50대 무인이었다.
“오늘은 장원에 잠입을 해 볼까, 아니야, 너무 지체했다. 맹주께서 심려가 크실 테니, 날이 밝는 대로 뜨자.”
사나이는 주위를 한차례 둘러보곤 협곡을 건너 능선으로 올라섰다. 그 순간 사나이의 눈에 이채가 발해졌다. 대략 50장쯤 떨어진 능선 아래, 두 채의 초막이 눈에 들어왔고 몇 사람이 모닥불을 피워놓고 있었다.
“킁킁- 잘하면 포식을 할 수 있겠군.”
“......”
늑대처럼 킁킁거리며 코를 벌름거린 사나이가 초막으로 향했다. 빠른 걸음도 아닌데 사나이는 숨 열 모금 만에 초막 앞에 당도했다.
“실례 좀 하겠습니다.”
“아이 깜짝이야, 제길, 기척 좀 하지,”
기척도 없이 나타난 사나이로 인해 모닥불을 가운데 두고 둘러섰던 다섯 명의 사나이들이 휙 돌아봤다. 그들은 멧돼지 새끼를 통째로 굽고 있었는데, 기척을 느낀 순간 옆에 놓였던 활과 날이 시퍼런 도끼를 잽싸게 집어 들었다. 사냥꾼다운 몸놀림이었다.
“낭인인가? 무사께선 어쩐 일이시오.”
도끼를 집어 든 50대 중반의 사냥꾼이 한발 나서며 히죽 웃었다.
“놀랬다면 죄송하외다. 떠돌이 낭인인데 길도 잃었고, 이놈의 코가 이쪽으로 안내를 합디다.”
무사가 코를 툭툭 두드렸다.
“어지간히 배가 고팠던 모양이요. 암튼 온 손님이니 함께 먹읍시다. 가까이 오슈!”
‘수상한데 혹시, 진가장 무사를 죽인 자가 아닐까?’
제법 덩치가 큰 30대 사냥꾼이 흘끔흘끔 무사를 훔쳐봤다.
사실 량산에 거처를 둔 사냥꾼이나 약초꾼들은 진가장과 인연이 깊었다. 사냥꾼들은 사냥감을 진가장에 팔아서 쏠쏠한 재미를 봤고, 약초꾼들은 15년 전부터 약초를 팔아 생계를 유지했다. 개중에는 목돈을 만진 자도 여러 명이나 되었다. 그들 중 몇 명은 아예 가족을 데리고 읍내에 나가 살았다. 그런 관계로 장주인 진충원은 주위로부터는 대인에 호인(好人)이란 소리까지 들었다.
한 사냥꾼이 기름이 뚝뚝 떨어지는 통돼지를 꼬챙이로 푹푹 찔렀다. 꼬챙이가 푹푹 들어가는 것을 보니 잘 익은 것 같았다. 이젠 먹어도 되었다.
사나이가 량산에 온 지, 칠 일이 지나고 있었다.
그동안 변변한 음식은 입에 대지도 못했다. 다행스럽게도 약초꾼을 만나 주먹밥을 나눠 먹었으며, 낭인 시절부터 지금까지 무인으로 산 것이 도움이 되어 사냥으로 배를 채우기도 했다. 그런데 이틀 동안은 몸을 숨기느라 칡뿌리로 허기를 면했을 뿐이었다.
“막손아, 평상 좀 들고 와라!”
“이보슈! 좀 거드슈!”
“그럽시다.”
50대 사냥꾼의 명에 흘끔거렸던 30대 사냥꾼이 못마땅하다는 투로 말했다. 무사는 한참 어려 보이는 사냥꾼의 퉁명스러운 말에도 언짢은 기색 없이 사냥꾼을 따라갔다.
두 사람이 한쪽에 있던 커다란 평상을 모닥불 옆으로 들고 왔다. 대여섯 명이 둘러앉기엔 충분한 크기였다. 평상 위엔 누런 소금이 담긴 넓적한 사기그릇과 길쭉한 젓가락들이 아무렇게나 놓여있었다.
“손님이니, 먼저 드슈! 술은 떨어져서 없어요.”.”
“술은요 뭘, 이거 정말 고맙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이렇게 먹는 것도 일품 입죠.. 무사님.”
통돼지를 찔러보던 사냥꾼이 시퍼런 칼을 들곤 기름이 뚝뚝 떨어지는 앞다리 살을 큼직하게 썰어선 무사에게 건넸다. 군침이 돌던 판에 고기를 받아 든 무사는 누런 소금을 꾹 찍어서 한입에 넣고는 씹어 먹었다. 얼마나 뜨거운지 입안이 덴 것 같았지만 꿀맛 같은 고기 맛에 개의치 않았다.
“이젠 손님도 먹고 싶은 만큼 맘대로 잘라 잡수 슈!”!”
“알겠소. 정말 맛있군요.”
“뼈에 붙은 살을 발라 먹는 맛도 일품 입죠.”.”
고기를 나눠준 사냥꾼은 뼈가 드러난 뒷다리를 쓱싹 잘라 들곤 평상에 턱 앉는다. 그리곤 뼈에 붙은 살을 정말이지 맛있게도 발라 먹었다. 사나이도 눈치 볼 것 없이 고기를 맘껏 잘라먹었다..
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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