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권 49화
크아아악!
원세는 미친 듯 몸을 떨며 기성을 질러 댔다.
그리곤 동작을 멈췄다.
“으, 다 죽일 거야, 다...”
검을 비껴든 원세가 비틀거리며 장내를 둘러봤다. 충혈된 눈에선 줄기줄기 광기가 발산되었다. 이를 지켜보는 노인과 수련, 그리고 무사는 사색이 되어 부들부들 떨고 있을 뿐 신음조차 흘리질 못했다. 원세의 모습이 얼마나 무서웠던지 오금이 저렸고 숨이 콱 막혔다.
“으, 정신을,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야, 그랬지, 다 죽인다고 했었지, 이거 내가 미쳤나,”
이성이 돌아온 것인가, 뭐라고 중얼거린 원세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세 사람을 쳐다봤다. 거의 정상으로 돌아온 눈빛은 자책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하지만 세 사람은 두려움에 감히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숙였다.
‘제기랄, 염라환을 먹고 암동에 갇힌 뒤부터 뭔가 이상하다 했더니, 그래 염라환의 공능을 제어하느라 염라공법을 운용한 것이 사단이 된 거야, 그때 생성된 그 이상한 내공, 그리고 이 검에서 받아들인 그 기운, 그래 그 기운염라수라공이 마기였어, 이제 어떻게 하지, 검을 돌려줄까, 그럼 내가 지는 거야, 그 무엇이든 이겨내야 해!’
원세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미동도 없이 서서 생각에 잠겨 있었다. 바람이 혈향을 풍기며 원세의 옷자락과 머리카락을 휘날렸다.
‘모든 것은 자연의 이치에 순응한다. 사용자에 따라 악과 선이 갈린다. 그래 검은 내 애검이다. 나쁜 자들의 손에 넘겨줄 순 없다. 정신 차리자. 일단 수련 누나를 무림맹에 데려다주고 련으로 돌아간다.’
원세는 생각을 정리하곤 다시 장내를 둘러봤다. 자신이 생각해도 너무했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눈살을 찌푸렸다.
가볍게 몸을 날린 원세가 세 사람 앞에 내려섰다.
그동안 보여준 몸놀림보다 한 단계 상승한 몸놀림이었다.
“할아버지! 누나! 본의 아니게 살생을 저질렀습니다.”
원세의 목소린 부드러웠다.
“젊은이! 잘했네. 쳐 죽일 놈들이 마누랄 죽였네.”
노인은 두려움이 싹 가셨다는 듯 웃어 보이곤 할머니 생각이 났는지 눈물을 떨궜다. 수련은 애써 두려움을 떨치듯 한차례 머리를 흔들곤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원세를 쳐다봤다.
“공자님! 괜찮으세요.”
“네 괜찮습니다.”
“.......”
‘으, 어쩌지, 으으,’
무사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벌벌 떨고 있었다.
‘그래도 공자님, 무서웠어요. 하지만 고마워요. 그리고 원수를 갚아줘서 너무나 감사해요.’
수련은 나타난 자들이 세가를 멸문시킨 것이 자신들 소행이라고 말한 순간 정신이 아뜩했었다. 이젠 공자는 물론이고 할아버지와 자신까지도 죽게 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의외의 결과가 나타났다. 하지만 광인처럼 변해 무사들을 쳐 죽이는 원세를 보곤 두려움에 치를 떨어야 했다. 생각으론 원수와 싸우는 원세에게 응원이라도 보내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은 생각뿐이었다. 원세의 충혈된 눈과 몸에서 뿜어진 살기는 수련으로선 감당하기 어려운 두려움이었다.
‘무서울 게 없던 나였는데, 이게 무슨 꼴인가, 놈이 날 살려주지는 않을 테고, 놈이 방심했을 때 죽여, 아니야 놈의 능력으로 봐선 어림도 없다. 이대로 도망을 칠 수도 없고...’
정신을 수습한 무사는 자신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얘기 중인 원세를 기습할까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뿐이었고 이젠 죽었구나, 자포자기 상태였다. 원세의 무위를 두 눈으로 직접 목격을 했으니, 죽음이 두렵지 않다면 모를까, 감히 나설 엄두조차 낼 수가 없었음이었다.
“아저씨!”
“...예!”
원세의 부르는 소리에 놀란 무사는 공대를 쓰곤,
멍하니 원세를 쳐다봤다.
“아저씨! 아저씨는 살려 보내겠어요. 하지만 저분들의 시신은 묻어주고 가셔야 합니다. 그리고 전갈 아저씨한테 전하세요. 무고한 사람들을 죽이는 것은 용서받지 못할 일이라고, 그리고 나는 련으로 돌아갈 것이니, 그냥 돌아가시라고, 그럼 저들을 묻어주고 가세요. 우린 먼저 가겠습니다.”
“정말, 저들만 묻어주고 가면...”
“그래요. 불쌍한 분들이니 잘 묻어주세요. 그리고 가시거든 전갈 아저씨한테 고마웠었다고, 무고한 사람들은 죽이지 말라고 꼭 전하세요.”
“그래 알았다. 내 꼭 그렇게 전하지, 휴-”
무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등줄기로는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할아버지, 누나! 이만 가요.”
원세는 씩 웃어 보이곤 앞장을 섰다.
“그래 가자.”
“예 공자님!”
그 뒤를 노인과 수련이 따라갔다.
‘세상에 저런 괴물 같은 놈이 다 있다니, 암행 위사께서도 감당 못 할 놈이다. 아니지 부주라면 놈을 작살 낼 수 있을 텐데, 휴- 무서운 놈, 죽었다가 살았다.’
무사는 멀어지는 그들을 바라보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
거암봉엔 땅거미가 깔리고 있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 통나무집에서 통곡 소리가 들려왔다.
“마누라! 아이고 마누라!”
“할머니! 흑흑, 할머니!!”
노인과 수련은 노파의 시신을 붙들고 오열을 터트리고 있었고, 원세는 묵묵히 서서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원세는 광기에 두려움 없이 사람들을 죽였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상황이 종료된 뒤였다. 장내를 둘러봤을 땐 자신이 저지른 끔찍한 광경만 눈에 들어왔다. 그렇다고 자책만 하고 있을 순 없었다. 원세는 일단 무사에게 죽은 자들의 시신을 수습하게 하고, 놀랐을 노인과 수련을 데리고 현장을 떠났다. 그리고 할머니의 시신을 수습하러 달려온 터였다.
“할아버지! 우선 할머니를 안으로 모시지요.”
“이거 정신이 없다 보니, 아가씨, 그만하시지요.”
“예 할아버지!”
원세는 노인과 수련을 진정시키곤 할머니를 안아 들었다.
노인과 수련은 엉망인 방을 치우곤 윗목에 시신을 안치할 자리를 마련했다. 원세는 할머니의 시신을 마련된 자리에 반듯하게 눕혔다. 그리곤 그 앞에 엎드려 소리 없이 흐느꼈다.
‘할머니, 할머니는 저 때문에 돌아가신 겁니다. 죄송합니다. 극락왕생하십시오.’
원세는 내색하지 못했지만, 할머니의 죽음이 자신 때문이라고 자책하고 있었다.
“원세! 고마우이...”
“할아버지! 할머니는 저 때문에 돌아가신 겁니다. 제가 이곳에 찾아오지만 않았어도 할머니는...”
“무슨 말을 그렇게 하는가, 할망구의 명이 예까진 걸, 그러니 마음 쓰지 마시게, 아셨는가.”
“그래요. 공자님! 공자님 잘못이 아니에요. 사람 목숨을 우습게 아는 악인들 때문이지요. 놈들을 절대로 용서치 않을 거예요. 두고 보세요. 무림맹에 도착하면 당장에 놈들을 쳐 죽이자고 할아버지께 말씀드릴 거예요.”
수련의 목소린 표독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밤이 이슥하도록 그들은 많은 대화를 나눴다.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등등...
원세로서도 자신의 신세 내력에 대해 더는 숨기지 못하고 털어놨다. 노인은 원세의 신세가 너무 가엽다며 부모님의 한을 꼭 풀어드리라고 당부했고, 수련은 자신과 별반 다를 것이 없는 원세에게 동병상련의 정을 느꼈다.
사실 수련의 눈엔 원세가 불쌍해 보였다. 마음 같아선 원세를 부둥켜안고 아픔을 달래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상한 일이지만 수련은 누나라는 호칭을 들었을 때부터 원세가 남 같지 않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래서 그랬는지 모성본능이 발현한 것처럼 두려움도 잊은 채 여인으로서 원세를 생각하게 되었다.
***
다음날 정오였다.
앞이 훤히 트인 양지바른 능선,
새로 세운 봉분 앞에 세 사람이 서 있었다.
“마누라! 내 자주 찾아올 것이니, 편히 쉬시구려!”
“흑흑, 할머니! 안녕히 계세요. 흐흑--”
“할머니! 나쁜 놈들을 꼭 응징할 겁니다. 그리고 할머니, 무고한 사람들을 죽이는 자들이 없도록 만들겠습니다. 편히 눈을 감으십시오. 또 찾아뵙겠습니다.”
정오의 햇살이 봉분과 그들의 머리 위로 쏟아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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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투사의 아들, 탈고까지 쉽니다.
^(^,
탈고가 마무리 중인 작품을 올릴 예정입니다.
8월에 뵙겠습니다.
응원은 모두에게 큰 힘이 됩니다.
긍정의 힘으로 파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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