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첫날밤을 보낸 원세는 교두의 명대로 수련엔 참가하지 않고 오전 내내 귀곡부를 둘러봤다. 중식을 먹은 후엔 암행 위사가 찾아왔고 얘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얘기 중에 추객의 아들이 바로 원세라는 것을 교두가 전갈에게 말했다. 전갈도 그 얘긴 처음 들었는지 원세를 측은히 여겼다. 아마도 전갈 자신이 고아 출신이라 마음이 쓰였던 모양이었다.
사실 진가장 사건은 련주인 진충원의 지시로 은밀하게 저질러진 사건이었다. 하여 만행을 저지른 당사자들 외엔 아는 자가 없었다. 게다가 철저하게 외부 세력이 습격한 것처럼 위장하여 사람들의 눈을 속였다. 이렇듯 진실을 모르는 사람들은 지금도 외부 세력의 소행이라고 분개하고 있었다.
“위사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잘해 낼 자신이 있습니다.”
원세가 주먹을 들어 올리며 당당하게 말했다.
“알았다. 나중에 보자. 교두도 수고하게,”
“알았네. 잘 다녀오시게, 여홍주 챙기는 것 잊지 말고...”
“아저씨! 안녕히 다녀오십시오.”
원세는 문밖까지 나가 굽실 인사했다.
“내일부터는 수련에 임해야 할 것이다. 각오는 되었느냐?”
“예 교두! 어떤 수련이라도 마다하지 않겠습니다.”
“알았다. 그럼 저녁때까지 귀곡부 내를 돌아봐도 좋다.”
“그렇지 않아도 서쪽 끝에 가볼 참이었습니다. 그리고 호수에도 가 봐야겠습니다.”
“그럼 난 수련장에 다녀오겠다.”
“다녀오십시오.”
원세는 정문 쪽으로 걸어가는 교두를 지켜보며 생김새보다는 인정이 있는 분이구나 생각했다.
‘수련장이 귀곡부 밖에 있나? 제갈영웅 그 원수 새끼와 함께 생활하게 생겼으니, 정말 지랄 같네. 그렇다고 기죽을 건 없지, 어머니의 한을 풀어드리기 위해서라도 참자, 아니지 영웅 그 새끼부터 요절을 내버려. 아니야,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을 때, 그때 나서야 한다. 그래 그때까진 그냥 죽어 살아야겠지,’
원세의 눈에서 싸늘한 한기가 피어올랐다가 사라졌다. 누군가가 원세의 눈빛을 봤다면 오싹 소름이 돋았을 것이었다.
원세는 어슬렁거리며 서쪽 끝에 와 있었다.
오는 도중 순찰하는 무사들과 여러 개의 빠오를 지나쳤다. 순찰 무사가 제지했을 땐 수련생이라고 말했고, 그들은 고생문이 훤하다며 오히려 위로했다.
“나는 새도 들어오기 힘들 텐데, 순찰이라니,”
원세는 깎아지른 암벽을 올려다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줄잡아 오백 명은 거주하는 것 같은데, 수련생들까지 합치면 한 육백 명은 되겠다. 그렇다면 사황련의 규모가 엄청나다. 죽성도 그렇고, 그런데 뭔가가 문제가 있다. 그게 뭘까?”
원세의 머리는 빠르게 회전했다.
해답은 찾지 못했다.
원세는 죽성에 갔을 때부터 석연치 않은 것을 느꼈었다. 그것은 이렇듯 큰 세력의 진가장이 기습을 당했다는 것도 의문이었고, 항시 장주를 호위했던 아버지가 왜 장원에 남아있었는지, 그 사실이 내내 풀리지 않는 의문이었다. 그렇다고 사황련이 연관이 있다고는 꿈에도 의심치 않았다. 그만큼 강호 무림은 세력다툼이 많은 곳이라 들었고, 다른 세력에게 기습을 당했다는 말에 설득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한가지 의혹은 저버릴 수가 없었다. 그것은 외할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를 핍박한 제갈세가가 아버지와 어머니의 관계를 알아낸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이었다.
해가 서쪽으로 기울자 암벽의 그림자가 점점 길어지더니 호수까지 드리웠다.
그때 원세가 호수로 다가왔다.
“이봐! 도령!”
“어디 갔다 와?”
원세가 호수에 가까이 갔을 때였다.
쌍살녀 자매가 하늘거리는 옷을 나풀거리며 미끄러지듯 다가왔다. 그녀들은 오늘따라 무복이 아닌 속살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헐렁한 옷을 입고 입었다. 그 바람에 굴곡진 몸매가 원세의 눈에 그대로 드러나 보였다. 그래도 젖 가리개와 속곳은 입고 있어서 다행이었다.
“난 또, 누나들이 어쩐 일이에요.”
원세는 눈살을 찌푸리며 담담히 대답했다.
“부주께서 널 데려오라고 했거든,”
“삼일 정도 걸린다고 들었는데...”
“호호 우리 원세, 기억력도 좋으셔, 정오에 출관하셨어.”
동생인 동백이 호호거리며 팔에 매달리듯 잡아끌었다.
‘제길, 무슨 여자들이 이 모양이야, 속이다 울렁거리네. 어쩌겠어, 그냥 천연덕스럽게 누나처럼 막 대하는 거야,’
원세는 수줍음 타는 것보다는 스스럼없이 막 대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분 냄새와 눈요기를 참는 것도 고역은 고역이었다.
“킁킁, 누나! 이 냄새 아주 고약해, 그리고 옷은 그게 뭐야, 난 누나들이 어제처럼 무복 입은 모습이 더 예쁘던데,”
원세는 킁킁거리곤 두 여인을 훑어보며 말했다.
“호호호, 냄새가 좋긴 좋은가 보구나, 몸매도 죽이지, 그런데 너! 말을 함부로 하면 못써! 알았니! 어린것이,”
“그만해라! 우리 도령 놀라겠다.”
동백이 호호거리곤 나긋하게 원세 코앞에 탐스러운 젖가슴을 들이밀었다. 그리곤 별안간 딴 사람처럼 눈을 치켜뜨며 싸늘하게 말했다. 그때 언니인 모란이 나서지 않았다면 동백이 기세를 누그러뜨리지 않았을 것이었다. 아마도 팩하는 성질에 따귀라도 때렸을 것이었다.
‘제기랄, 이러다가 여자한테도 두들겨 맞겠군. 하여간 기가 센 여자들은 문제가 있다니까, 누나들처럼 무공을 익힌 여자들은 남자 알기를 우습게 알 거야, 그나저나 부주가 왜 보자고 했을까?’
원세는 동백의 일갈에도 대수롭지 않은 듯 씨익 웃어 보이곤 앞서서 빠르게 걸어갔다.
“동백 누나, 화내니까 더 예쁜데, 누나들 빨리 와...”
앞서가던 원세가 힐끔 돌아봤다.
“정말 귀여워...”
“언니! 원세는 내가 점찍었어, 괜히 침 흘리지 마,”
두 여인도 옷을 너풀거리며 원세의 뒤를 따라갔다.
-----------계속
^(^,
승자의 하루는 24시간이고
패자의 하루는 23시간밖에 안된다.
-J. 하비스-
긍정의 힘으로 파이팅!
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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