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 아직도 견뎌내다니, 이런 괴물 같은 놈이...’
“..........”
“큭헉, 으...”
부주가 공력을 높이려는 바로 그 순간이었다.
별안간 피를 토한 원세가 모로 쓰러졌다.
“헉! 이놈이, 휴--”
부주는 놀란 나머지 급히 손을 떼려다 노련한 고수답게 주입했던 마공을 서서히 거둬들였다. 그리곤 길게 숨을 내쉬었다. 만약 부주가 마공을 주입한 상태에서 손을 뗐다면 원세의 생사는 장담할 수 없는 상황까지 초래했을 것이었다. 이렇듯 사람 잡을 부주의 위험천만한 행위에도 총령이나 쌍살녀는 눈살만 찌푸렸을 뿐 크게 걱정하는 표정은 아니었다. 이런 일이 여러 번 있었지만 죽어 나간 자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모란아! 염라환을 먹이거라!”
“사부님! 염라환은...”
“저놈은 염라환을 먹을 자격이 있느니라!”
부주의 묘한 표정이 소름이 돋을 정도로 차가웠다.
“허허- 부주께서 평생 아끼시던 영약을 내어놓으시다니, 놈이 쓸 만하긴 한 모양입니다.”
총령도 별일이라는 듯 부주와 원세를 번갈아 쳐다봤다.
“모란은 뭘 하는 게냐?”
“예, 사부!”
“.......”
모란이 급히 침상 쪽으로 가더니 작은 상자를 가져왔다. 그리곤 상자를 열어 살구만 한 환약을 한 알 꺼냈다. 상자엔 환약 두 알이 들어있었는데 상자를 열 때부터 그윽한 향기가 장내에 퍼졌다. 모란은 피를 토하고 쓰러져 있는 원세의 머리를 조심스럽게 받쳐 들고는 환약을 입속에 밀어 넣었다. 무엇으로 만든 환약인지 원세의 입속에 들어가자마자 스르르 녹아 목구멍을 타고 넘어갔다.
염라환(閻羅丸)은 염라천이 평생을 통해 온갖 독충들과 희귀한 영물들만 잡아다가 만든 귀한 영약이었다. 처음엔 다섯 알을 만들었다. 그런데 시험한다고 염라천 자신이 한 알을 먹었고, 장팔모와 전갈에게도 반 알씩 먹게 했다. 그리고 한 알은 쌍살녀 자매를 제자로 들이면서 반 알씩 먹였다. 이제 원세가 한 알을 먹었으니, 염라천이 평생을 공들여 만든 염라환은 한 알만 남은 셈이었다.
염라환을 먹은 자는 수련 여하에 따라 내공은 물론이요, 만독불침지신(萬毒不侵持身)에 이르는 효험까지 보게 된다고 알려졌다. 그야말로 무공을 익힌 자라면 누구나 탐내는 영약이었다.
“그 미련한 놈이 마공에 대항하느라 단전이 상했을 것이다. 너희들 침소에 데려가 얼굴도 씻기고 쉬게 해줘라! 깨어나거든 염라공법을 일러 주거라!”
“예! 염라공법을 요?”
모란이 재차 의아하다는 듯 부주를 쳐다봤다.
“그놈은 그만한 자격이 있다고 하지 않았느냐?”
부드럽게 말하던 부주가 언성을 높였다.
“알았어요. 동백아 내게 업혀라!”
“아니야 내가 업을 게...”
동백이 얼른 나서서 등을 내밀었다.
모란은 축 처진 원세를 들어 동백의 등에 업혔다. 일반 여인들 같았으면 엄두도 못 낼 일을 모란은 덩치 큰 원세를 힘들이지 않고 들었고 동백은 원세를 가뿐하게 업곤 빠오를 나섰다.
‘련주께서 왜 살펴보라고 했는지 알만해, 련에 큰 힘이 될 놈이야, 무골에다가 정명한 기운까지, 이참에 제자 삼아 수련을 시켜볼까, 다 늙어 이런 복이, 클클...’
부주는 업혀나가는 원세를 쳐다보며 클클거렸다.
“부주! 보기에도 예사롭지 않은 놈이던데 뭔가가 특별하긴 특별한 모양입니다. 그래 뭐가 특별한지 말씀 좀 해 보시오.”
“특별한 것은 없고 심성이 깨끗한 놈이다. 아마도 제 아비가 정명한 내가 심법을 가르쳤을 게야, 제대로 가르치기만 한다면 제갈왕민 아들놈보다는 한 수 위의 놈이다.”
부주는 원세가 영웅보다 월등하다는 것을 파악했고, 잘만 가르친다면 절정고수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총령에겐 영웅보다 월등하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여기는 부주의 거처에서 30장쯤 떨어진 빠오, 빠오 안은 그리 크지는 않았으나 여인들 거처라서 그런지 화려했다. 여전사라는 쌍살녀의 거처 같지가 않았다. 중앙엔 원형 탁자가 놓여있었고 좌우로 두 개의 고급스러운 침대가 놓여있었다. 원세는 좌측 동백의 침대에 반듯이 누워 있었다.
‘... 잘못했으면 들킬 뻔했네. 그런데 할아버지가 뭘 먹인 거야, 염라환이라, 귀하다고 했으니 영약인 것 같기는 한데...’
원세는 숨을 가늘게 쉬며 기의 흐름을 멈추고 있었다. 누구든 원세의 상태를 봤다면 기절한 것으로 오인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하지만 부주가 조금만 신경을 썼더라면 아니, 어린애 취급만 하지 않았다면 대번에 발각이 났을 것이었다. 원세는 혀를 깨물어 피를 토했고 기의 흐름을 멈춘 것으로서 운 좋게 부주를 속여 넘겼다.
‘푹신해서 좋지만, 나한텐 불편해, 이 냄새는 꼭 어머니 냄새 같군. 누나들이 말괄량이 같아도 여인은 여인이야, 슬슬 깨어나 볼까. 제기랄, 혀가 얼얼한 게 너무 심하게 깨물었나,’
원세는 혀를 굴려 가며 얼마나 다쳤나 가늠해봤다.
그리곤 실눈을 뜨며 상황을 살폈다.
“....으음 여긴, 누나들...”
“어마, 깨어났네. 염라환이 영약은 영약이야!”
“도령! 몸은 어때...?”
원세가 슬그머니 신음을 흐리며 일어나 앉자, 두 여인이 밝은 표정으로 다가와 얼굴을 들여다봤다.
“누나들, 내 얼굴에 뭐가 묻었어요.”
원세는 퉁명스럽게 말하곤 얼굴을 만져봤다.
“피를 토했잖아, 우리가 깨끗이 씻겼어, 잠깐 동경이...”
모란이 침대 머리맡에 놓인 동경을 얼굴에 들이밀었다.
“엉망일 줄 알았는데, 고마워 누나들...”
“참, 운공을 해야 해, 어서 바로 앉아봐! 내가 염라공법을 가르쳐 줄게, 단전이 상했을 거라고 사부님이 말했단 말야!”
“알았어요. 어험,”
원세는 헛기침하곤 못 이기는 척 그대로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염라공법인 염라수라공은 사부님이 제자에게만 가르쳐주는 특별한 내공 심법이야, 잘 듣고 그대로 해 복잡하진 않아,”
동백이 맞은편에 앉으며 웃는 얼굴로 말했다.
원세는 동백으로부터 염라환이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효능은 어떤지 자세히 설명을 들었다. 그리고 두 갈래의 염라공법에 대한 구결도 들었다. 그땐 내색은 못 했지만 일시 당황하기도 했었다. 염라공법(閻羅功法)인 염라수라공은 그동안 원세가 익힌 내공심법과는 확연히 달랐다. 심법요결이나 광마가 가르쳐 준 무공구결은 자연법칙에 부합했지만, 염라수라공은 자연의 이치에 반하는 사공의 구결이었기 때문이었다.
‘제기랄, 귀한 걸 누가 달라고 그랬나, 아무튼 속이 거북한 걸 보면 염라공법을 운기를 해서 안정을 시켜야 할 텐데,’
속이 화끈거리는 것을 심법 요결로 다스리곤 있었지만, 염라환의 공능이 엄청나 애를 먹고 있었다.
‘이걸 어떻게 하지, 양공과 음공도 제대로 활용도 못 하는데 무슨 좋은 방법 없을까, 음, 사공이라, 그렇다면 음공도 사공의 일종이라고 광마 할아버지가 말했으니 음공과는 부합할지도, 제길 나도 모르겠다.’
원세는 지그시 눈을 감은 채, 타개할 방법은 없을까 두뇌를 빠르게 회전시켰다. 두 여인은 정말 잘해 낼지 걱정스럽다는 표정으로 심각하게 원세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래, 할아버지가 말했듯이 모든 무공은 인간이 극한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돕는 도구라고 말했다. 옳게 사용하면 정공이요, 불순하게 사용하면 그게 바로 사공이다. 할아버지 고맙습니다. 오늘 또 천금 같은 말씀에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계속
우리
긍정의 힘으로 파이팅!
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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