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투사의 아들

검투사의 아들 2권 20

썬라이즈 2022. 12. 22. 0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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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황과 신강의 경계에 위치한 열사(熱沙)의 땅,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모래폭풍이 지나가고 있었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 마치 해일처럼 지나가는 모래폭풍은 무지막지한 위력으로 산처럼 솟은 구릉마저도 평지로 만들었다.

대략 반 시진 동안 몰아쳤던 모래폭풍이 점차 잦아들었다. 뿌옇게 날리는 모래바람 속, 깎아지른 듯 솟아있는 바위산이 모습을 드러냈다. 귀곡부가 있다는 귀명산(鬼命山), 죽음의 산이라고 불리는 그 귀명산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여기는 귀곡부, 모래폭풍이 지나갔음에도 귀곡부는 피해 없이 말짱하기만 했다. 사방이 천길 암벽으로 되어 있었으니 무지막지한 모래폭풍도 어쩌지 못한 모양이었다.

중천에 떠오른 태양 아래 다섯 개의 빠오가 한눈에 들어왔다. 북쪽 암벽 옆으로 길게 늘어선 다섯 개의 빠오는 우측으로부터 식당으로 사용하는 빠오와 교두인 장팔모의 거처 겸 집무실인 빠오가 있었다. 그 옆으로 두 개의 빠오는 련에 소속된 수련생들의 숙소였다. 그리고 마지막 빠오는 제갈세가에서 보낸 수련생들의 숙소였다.

“......”

중식을 마쳤는지 식당엔 의자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는 40대 사나이 혼자였다. 다른 빠오에도 수련을 나갔는지 수련생들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유독 교두의 집무실인 빠오에서만 두런두런 말소리가 흘러나왔다.

빠오는 제법 넓었다. 한쪽엔 침대가 놓여있었고 침대 바로 옆의 작은 탁자엔 두 개의 검이 놓여있었다. 그리고 중앙에 놓여있는 탁자엔 낯익은 세 사람이 앉아 담소 중이었다.

전갈! 자네 말일세, 앞으론 특별한 일이 아니면 이곳에 오지 말게 아셨는가?”

이봐! 교두, 별안간 왜 그래...”

그걸 몰라서 묻나, 특별한 일 아니면 들리지도 않던 사람이 이렇게 불쑥 찾아와선...”

하하, 알았네. 아주 가끔 한 번씩 들림세! 아니지 한동안 못 보게 될 걸세! 련에서 호출이 왔거든, 내 돌아올 때는 자네가 좋아하는 여홍주를 가져오겠네.”

시껍긴, 어쨌거나 자네가 원세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닐세! 수련이 끝난 후라면 모를까...”

알았다니까, 원세야! 부모님 일은 잊고 수련에만 전념하거라! 그래야 훗날 부모님 원한을 풀 수 있을 것이 아니냐!”

암행위사 전갈은 교두의 어깨를 툭 치곤 원세를 쳐다봤다.

원세는 엊저녁 좌측 첫째 빠오로 배정을 받았다.

놀랍게도 좌측 빠오는 제갈세가에서 보낸 수련생들의 숙소였다. 숙소엔 총 11명이 있었는데 그들 중 제갈영웅이 수장이었다. 원세는 귀곡부 첫날부터 굴욕을 참아야만 했다.

원세는 교두를 따라 빠오로 들어갔었다.

그때 대번에 영웅을 알아봤다. 하지만 영웅은 원세를 알아보지 못했다. 교두가 인사를 시켰고 원세는 당당하게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그제야 영웅이 원세를 알아보곤 교두에게 항의하듯 나섰었다.

교두님! 저놈은 종놈입니다. 저놈이 이곳에 어떻게 오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종놈하고는 함께 지낼 수가 없습니다.’

영웅은 원세를 잡아먹을 듯 노려보며 교두에게 항의했다.

무엇이라! 원세가 종이었단 말이냐?’

예 그렇습니다. 진가장의 노예 무사였던 천수란 자의 아들입니다. 교두님, 저런 놈은 그냥 종으로 부리는 게...’

크하, 추객인 천수란 자의 아들이란 말이지, 모두 듣거라! 오늘부터 원세는 이곳에 머물며 함께 수련에 임하게 될 것이다. 원세는 너희들과 똑같은 수련생임을 명심하라! 앞으로 수련생으로서 선의의 경쟁을 하도록 알겠나!’

, 하지만 숙소는 다른...’

제갈영웅! 네놈이 뭘 믿고 나서는 게냐! 여기에 일단 들어왔으면 내가 교두요, 저승사자니라! 내 명령을 어기는 자는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일 수도 있다. 아니면 당장에 사막으로 쫓아낼 수도 있음을 명심하라!’

!!!’

교두의 싸늘한 일갈에 수련생들이 일제히 대답했다.

‘......’

교두는 추객인 천수를 알고 있었다.

비록 노예 신분이기는 했으나 대장부답다고 교두 자신이 인정한 사나이였다. 게다가 진가장을 습격한 자들에게 부인과 함께 죽임을 당했다는 소식도 들었었다. 진가장 습격 사건의 내막을 모르는 교두로서는 졸지에 고아가 되어버린 원세가 불쌍했고, 련에서 귀곡부로 보낸 이유를 나름대로 짐작했다.

원세는 큰 불상사 없이 어젯밤을 보냈다. 아니 불상사가 있기는 있었다. 빠오 중앙은 통로였고 좌우로 15개의 나무 침대가 놓여있었다. 규율이 엄하긴 했던지 우측으로 제갈영웅을 위시한 수련생들이 차례로 침대를 차지하고 있었다. 원세는 규율에 따라 입구 쪽 열두 번째 침대를 배정받았다.

, 종놈의 새끼야! 수련받으러 왔다고,’

교두가 나가자 영웅이 다짜고짜 한 말이었다.

나 면천 됐다. 그러니 종놈이란 말은 쓰지 마라!’

공대를 쓸 수도 있었지만 원세는 그럴 수가 없었다.

뭐라! 이 종놈의 새끼가 이젠 반말까지, 그런데 이 종놈이 방금 뭐라고 씨부렁거렸냐?’

영웅은 나이도 어린 종놈에게 반말까지 듣자 울화가 치밀었다. 그렇다고 폭력을 쓸 수도 없고 인상만 써댔다.

면천이 됐다는데요. 공자님!’

면천, 웃기는군. , 새끼야! 종놈은 말이야, 영원히 종놈인 게야, 알겠냐! 이 종놈의 새끼야! 내가 오늘은 참지만 두고 보자, 이 종놈의 새끼!’

두고 보자는 말은 무섭지 않은데, 그 종놈이란 소리는 정말 듣고 싶지 않거든 그러니까, 앞으론 이름을 불러라!’

그래도 이...’

얼마나 울화가 치밀었는지 제갈영웅은 한 대 후려칠 기세로 손을 들어 올렸다. 하지만 후려치진 못하고 들어 올린 손만 부들부들 떨었다.

공자님! 참으시지요. 어린놈이 생각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앞으로 시간도 많은데 공연히 분란을 일으키면 우리에게도 좋을 게 없습니다.’

그래 내가 참지, 쳐 죽일 종놈의 새끼,’

“......”

히히, 오늘은 나도 참는다. 하지만 앞으론 참지 않는다.’

원세는 비웃음을 흘리곤 침대에 벌러덩 누웠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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