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밝혀진 밀약
아침저녁으로 일교차가 심하다.
봄철 감기는월 초순에 유행한다고 한다. 그런데 금 년은 4월 초까지 봄철 감기가 유행할 것이라는 보도가 있었다. 그리고 보도처럼 감기가 기승을 부렸다. 사실 독감은 생명에 치명적일 수 있다는 걸 알면 봄철 감기도 걸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외출에서 돌아오면 먼저 손부터 씻는 것이 예방 좋다.
금정산 고당봉엔 새벽안개가 자욱하게 깔렷다.
해가 뜨기엔 이른 시각이었다.
한 사나이가 자욱한 안개를 뚫고 거침없이 고당봉을 오르고 있었다. 사나이가 고당봉에 당도할 때까지 지나치는 사람은 없었다. 새벽이라 그런지 고당봉은 제법 쌀쌀했다.
“눈이 밝아졌나, 올라오는데 숨도 가쁘지 않고,”
일반 사람들 같았으면 10m 앞도 못 볼 안갯속을 대박이는 흐린 날 길을 걷듯이 올라왔다. 다른 사람들이 이를 봤다면 의혹을 일으켰을 것이다.
대박이는 주위를 둘러봤다.
동쪽 능선이 내려다보이는 곳,
가부좌를 틀고 앉기에 좋은 바위가 눈에 들어왔다.
대박은 성큼성큼 바위로 걸어갔다.
안개는 대박이의 걸음걸이에 맞춰 너울거렸다.
“사람들이 없어서 좋긴 좋다. 앞으로 고당봉은 내 수련 장소다. 난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능력을 키워야 해, 마음을 심란하게 만드는 마성은 물론 108108 번뇌를 제압할 항마 심법도 대성해야 하고, 부모님 원수도 찾아서 응징해야지,”
사실 대박은 어젯밤 몸살을 앓듯 온몸이 쑤시는 고통을 당했다. 이유는 후유증이 재발한 것이었다. 아니 후유증이 아니라 마성이 정신과 육신을 핍박한 때문이었다. 머리에 쥐가 나고 팔다리가 저렸다. 미치고 팔딱 뛸 고통이 엄습했었다.
그렇게 고통이 엄습해도 대박은 신음조차 내지 못했다. 대략 1시간 동안은 마성에 고문을 당했을 것이었다. 그 끔찍한 고통 속에서도 마성에 굴복하지 않은 대박이었다.
마성이 불길처럼 일어날 때는 불순한 상상만으로도 불안함은 해소되었고, 마성이 악행을 저지르며 힘을 과시할 때는 동조하는 마음만으로도 엄습했던 고통이 말끔히 씻겼다. 이렇듯 마성에 동조하면 힘과 능력뿐만 아니라 마음먹은 것들을 이룰 수가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대박은 불의와는 타협하지 않겠다는 의지만으로 마성과 싸웠다. 이상하게 가슴의 화끈거림도 일어나지 않았고, 항마심법도 통하지 않았다.
대박은 바위로 올라가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입에서 절로 항마심법 구결이 흘러나왔다.
“고요히 눈을 감고 단전에 힘을 실어 숨을 고르게 내 쉰다. 날숨은 몸 안의 탁하고 불순한 기운을 내보낸다는 마음으로 가늘고 길게 입으로 내쉰다. 들숨은 우주의 기를 빨아드린다는 생각으로 천천히 코로 들이쉰다. 마음은 평정심이다. 항마심법, 마음은 평정심이다. 항마심법, 마음은 평정심이다. 마음은 평정심이다. 항마 심법, 항마 심법, 항마 심법,”
항마 심법은 외우기만 해도 108108 번뇌를 잊게 하고 마성(魔性)이나 사기(邪氣)를 제압한다..
항마 심법을 외우는 대박이의 진중한 목소리가 고당봉을 휘돌아 퍼져나갔다.
"마음은 평정심이다. 마음은 평정심이다. 항마 심법, 항마 심법,"
“......”
대박이의 목소리가 들렸음인가,
고당봉 바로 건너편 암봉(巖峰)에서 미세한 인기척이 느껴졌다. 암봉을 뒤덮은 안개가 불규칙하게 일렁거렸고 언뜻언뜻 삿갓 노인이 보였다.
“음, 젊은이가 참으로 대단 하이, 하지만 젊은이 마성에 지면 안 되네. 어쨌거나 이승을 주도하겠다는 악마가 지옥의 수문장인 저승의 염마 왕이란 말이지, 일단 조심하는 게 상책, 아직은 내가 나설 때가 아니야, 염마왕이 눈치라도 챈다면 젊은이가 위험해, 젊은이 힘을 내시게, 힘을...”
잠시 고당봉을 응시했던 삿갓 노인은 순간 자취를 감췄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자욱했던 안개가 걷히고 있었다.
동녘이 붉게 물드는 것을 보면 머지않아 동이 틀 것이다.
“휴, 영감 빨리 와요.”
“오늘따라 할망구가 펄펄 난다니까, 아휴 힘들어,”
“그러게요. 운동 좀 하시라니까요.”
“새벽마다 산행하는 것도 운동이지, 아닌 감,”
“그러네요. 우리 영감님 운동도 착실히 잘하시지, 그래서 오늘은 특별요리를 해 드리지요. 밤엔 서프라이즈식 서비스도요, 그러니 영감님은 기대하시라 요,”
“흐흐, 내는 할망구 덕에 사는 재미가 쏠쏠하다니까,”,”
“히히, 내도 살맛 난다니까요, 영감,”
“.......”
대박이는 고당봉을 오르는 노부부의 인기척을 들었다.
대박이의 귀에는 노부부의 말소리가 옆에서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크게 들렸다.
“참 재미나게 사시는 할아버지 할머니네, 난 할머니 얼굴도 모르는데, 그래서 소라 할머니가 좋은 건가,”
자리에서 일어서던 대박이가 동녘을 바라봤다.
절로 환호성이 터질 만큼 아름답게 동이 트고 있었다.
우~ 와~
“장관이다. 정말 멋지다.”
머리는 맑아졌고 기분도 상쾌해졌다.
“영감, 우리보다 먼저 올라온 젊은이가 있어,”
“어디, 어 정말이네. 젊은이가 아침잠도 없으신가,”
노부부는 대박이가 있는 쪽으로 걸어왔다.
“......”
‘나는 이만 퇴장을 해야겠지,’
대박이는 노부부를 향해 마주 걸어갔다.
노부부는 대략 60대 정도로 젊고 건강해 보였다.
“할아버지, 할머니, 안녕하세요. 이렇게 일찍 산행하시는 분들이 계신지는 몰랐습니다. 저는 오늘이 처음이지만 내일부터는 날마다 올라올 참입니다. 그럼 두 분은 조심히 다녀가세요. 먼저 내려갑니다.”
“벌써 가시게...”
“동트는 거나 보고 가시지...”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한 마디씩 말을 건넸다.
“벌써 봤습니다. 그럼 먼저 내려갑니다.”
“...잘 내려가시게,”
“......”
대박이는 할머니 말씀처럼 동트는 장관을 맘껏 감상하고 내려갈까도 생각했었다. 그런데도 대박이는 바쁜 사람처럼 서두른 것이 되었다. 어쨌거나 대박으로선 자신이 처한 상황을 고려하여 매사에 조심해야 했다. 사건이 크건 작건 조심하는데 경중이 없다는 것이 대박이의 주장이었다.
“......”
대박이는 빠른 걸음으로 산에서 내려왔다.
말이 빠른 걸음이지 슥, 슥, 나아가는 속도가 장난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그냥 빨리 걷는 것처럼 보였겠지만 지나간 다음에 돌아봤을 땐 예상 거리의 배 이상 멀리 가고 있었다. 이 또한 염마 왕의 마력이 몸속에 공력처럼 쌓였기 때문이었다. 이를 대박이는 모르고 있을 뿐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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