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번지 없는 주막

썬라이즈 2021. 12. 9. 0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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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사랑/어린이 사랑입니다.

 

번지 없는 주막

시/썬라이즈

세월 모퉁이 불 밝힌 주막

바람만 덩그마니 쉬고 있는 평상에

남루의 길손 곤한 엉덩이를 붙이고

서릿발 날리며 뛰어나온 주모

죽은 서방 반기듯 자글자글 웃으며

굴속 같은 부엌으로 달려간다.

풍상을 말해주듯 옻칠 벗겨진 상에

이빨 빠진 뚝배기 멀건 국밥 말아 놓고

주모 나이쯤 깨어진 주병에 술 퍼 담고

은근슬쩍 엉덩이 들이민 주모

자글자글 웃으며 탁배기에 술 치고

젓가락 쓱쓱 닦아 안주로 짠지 집어 든다.

위장이 성화인지라 국밥 거뜬히 해치우고

신맛 나는 탁주 한잔에 소태 짠지 받아먹고

주모 풀어놓는 탁배기 사연 듣는다.

먼데 팔려가듯 시집가던 새색시 사연

위정자와 정치꾼들 원망하는 백성들 뿔난 사연

엽전 꾸러미 흔들며 지분대던 사내들 얘기까지

줄줄이 엮어내는 쉰내 나는 주모 입담에

달도 지붕에 걸터앉아 우수에 잠기고

별들은 반짝반짝 웃다가 눈물 찔끔거린다.

길손 마음 아는 듯

또르르 귀뚜라미 채근 대는 이 밤에

주모는 원앙금침인양 무명 이불 손보고

시름에 잠긴 길손은

막무가내 주모 손길 뿌리치고

꿈길에서나 재를 넘겠네.

자연사랑/어린이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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