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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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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와 거래했다. 11 2017년 3월 15일, 오늘부터 일기를 쓰기로 했다. 사랑하는 손자 대박이가 뺑소니 교통사고를 당한 지 꼭 한 달째다. 의사 말로는 뇌사상태는 아니라고 한다. 그런데도 의식이 없고 움직이질 않는다. 다행스럽게도 미음을 먹이면 곧잘 받아먹는 것이 신기할 뿐이다. 고무적인 현상이라는 의사의 말과 깊은 잠에 빠진 것 같다는 간호사의 말에 위안을 삼았다. 우리 대박이가 깊은 잠에서 깨기만 한다면, 우리 대박이가 거짓말처럼 벌떡 일어날 것만 같다. 2017년 3월 16일, 새벽에 산에 올라갔다. 천지신명께 우리 대박이를 살려달라고 기도했다. 마누라가 생전에 정화수(靜閑水)를(靜閑水) 떠놓고 비는 모습이 문득 떠올랐다. 마누라가 손자를 살리려거든 기도를 하라는 계시 같았다. 그래서 날마다 천지신명께 빌기로 했다...
악마와 거래했다. 10 3월 15일, 안 여사네 가족이 이사를 왔다. 그리고 집들이는 1층 식당에서 하기로 했다. 그동안 힘이 되어준 분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리는 것이 좋겠다는 홍 씨 아저씨의 말에 따른 것이었다. 대박이는 모두에게 감사했다. 특히 홍 씨 아저씨와 간병한다고 고생하신 아줌마가 정말이지 고맙고 감사했다. 저녁이 되자 손님들이 식당으로 몰려왔다. 손님들은 대부분 시장에서 장사하는 상인들이었고, 식탁에는 미리 준비한 고기와 떡, 술, 음료수가 차려졌다. 손님들은 집들이하면 빠지지 않는 화장지와 세제 등을 들고 왔다. 시장슈퍼마켓을 운영하는 나 씨 아저씨는 통도 크게 주방세제를 박스 채 들고 오셨다. 함께 온 나씨 부인은 뭐가 못마땅한지 도끼눈으로 남편을 흘겨봤다. 아마도 세제를 박스 채 들고 와서 화가 난 모양이었..
악마와 거래했다 8 안 여사는 날마다 악몽을 꾸는 대박이가 안쓰러웠다. 오늘도 악몽을 꾸는지 대박이의 이마엔 식은땀이 흥건했다. 꿈을 꿀 때마다 얼마나 고통스러워하는지 대박이의 일그러지는 표정을 지켜보는 것만도 안 여사에겐 고충이었다. 아니할 수만 있다면 자신이 대신당하고 싶다는 측은지심까지 들었다. “아줌마, 그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저씨,” 안 여사에게 웃어 보인 대박이가 홍 씨를 쳐다봤다. “그래 대박아,” “저 아저씨, 할아버지는 아직도...” “대박아, 그렇지 않아도 할아버지 얘길 하려던 참이다. 그러니 내 얘기를 듣고 놀라지 마라.” 홍 씨가 대박이의 말을 잘랐다. “그럼 할아버지와 연락이, 네 알았습니다.” 대박이는 홍 씨의 진지한 눈빛에 힘없이 대답했다. “대박아, 할아버지의 유언장을 개봉할 거다. 어떤 내..
악마와 거래했다. 7 희망이네 분식집 2층, 대박이는 또 꿈을 꾸는지 잠들어 있었고 주방이 딸린 거실엔 남자와 여자가 탁자를 마주해 얘길 나누고 있었다. 여자는 간병인인 여인이었고 남자는 홍 씨라 불린 남자였다. “대박이에게 할아버지 얘길 하는 것이 좋겠어요.” 여인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하긴 얘길 해야지요. 하지만 걱정이...”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대박이도 뭔가 눈치를 챘는지, 오늘은 할아버지 얘길 안 했어요. 그러니 할아버지에게 문제가 생겼대도 대박이는 받아들일 거예요.” “아직 움직이지도 못하는데 충격을 줄까 봐서 그렇습니다. 이참에 병원에 데려가 검사를 받아보는 것도 좋겠는데,” 사실 대박이는 팔과 다리는 조금씩 움직였지만 일어나 앉지는 못했다. 다행스럽게도 정신은 말짱해 의사소통엔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악마와 거래했다. 6 2, 이상한 동거 “학생, 대박이 학생, 또 잠이 들었나,” 여인이 대박이의 어깨를 조심스럽게 흔들었다. ‘그동안 꿈만 꾼 것은 아니겠지, 죽은 듯 누워있는 것도 지옥이었을 거야,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설마 다시 잠드는, 아닐 거야, 이젠 건강하게 일어나서 할아버지와 행복하게 살아야지, 대박이 학생 힘내!’ 여인은 중얼거리며 대박이의 팔다리를 주물렀다. 안 지순 43세 간병인이다. 대박이가 교통사고를 당한 직후부터 지금까지 자식처럼 돌봐주고 있다. 갸름한 얼굴에 약간 통통한 몸매의 여인이다. 심성은 착하나 독한 구석도 있다 ‘음...’ 대박이의 입에서 가는 신음이 흘러나왔다. “정말 또 꿈을...?” 여인이 자상한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대박이는 지금 꿈을 꾸고 있었다. 그것도 악몽을... ..
악마와 거래했다. 5 사실 여인은 대박이가 사고를 당한 직후부터 간병을 했다. 그때부터 여인은 대박이의 소변과 대변을 받아내는 것은 물론이고 하루에 한 번씩 몸을 구석구석 씻겨 주었다. 여인은 간병인으로서 보다도 대박이를 자식처럼 여기고 간병을 했다. ‘그러니까 내가, 삼 년 동안 식물인간이,’ 대박이는 지금 그것도 3년 동안 식물인간처럼 누워있었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자신의 몸을 3년 동안 챙기고 씻겨 준 사람이 낯선 아줌마라는 사실에 더 놀랐다. 남자로서 부끄러움도 느꼈다. 그렇다고 자신을 자책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정말 내가 삼 년 동안 죽은 식물인간처럼 누워있었다는 얘기잖아, 그 사고는 고등학교 일 학년 때였어, 그렇다면 지금은 대학 신입생이겠네, 뭐야, 뭐야, 이게 뭐야, 그래도 깨어난 걸..
악마와 거래했다. 4 “으윽...” 소년은 일어나려고 발버둥을 쳤다. 하지만 온몸이 마비되었는지 말을 듣지 않았다. 소년은 너무 황당하여 인상만 써댔다. “야, 아직은 무리야! 삼 년이라고 삼 년!” “네~에~~ 삼 년 이 요.” 소년은 힘주어 말했지만, 목소린 힘이 없었다. ‘일단 병원부터 데려가, 아니지 어르신에게 연락부터 하자, 그런데 어르신은 어딜 가셨지, 어제 나가셔서 아직 돌아오지 않은 건가? 정말 무슨 일이, 전화까지 안 받으시고,’ 사나이는 대박이를 병원에 데려가야 할지 말지 생각이 많았다. 무엇보다도 대박이가 말을 했다는 것이 너무너무 기뻤다. 이런 때에 할아버지가 안 계시니 그것도 걱정이었다. “할아버지, 계십니까?” 그때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아침부터 누구지?” 사나이가 대박이의 손을 잡았다가 놓곤 ..
악마와 거래했다. 3 ‘이젠 어디로 가지,’ 소년이 참담함에 눈을 감았다가 떴다. 이럴 수가, 별안간 용암이 들끓던 불지옥은 사라지고 몇 사람이 지나갈 수 있는 끝이 보이지 않는 통로가 나타났다. 벽은 얼음장처럼 차가운 푸른 색깔의 벽이었다. 크릉, 크르릉, 크르르 릉, 크릉, 등 뒤에서 크르릉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괴물이 이빨을 가는 소리였다. 헉! 뒤를 돌아본 소년의 입에서 헛바람이 잃었다. 얼마나 놀랐는지 소년은 그 자리에 주저앉을 뻔했다. 몸집은 황소 같고 생기기는 하이에나처럼 생긴 괴물이었다. 괴물은 날카로운 이빨을 으드득거리며 쫓아왔다. 얼마나 두렵고 무서웠던지 소년은 무작정 통로로 뛰어들었다. 통로에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지, 그런 것은 살필 겨를도 없었다. ‘으 아얏, 아으...’ 한발 두발을 내딛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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