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권 3장, 예기치 않은 기연(奇緣) 휘이잉-- 사라락- 사라락-- 대나무숲으로 위장된 죽성(竹城)이 은은한 달빛에 흐릿하게 드러났다. 그때 서늘한 가을바람이 숲을 흔들며 지나갔다. 요소, 요소엔 등불이 밝혀지긴 했으나 대나무를 흔들며 지나가는 음산한 바람 소리 외엔 고요하기만 했다. 하지만 곳곳에서 뿜어지는 살벌한 기운은 이곳이 죽성임을 대변했다. 죽성에서도 요지에 세워진 오층 전각, 자정이 임박한 시간임에도 오층 창문은 활짝 열려있었고, 창문 안은 붉은 안개로 자욱했다. 바람에 등불이 흔들거리는지 안개도 한 번씩 일렁거렸다. 흐릿한 안개 속, 제법 넓은 방이었다. 북쪽에 마련된 제단엔 커다란 청동 향로가 덩그러니 놓여있었고, 제단 아래엔 붉은 장포에 머리를 산발한 한 사나이가 가부좌를 틀고 앉아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