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와 교육

영화 촬영지/실미도

썬라이즈 2022. 7. 30.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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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사랑은 아이들 미래이자 희망입니다.

실미도의 과거와 현재

용유역 - 잠진도 선착장(도보 20분소요) - 무의도 선착장(왕복3,000원) - 시내버스(실미도,하나개 행)

※ 시내버스 요금은 서울과 동일

● 카페리호 왕복 승선요금: 운전자포함 중형자동차 1대 20,000원, 성인 1명 3,000원, 초등생 이하 무료

● 하나개 해수욕장 입장료(쓰레기 수거 및 환경보존비): 성인 2,000원,

● 하나개 해수욕장 방갈로 이용료: 50,000원(7월), 비수기는 2-3만원정도

● 실미도 유원지 입장료(쓰레기 수거 및 환경보존비): 성인 2,000원,

시내버스코스A : 무의도입구~소무의도(둘레길)~호룡곡산~하나개해수욕장~무의선착장

시내버스코스B : 무의도입구~실미도유원지

    ▲ 공항철도 (서울역 -  인천국제공항역<30분간격> - 용유역<1시간간격>) 열차 내부

 ▲ 용유 임시역 <1번 첫째칸메서만 승하차 가능>

1. 무의도 주소 : 인천시 중구 무의도동

2. 舞衣島의 뜻 : 옛날의 선녀가 내려와 춤을 추었다해서 섬이름으로 전래

3. 유명한 山 : ① 호롱곡산 (246m), ② 국사봉  (230m)

4. 교통편 : 공항철도 : ① 서울역 - 인천공항 (12월1일~4월14일)

                              ② 서울역 - 인천공항 - 용유역 (4월15~11월30까지 주말에만 운행)

A. 무의도 가기전 거처가는 점진도 (선착장) 

실미도는 무의도의 부속섬이다.

그곳을 설명하기전에 본섬인 무의도를 보여주면서 후미에 실미도 과거를 보여드립니다.

(老宿者)

▲ 용유역에서 도보로 점진도 선착장을 향해 섬을 건너고 있다 (도보 20분소요)

▲ 잠진도 선착장 전경

 ▲ 섬진도 선착장 바다의 좌우 풍경 ▼

▲ 카페리호 운항중에 먹이를 던지는 등산객.

▲ 새우깡 먹이를 나꿔채는 갈매기들

B. 무의도 부속섬 소무의도 (둘레길)

 ▲ 소 무위도 (지난6일 SBS 런닝맨 에서 재 방영한 섬)

 ▲ 멀리 보이는게 소무의도

C. 등산로 (① 호롱곡산 (246m), ② 국사봉  (230m) )

▲ 멀리 실미도가 보인다.

▲ 앞산이 국사봉 뒷산은 호롱곡산

D. 무의도 하나개 유원지 (해수욕장)

 ▲ 하나개 해수욕장 전경

▲ 누구나 돈만내면 승마도 할수있다.  

▲ 최고급질의 모래 백사장

▲ 모래 백사장에서 캐낸 동죽조개

E. 무의도 하나개 유원지 (영상 촬영장)

▲ 천국의 계단 촬영지 

▲ 천국의 계단 촬영지 

 ▲ 천국의 계단 촬영지

▲ 천국의 계단 촬영지

 ▲ 오수정 촬영지

 ▲ 오수정 촬영지

 ▲ 오수정 촬영지 산책로 

▲ 오수정 촬영지 산책로중에 일부  

▲ 오수정 촬영지 산책로 에서 바라본 하나개 해수욕장 전경

F. 대한민국 인간병기들이자 국가첩보 특수부대 (실미도 편)

1. 실미도 건너가기전 유원지 모습들 (일사천리 산악회 중식장소)

 ▲ 하산후 실미도 유원지 입구에서 일사천리 산악회 모임 (2012.05.05)

     ▲ 실미도 유원지 대솔밭에서 중식을 하는 일사천리 산악회 참석자들.

 ▲ 썰물때라서 모래길이 드러나 있다.

▲ 유원지에서 돌다리 건너서 실미도행 (밀물때는 물에잠김 주의요함)

▲ 소라들이 물빠진 백사장에서 기어다니는 모습들

▲ 굴, 생선, 낙지, 조개 등이 주 생산지임 

▲ 실미도에서 바라본 국사봉

▲ 집사람(노숙자님 부인)

▲ 본인

2. 실미도 사건의 진실 (과거 사진들)

68년 4월에 창설되었다고 해서 '684부대' 라고 불렀다. 특수부대 창설은 68년 김신조가 이끄는 북한무장공비 31명이 청와대를 습격하기 위해 서울에 침투했던 1·21사태에서 비롯되는데 이 사건에 분노한 박정희가 그 보복 조치 로 실미도 부대를 만들었다.'눈에는 눈 이에는 이' 라며 부대 인원도 김신조 특공대 와 똑같은 31명으로 구성되었고 훈련요원과 동일한 수의 기간요원들이 있었다.

모든 교육을 총괄하는 교육대장과 직접 교육병들을 담당하고 같이 행동하는 소대장, 통신병, 의무병, 보급병 등이 있었다. 실미도 특수부대는 당시 권력실세였던 김형욱 중앙정보부장, 대북 공작책 제1국장 이 철희(후에 이철히 장영자 사건의 조범이였죠)에 의해 만들어졌고 부대관리와 훈련은 공군이 맡았다. 그들은 혹독한 지옥훈련 3개월만에 북한 주석궁을 침투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의 실력을 갖춘다. 그러나 실미도 특수부대가 창설된지 3년 4개월만에 북파지연과 월급/대우에대한 불만 이 폭발하게된다.

실미도는 인천에서 남서쪽 직선 거리로 20 km 떨어진 해발 80m, 2제곱 km의 사람이 살지 않는 작은 섬으로 중앙정보부가 당시 북파 특수부대를 훈련시킬 최적의 장소로 이 곳을 지적했다. 그들은 3년4개월동안 체포되면 죽는다는 교육을 하루에도 몇번씩 받았다. 조국 통일 을 위해서는 목숨을 기꺼이 바칠 각오가 되어 있었다.

북한 침투훈련을 위해 위성사진을 본따 북한 지형의 모형(사판)을 만들어 훈련했다.
독도법 호신술 산악훈련 폭파기술 등을 배웠다. 기간요원과 훈련병 모두 처음에는
사기가 하늘을 찌를듯 했다. 국가를 위해 충성하고 임무를 완수하면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에 부풀었다. 김신조부대를 능가해야 한다는 각오로 산악구보를 하더라도 그들보다 1초라도 더 빨리 달렸다. 훈련중에 동료 7명이 목숨을 잃었지만 실미도 특수부대원들의 기량은 최고에 달했다. 목숨을 건 훈련 3개월만에 목표물이 어디서 어떻게 움직이더라도 그들의 사격실력은 백발 백중이었다.

훈련요원과 기간요원이 함께 먹고 자면서 똑같이 생활했다. 당초에 약속했던 3개월이 지나면서 상부로부터 보급과 지원이 줄어들었고 실미도의 문제점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실전명령만 눈이 빠지게 기다리며 참아온 석달. 그러나 예정되었던 68년 8월에 북한침투 명령이 떨어졌다가 전격 취소되고 만다.

그이후 지옥같은 훈련을 3년이나 견디어 내면서 작전 명령을 기다려 왔지만 그들에게 단한번도 북파기회는 주어지지 않는다. 그리고는 마침내 실미도 난동사건 그들의 불만이 폭발했다.

당시 실미도 밖의 상황은 남북 화해분위기로 빠르게 변하고 있었다. 중앙정보부장은 684 부대를 만든 장본인 김형욱에서 이후락으로 바뀌고 실미도 처리문제는 계속 미루어진다. 국제 데탕트의 영향(미 중의 핑퐁외교등...)을 받아 남북한 역시 대화노선으로 나간다. 이후락은 마침내 평화통일안을 천명하고 남북회담으로 이어진다. 북한 침투를 목적으로 창설한 실미도 특수부대의 존재가치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마침내 끔찍한 최후의 날인 1971년 8월23일 새벽 6시. 탈출을 위한 훈련병들의 행동개시와 함께 실미도는 삽시간에 피비린내나는 살육의 현장으로 바뀐다. 특수훈련을 받은 훈련병들이 일당백의 기량으로 기간병을 습격한다. 24명의 기간요원중 교육대장이던 준위등 12명이 사살되고 6명은 바다로 피하려다 익사 하였다.

현장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경비병 5명과 김방일 소대장등 모두 6명. 그리고 훈련병들은 인근섬 무의도에 들어가 배를 타고 낮 12시 30분경 3년 4개월간 갇 혀 있던 실미도를 빠져 나와 인천 독배부리 해안에 상륙한다. 12시 53분 송도외곽에 서 탈취한 시내버스를 타고 가다가 연락을 받고 대기중이던 육군 24명과 총격전을 벌 인다. 그들이 타고가던 버스의 바퀴가 펑크나자 마주오던 버스를 탈취해 서울로 향한다.

오후 2시 15분경 운전기사가 탈출하자 실미도 훈련병이 직접 차를 몬다. 대방동 로터리 유한양행앞에서 그들이 몰던 버스가 가로수에 받혀 멈춘다. 그리고는 수류탄 자폭 으로 최후를 맞는다. 생존자 4명에게는 사형이 집행되고 이사건은 철저하게 은폐되어 영원한 미궁에 빠지게 된다. 사건발생 3일후 당시 국방장관이 전격 사표를 냄으로써 이사건은 의문을 가질 기회도 없이 종결된다.

1.마니산 까치부대 (해병북파특수공작대-MIU)

타 부대 특수임무자들하고 다른점은 Hid는 육상으로, Udu부대는 해상으로 주로 훈련을 많이 하였으며, 영화 실미도로 잘알려진 부대는 공군첩보부대였으며, 해병북파공작대는 육, 해, 공 어느 곳을 막론하고 즉각 침투하여 임무 완수를 하기 위하여 산악훈련은 물론 공수교육과 설한지훈련, 해양 훈련까지 이수하여 그야말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대한민국 최강 전천후 부대로 유명하다.

2.비밀부대 선갑도부대

"32명의 북파공작 부대원들은 사형수와 무기수들이었으며 사면을 조건으로 채용됐다."

“영화로 이름 알린 실미도 부대는 민간인들을 선발했지만 선갑도 부대는 무기수와 사형수 32명을 선발했으며 실미도 부대는 우리와 게임이 안 된다”

- '특수임무수행자 복지진흥회’ 명예회장 이춘국(78·예비역 대령)씨의 증언.

3.실미도 684부대

실미도 특수부대는 당시 권력실세였던 김형욱 중앙정보부장과 대북 공작책 제1국장 이철희에 의해 만들어졌고 부대관리와 훈련은 공군이 맡았다. 그들은 혹독한 지옥훈련 3개월만에 북한 주석궁을 침투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의 실력을 갖춘다. 그러나 실미도 특수부대가 창설된지 3년 4개월만에 하극상과 청와대행, 그리고 자폭으로 훈련원 31명은 모두 죽게 된다.

 4. 해군첩보부대 UDU<영화 아저씨 원빈부대> 

이들이 수행한 임무는 주로 요인납치 및 암살, 폭파, 기습, 잔류공작원 보급 및 접수, 수송, 철로폭파, 적 통신시설 감지 등이었다. 이들의 북파공작은 71년까지 이어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 이후에도 부대는 현재까지 계속 유지되고 있지만 대북공작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5.HID

▲ MBC 에서 방영된 "이제는 말할 수 있다" 프로입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김신조 일당들에 대한 보복으로 김일성 모가지를 따기위한 설립된 특수부대의 사건 내용입니다. (동영상 45분 소요)

^(^, 노숙자 님, 고생하셨습니다. 

재밌게 봤던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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