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아내의 이야기
두 달 전 남편과 다투고 난 후의 일입니다.
원래 부부싸움이란 게
그렇듯이 별일도 아닌데 커지죠.
그날도 내가 말 한마디만 내뱉지 않았더라도...
하지만 소심한 저의 성격이
그렇게 내버려 두지 않았고
심하게 싸움을 한 다음 날
서울에 있는 언니네 집에 간다고 말한 뒤
무작정 서울행 기차에 올랐답니다.
‘가까운 친정도 아니고
이렇게 멀리 서울에까지 왔는데
당장 전화가 오겠지!’
기차를 타고 언니네 집으로 가는 내내 생각을 했었지요.
형부 눈치를 보면서
불편한 마음으로 하루 이틀 사흘을 보냈는데도
남편에게선 전화 한 통 없었습니다.
전화벨이 울리면 혹시 남편의 전화인가 싶어
귀를 쫑긋 세웠지만 결국 화해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치달았습니다.
이렇게 멀리까지 와 있는 내게
전화 한 통도 없는 남편을 이해할 수 없었고,
자존심이 많이 상한 저는 내려가면
헤어지겠다는 결심을 하고
집으로 가는 기차를 탔습니다.
30분 정도 흐르자
건너편 뒷자리에 계신 노부부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예순이 넘으신 듯한 노부부는
뭐가 그리도 즐거운지 연신
서로의 귀에 소곤소곤 귓속말을 해주고
조그맣게 웃고 계셨습니다.
헤어질 결심을 한 제가 보기엔
얄미울 정도로 정다워 보였답니다.
그래도 자꾸 그쪽으로 눈길이 가고
귀가 기울여지는 건 어쩔 수 없었습니다.
한참 후 탁탁 소리가 나서
노부부를 쳐다보니
할머니가 간식거리로 밤을 삶아 오셨나 봅니다.
치아가 안 좋으신 할머니가 밤을 가르지 못하자
할아버지가 빼앗아 이빨로 밤을 가르는 소리였습니다.
할머니는 기다렸다는 듯이
가방에서 찻숟가락을 꺼내셨고
반으로 가른 밤을 독독 긁어
할아버지의 입에 넣어 주셨습니다.
그러자 몇 번을 받아 드시던 할아버지는
미안했는지 수저를 가로채
소리가 나게 알뜰히 긁어 할머니의 입에 넣어 주시더군요.
할머니는 부끄러우셨는지
주위를 한 번 둘러보며 수줍게 입을 벌리셨고,
넋 놓고 쳐다보던 저와 눈이 마주치고 말았답니다.
표정 관리가 안 돼 그냥 한 번 ‘씩’ 웃고
고개를 꾸벅하는 것으로 훔쳐 본 값을 치렀습니다.
도대체 얼마를 살아야
저런 행동들이 스스럼없이 나오는 걸까요?
아마도 수십 년 세월을 보내며
우리 부부처럼 싸움도 하고 질투도 하고
헤어짐을 결심하면서 일구어 낸 결과가 아닐까 싶었습니다.
갑자기 코끝이 찡해지고
헤어질 결심을 한 남편의 얼굴이 그리워졌습니다.
당장 남편에게 전화하고 싶었지만
끝내 자존심을 버리지 못했지요.
노부부의 다정한 모습을 훔쳐보는
두 시간 내내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어느새 기차가 내려야 할 역에 도착했고,
플랫폼을 빠져 나왔을 때
깜짝 놀랄 사건이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남편이 손을 흔들며 저를 반기고 있었던 것입니다.
반갑고 고마운 마음과 원망스러운
마음이 한꺼번에 교차했지만 그래도 반가움이 더 컸습니다.
언니가 남편에게 전화를 한 모양입니다.
그날 밤 참으로 오랜만에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간 바쁘다는 핑게도 서로에게 무관심했던 것,
별일 아닌 일로 바가지 긁어
자존심 상하게 했던 것 등등 그렇게 풀고 나니
세상에 부러울 것 하나 없었답니다.
모두 그 노부부의 가르침덕분이었습니다.
잠깐 남편을 미워하고 헤어짐까지 결심한
제가 정말 부끄러웠으며
세상을 너무 쉽게 살아가는 건 아닌가 싶었습니다.
큰 위기를 넘길 수 있도록 해 주시고
행복의 참모습을 일깨워주신
노부부께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해드리고 싶고
세월이 흐른 후 우리 부부도
그 노부부의 모습을 그대로 닮아가기를 바라봅니다.
^(^, 축하합니다.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기원합니다.
자연사랑은
어린이들 미래이자 희망입니다.
긍정의 힘으로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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