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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도는 한국땅/고지도

썬라이즈 2022. 1. 24. 0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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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本 고전학자(武田祐吉)

<한반도와 오랜 교류 흔적 곳곳에...>

▲ 대마도는 한국땅 조선 8도 고지도 (우측 하단 섬)

'환단고기(桓壇고記)'에 "쓰시마를 '三韓(산가라)' 또는 '三加羅(산 가라)'라고 하기도 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산 가라'는 고대 한반도의 '삼한(三韓)'을 가리키는 말이다. 쓰시마의 '삼한(三韓)'을 '삼한(三汗)'으로 쓴 적도 있다고 한다. 이는 한반도 삼한과의 혼동을 피하기 위해 쓰시마의 삼한을 바꿔 쓴 것이라고 한다.

일본 고대사인 '일본서기(日本書紀)'신대기상(神代記上)에는 쓰시마를 가라사토노시마(韓鄕之島)라 적고 있다. 수사노오노미코토가 대가야(大伽倻)에서 이곳으로 와서 보고 말하기를 '이곳 가라사토노시마(韓鄕之島)에는 금과 은이 산출된다. 내 아들로 하여금 이곳을 다스리게 하고 싶다'라는 기록이다.

일본 고전학자 무전우길(武田祐吉)은 '일본서기'를 번역하면서 '가라사토노시마는 조선 땅이다'라는 주석을 달았다고 한다. 일본 사학자 가나자와 소사부로(金澤莊三郞)도 '가라사토노시마는 가라(韓, 伽羅) 영역인 가라쿠니(韓國)에 속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한다.

<400께 고구려 통치 시사 기록도>

쓰시마를 고구려 목장이라 하여 고려국지목이라 한 기록도 보인다. 광개토대왕 시절인 400년께 쓰시마가 고구려 통치하에 있었다는 것을 시사해 주는 기록이다. 광개토대왕이 노략질을 일삼는 왜를 일본 본토까지 장군을 보내 추격, 항복문서를 받았음이 그의 비문에 나와 있다.

쓰시마 북단에 와니우라라는 작은 포구가 있다. 맑은 날이면 부산의 모습이 보일 정도로 쓰시마 내에서도 한국과 아주 가까운 곳이다. 이곳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한반도와 마주 보고 있는 고려산이 있다.

쓰시마 향토역사책 '쓰시마기사'에 한반도의 신라 국력이 차츰 강해지자 시라기(新羅)라고 표기하기를 꺼리고 동음으로 소리 나는 시라기(白木)로 쓰게 되었다는 기록이 보인다. 이런 이유로 쓰시마에는 지금도 백(白) 자가 들어가는 지명이 무척 많다.

신라인들만 모여 살았다고 하는 시라에(白江)와 시라코(白子)마을. 쓰시마 상도(上島) 사스 나와 하도(下島) 계지에 있는 시라에라는 지명. 계지라는 지명의 유래도 신라와 관련이 있다고 한다.

<신라인 집단거주지 입증>

'계림국(鷄林國)을 잊지 말자'라고 하여 이렇게 불렀다고 전해진다. 계지의 본 천인 시리에가와(白江川), 이곳에 시라에 바시(白江橋)가 있다. 계지 동북쪽 산 시라에 야마(白江山), 쓰시마 공항 근처의 강 시레가 와(白連川), 이즈하라 동쪽에는 시라기야마(白木山. 新羅山)가 있다.

시라에와 같이 신라와 관련한 지명이 밀집해 있는 것은 이곳에 신라인들의 집단거주지인 읍락이 있었음을 나타내는 증거이다. 실제로 쓰시마하도인 구다모라(久田村)와 고우라(少浦)라는 마을에 '시라기(新羅)'라는 음을 차용한 시시키 신사가 있다.

이 신사의 제신은 신라인이다. 뿐만 아니라 시라기신사와 시로코 우라(白子浦)라는 포구도 있고 신라성(新羅城)이라는 작은 성터도 남아 있다고 한다.

^(^, 대마도도 우리땅이라고 한다면 일본은 뭐라고 할까?

^(^, 일본은 정신차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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