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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만리(有情萬里) 41

단야의 유정만리 1권 10화

3장, 소년 만 무룡 흘러가는 세월을 누가 막으랴! 12년이 후딱 지나갔다. 12년 전, 만무가의 멸문으로 중원무림은 일대 혼란을 겪었다. 그 당시 소림사와 오대방파가 만무가의 멸문을 마교(魔敎)의 만행으로 규정하고 마교 타도(打倒)의 기치를 높이 내걸었었다. 그러나 결전을 치르기도 전 높이 내걸었던 마교 타도의 기치는 꺾이고 말았다. 그 후, 마교 타도가 무산된 것은 소림사는 물론이고 무림방파들이 마교에 의해 봉문을 당했기 때문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중원무림은 이미 마교의 손아귀에 들어갔다고 보는 것이 옳았다. 그럼에도 마교는 무림에서의 활동을 중단하고 어느 날 갑자기 중원무림에서 자취를 감췄다. 마교가 사라진 직후, 무림인들은 중원무림의 안녕과 질서를 지켜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

유정만리 1권 9화

태양이 중천으로 떠오른 시각, 오대산은 온통 은빛으로 눈이 부셨다. 천지봉 일대는 물론이고 기암괴석들과 고송들, 잡목들까지 꽃가루를 뿌리듯 은빛을 뿌려대고 있었다. 은빛의 설원, 검은 인영이 백지에 선하나 긋듯 산등성을 내려오고 있었다. 검은 인영은 곰처럼 눈 덮인 산등선을 잘도 미끄러져 내려왔다. 이리저리 몸을 틀어가며 나무와 나무사이를 잘도 빠져나왔고 장애물이 있으면 타 넘기도 했다. 후후, 휴후, ​ “이젠 거의 다 왔다.” ​ 검은 인영은 호피로 만든 커다란 포대를 업듯이 짊어졌고, 발에는 나뭇가지를 총총히 엮어서 만든 커다란 설피를 신었다. 사나이는 잠시 숨을 고르고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가야, 이 능선만 돌아가면 우리 집이다. 조금만 참아라!” 사나이는 설피를 왼발에 신고 오른발을 이..

유정만리 1권 8화

시간은 계속 흘러갔다. 산 속이라 어둠은 빠르게 계곡으로 밀려들었다. 사나이가 아기를 안고 밖으로 나온 시간은 정오가 되기 전이었다. 그때부터 계산하면 서너 시진은 족히 지났을 것이다. 시간 탓일까, 사나이의 몸은 이미 꽁꽁 얼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아기의 주위는 무슨 이유에선지 눈이 녹아내려 푹 꺼져 있었고, 아기는 꺼진 눈속에 죽은 듯이 누워있었다. “......” 휘이잉, 휘잉, 눈보라를 실은 회오리바람이 계곡을 쓸고 지나갔다. 계곡의 눈들이 마치 바람에 매화꽃 날리듯 휘날렸다. 날씨가 얼마나 추운지 사나이의 수염에 여러 개의 고드름이 열렸다. 하지만 사나이는 몇 날 밤을 지세더라도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아니 얼어버린 산송장이 된다고 해도 아기가 열병에서 살아나기만 한다면 그것으로 족할 것이었다...

유정만리 1권 7화

암동(巖洞) 안이 밖에서 들어오는 빛으로 인해 훤했다. 그때서야 사나이가 기지개를 켜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으앙, 으앙, 으앙, “너도 깼구나, 어디 보자 우리 아기,” ​ 사나이가 아기를 안아 어르자 금방 울음을 그친 아기가 작은 손으로 사나이의 덥수룩한 수염을 잡아당겼다. ​ “허허, 이놈 봐라! 수염을... 그래 너는 오늘부터 내 아들이다. 곧 맘마를 줄 테니 조금만 기다려라.” 사나이는 화덕에 불을 지피곤 암동을 나섰다. 해가 높이 솟은 것을 보니 한나절은 지난 것 같았다. 하늘은 언제 눈을 퍼부었냐는 듯 맑고 푸르렀다. 온 천지가 너무도 깨끗한 순백의 세계였다. 눈부신 태양이 황금빛 햇살을 설원(雪原) 위로 마구 뿌려댔다. 그러자 설원은 아름다운 은빛을 하늘로 쏘아 올렸다. 너무도 눈부신 햇살과..

유정만리 1권 6화

쿵! 쿵! 쿵! 잠시 아기를 쳐다보며 허허거린 사나이가 이번엔 구멍이 난 벽을 허물기 시작했다. 힘이 장사인 사나이의 몇 번 도끼질에 구부리면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벽이 무너져 내렸다. 사나이는 횃불을 들고 무너져 내린 동굴 안을 들여다봤다. “아니...?” 사나이는 의심이 들었는지 눈을 몇 번 비벼댔다. 동굴 안은 무너져 내린 입구만 커다란 돌들로 막아 놨을 뿐 천장과 사방이 암벽으로 된 암동(巖洞)이었다. 암동 안은 누군가 살았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암동의 넓이는 폭이 5장이 훨씬 넘어 보이는 타원형 암동이었다. 암동의 동쪽 벽 앞엔 음식을 해 먹었는지 잡동사니 그릇들이 널려있었다. 그리고 한쪽으론 크고 작은 호리병들이 놓여있었고, 그 옆 화덕 위에는 커다란 약탕기까지 놓여있었다. 그뿐이 아..

유정만리 1권 5화

2장, 업둥이 휘리링, 휘리링, 6일 전서부터 내리기 시작한 폭설(暴雪)은 오대산 중지에 위치한 천지봉(天池奉) 일대를 고립무원의 세계로 만들고 있었다. 시야를 가릴 정도로 매섭게 몰아치는 눈보라소리는 마치 죽음을 몰고 다니는 죽음의 호곡성(號哭聲)처럼 들렸다. “으, 빨리 동굴을 찾아야 한다. 이러다간 길을 잃겠다.” 무섭게 몰아치는 눈보라 속을 뚫고 검은 점 하나가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천지봉(天池奉)에서도 제일 험하다는 사골계곡(死骨溪谷)을 따라 이어진 능선이었다. “내 생전에 이렇게 많은 눈이 내리는 것은 처음 본다. 제기지랄, 후후- 그래 이 능선만 돌아가면 된다.” 사나이는 푹푹 빠지는 눈밭을 힘겹게 걸으면서도 무엇을 찾는지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 폭설이 내린 지도 벌써 7일째, 천지봉 ..

유정만리 1권 4화

휘리링, 휘리링, 삼일전서부터 내리기 시작한 폭설(暴雪)은 오대산 중지에 위치한 천지봉(天池奉) 일대를 고립무원의 세계로 만들고 있었다. 시야를 가릴 정도로 매섭게 몰아치는 눈보라는 마치 죽음의 계곡을 지나듯 호곡성(號哭聲)을 질러댔다. 그 눈보라 속, 강보를 안은 한 여인이 몰아치는 눈보라를 뚫고 천지봉을 오르고 있었다. 얼마나 오랫동안 눈보라 속을 헤매고 다녔는지 여인은 맨발이었고 청색무복은 넝마처럼 찢겨 너풀거렸다. 아예 한쪽소매는 떨어져 나가 검상(劍傷)을 입은 팔이 그대로 드러났다. 여인은 숭산 운무곡에서부터 도망쳐온 수련이었다. 수련은 평정객잔에서 도망친 그날 밤부터 평도를 향해 달렸다. 그러나 지나는 곳마다 추적자들을 만나게 되었고, 그럴 때마다 죽을힘을 다해 도망쳐야만 했다. 그렇게 도망을..

유정만리 1권 3화

평정객잔 2층, 한 방안에서 도란도란 얘기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쉿! 놈들이 여기까지,” 사나이가 불을 끄며 속삭였다. “가가, 어쩌지요.” “아무래도 함께 벗어나기는 힘들 것 같다. 내가 놈들을 유인할 테니 아기씨를 모시고 먼저 평도로 가라!” “가가, 이렇게 헤어지면,” “수련! 곧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그러니 수련, 놈들을 유인할 동안 뒷문으로, 아기씨 나중에 뵙겠습니다.” “가가! 가가!” 사나이는 아기에게 머리를 숙여 보이곤 대꾸도 없이 창문으로 빠져나갔다. 오늘의 무림세가 만무가(万武家)가 무참하게 무너진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누군가가 아기의 백일 찬치를 노려 공력을 약화시키는 무색무취의 독을 우물에 풀었고, 만무가의 모든 식솔들이 독물을 마셨다. 그 결과는 너무도 끔찍했다..

유정만리 1권 2화

숭산에서 300리쯤 떨어진 평정산(平頂山)이 땅거미에 잠식당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노을을 등진 남녀가 평정산 아래에 있는 작은 읍성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여인은 강보를 꼭 끌어안고 걸으면서도 두리번두리번 주위를 경계했다. 얼마나 위험에 처했었는지 눈빛은 불안해 보였다. 그러고 보니 남녀는 엄청난 격전을 치른 듯 몰골이 엉망이었다. 사나이의 옷은 걸레처럼 찢어져 펄럭거렸고 여인의 무복도 격전을 치른 듯 너풀거렸다. 게다가 붉게 물든 옷이 깃발처럼 날리니 가관이었다. 남녀는 숭산을 벗어 난지 대략 두 시진 만에 일단의 복면인들과 맞닥뜨렸다. 그들은 사력을 다해 일전을 치렀고 7명의 복면인들을 죽였다. 그리고 끈질긴 추적자들의 눈을 피해 또다시 도망치기 시작했다. 낮엔 추적자들의 눈이 무서워 산에 숨었다가..

유정만리 / 1권 1화

1장, 滅門의 書 스스슥, 스슥, 스스슥, 쉬익, 쉬익, 쉬쉭- 쉬쉭- 어둠을 뚫고 깊은 숲 속을 질주하는 수백의 검은 인영들, 어디로 가는가, 허공을 가르는 칼바람 소리만 살벌하게 들려왔다. 일반인들이 보았다면 놀라 까무러쳤을 절정(絶頂)의 경공술(輕功術), 어스름한 달빛마저 구름에 가려 한 치 앞도 분간키 어렵다. 하지만 검은 인영(人影)들에게는 대낮에 활보하듯 아무런 장애도 되질 못했다. ​ 휘이잉--휘이잉-- 초겨울의 매서운 바람이 계곡을 휘돌아 지나갔다. 숭산에서도 제일 험하다는 태실봉 운무곡(雲霧谷), 깎아지른 절벽이 삼면을 가로막은 천혜의 운무곡, 동쪽으로 난 구릉이 아니면 접근이 불가한 운무곡, 검은 인영들은 운무곡을 향해 거침없이 달려가고 있었다. “만무가가 지척이다. 몸을 낮춰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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