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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만리(有情萬里) 41

단야의 유정만리 1권 20화

만복철은 미시(未時, 하오 1시 30분) 경 산을 내려갔다. 무룡은 산등성까지 아버지를 배웅했다. 무룡의 눈에 멀어지는 아버지의 등이 한없이 쓸쓸해 보였다. 옛날 같았으면 아버지의 등이 너무 넓고 단단해 보여 커다란 바위를 보는 것 같았었다. 그런데 초라하고 힘없는 노인의 등을 보자 자신도 모르게 왈칵 눈물이 솟았다. “아버지!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셔야 합니다. 그동안 이 못난 놈을 키우시느라 등골이 빠지셨음을 잘 압니다.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지 소자 눈물만 납니다. 부디 아버지는 오래오래 사시면서 소자가 장가들어 아들 낳는 것을 꼭 보셔야 합니다. 아버지! 소자는 아버지의 뜻을 거스르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오래오래 사신다고 약속은 꼭 해 주십시오. 며칠 후에 찾아뵙겠습니다. 혹여 소연이가 오면 잘..

단야의 유정만리 1권 19화

아침 일찍 서두른 무룡 부자는 진시(辰時, 아침 8시) 경, 천지봉이 바라다 보이는 산등성을 오르고 있었다. 무룡은 등짐을 졌고 허리에는 손도끼를 찼다. 아버지인 만복철은 지팡이 겸 작대기를 들었다. 천지봉에 드리운 운무가 햇살에 무지갯빛으로 아름답게 물들었다. 항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천지봉 정상이었다. 어렸던 무룡은 운무에 가린 천지봉이 하늘과 맞닿은 줄 알았었다. 그런데 천지봉이 하늘과 맞닿은 것이 아니란 사실을 아버지에게 듣게 되었다. 그 말을 들었을 땐 어린 마음에 실망을 했었다. 그러나 아버지 말씀대로 천지봉 꼭대기에 별천지가 있다는 것을 굳게 믿었다. 그때 무룡은 언젠가는 별천지인 천지봉 정상에 꼭 올라가 봐야겠다고 결심을 했었다. 지금도 그 결심은 변함이 없었다. 무룡은 한참동안 천지봉을..

단야의 유정만리 1권 18화

4장: 대장부는 울지 않는다. 끼룩, 끼룩, 끼룩,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푸르렀다. 그 높은 창공을 자유롭게 날아가는 수천 마리의 철새 떼는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좌청룡우백호(左靑龍右白虎)는 아니지만 동남쪽이 확 트인 양지바른 산등성에 무덤 하나가 새롭게 세워졌다. 무덤 앞, 검은색 건을 쓴 두 사나이가 나란히 앉아 멀리 보이는 열두 그루의 적송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 사람은 약관의 청년이었고, 그 옆에 묵묵히 앉아있는 사람은 백염이 덥수룩한 노인이었다. 그들은 한참동안 앉아있었으면서도 좀처럼 움직일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반 시진쯤 지났을 때였다. 여간해선 움직일 것 같지 않던 노인이 청년의 어깨를 툭 쳤다. “무룡아! 이젠 그만 내려가자, 내일은 암동에 가자꾸나.” “아버지! 지금 제..

단야의 유정만리 1권 17화

무룡이 집에 돌아온 시각은 술시(戌時, 저녁 7시 30분)경이었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싸리문은 활짝 열려있었고 기둥엔 불이 환하게 밝혀진 등이 걸려있었다. “아버지! 어머니! 다녀왔습니다.” “오늘은 그곳에서 자고 올 줄 알았는데, 들어오너라!” “어머니는 좀 어떠세요.” 무룡은 방으로 들어서며 아버지 표정부터 살폈다. 그리곤 흐릿한 불빛에 더욱 창백해 보이는 어머니 옆에 앉았다. “음, 오늘밤을 넘기기가 어려울 듯싶다.” 입이 떨어지지 않는지 만복철이 힘없이 말했다. ​ “예! 그런데 어찌 저를 만화곡으로 보내셨어요!” “그러는 것이 좋겠다고 네 어머니가 말하는 바람에... 어쩌겠느냐! 네가 어머니 마음을 이해해 드려야지...” “어머니! 어찌 소자를 불효자로 만드시려 하셨습니까? 소자는 너무 속상..

단야의 유정만리 1권 16화

“흥, 왔으면 날 깨우지는 않고 잘들 논다.” 언제 일어났는지 홍의무복을 날렵하게 차려입은 자영이 평상 앞에 서 있었다. 자영은 두 사람이 밖으로 나오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쌀쌀맞게 말을 내뱉었다. ​ “자영이도 집에 있었구나. 나는 할아버지가 물어볼 것이 있다고 하셔서, 너를 먼저 찾지를 못했다. 미안하다.” 무룡이 변명하듯 말했다. ​ “무룡이 너 정말, 그 말 믿어도 되지...?” 자영도 실없는 질문을 해댔다. ​ “그럼 믿어도 되지, 그래 여태 잠잤니...?” “그래 늦잠 잤다. 무룡이 너! 따라와!” 자영은 톡 쏘아 붙이곤 앞장을 섰다. ​ “어딜 갈 건데...?” “따라오라면 따라올 것이지...” “응, 알았어! 소연이도 같이 가자!” “빨리 오라니까! 뭐 해!” 자영은 초막 뒤로 돌아가다 ..

단야의 유정만리 1권 15화

새벽바람은 쌀쌀했다. 하늘엔 구름 한 점 없이 맑은데 샛별만이 유난히 반짝였다. 무룡은 화덕에 불을 지피고 약탕기를 그 위에 정성스레 올려놨다. 그리곤 싸리비를 들고 마당이며 길을 깨끗이 쓸었다. 길을 다 쓴 무룡은 팔을 걷어붙이며 장작 팰 준비를 했다. “무룡아! 오늘은 내가 장작을 팰 것이다.” “무슨 말씀이세요. 아버지!” “무슨 일은, 오늘 만화곡에 가기로 했지 않느냐? 그러니 일찍 서둘러라, 너무 늦지 않게 다녀와야 한다.” “오늘 꼭 가야 합니까?” “스승은 부모 이상이라고 말하지 않더냐! 오늘은 선인을 꼭 찾아가 뵙게 하라고, 네 어미가 어젯밤에 말을 하더라.” 사실 태궁은 무룡의 스승은 아니다. 그러나 무룡의 부모나 무룡은 태궁을 스승처럼 생각했다. 태궁의 말은 한마디라도 버릴 것이 없었다..

단야의 유정만리 1권 14화

초막 뒤쪽으론 깎아지른 암벽이 가로막고 있었다. 그 누구도 타 넘을 수 없는 천혜의 암벽이었다. 그런데 딱 한 곳 비밀 통로가 하나 있었다. 자연적으로 생성된 통로는 덩치 큰 사람이 겨우 지나다닐 수 있을 정도로 좁은 통로였다. 자영은 그 통로를 지나 암벽 뒤쪽으로 나왔다. 삐죽삐죽 칼바위들로 이루어진 돌산이 눈앞에 펼쳐졌다. 그리고 암벽 통로를 막 벗어나면 온천수가 샘솟는지 기포가 뽀글뽀글 올라오는 작은 연못이 있었다. 연못 주위는 평평했고 동글동글한 몽돌들이 깔려있었다. 주위는 들짐승들조차 접근할 수 없을 정도로 험했고, 자영이 맘 놓고 목욕을 해도 문제 될 것이 없어 보였다. 사르륵, 사르륵, 연못 앞으로 다가간 자영이 옷을 벗기 시작했다. 고요한 적막 속에 자영의 옷 벗는 소리만이 주위에 늘어선 ..

단야의 유정만리 1권 13화

4장, 조추월의 죽음 ​ ​ ​ 오대산에서 제일 험하고 절경으로도 으뜸인 천지봉(天池奉)이 햇살아래 위용을 자랑하며 모습을 드러냈다. 때는 상춘지절(上春之節), 만물이 소생하는 초봄이었다. 천지봉이 한눈에 바라다 보이는 능선, 이제 막 고개를 내민 어린 풀들이 내리쬐는 햇볕을 탐하여 동쪽으로 머리를 들이밀곤 자기들 말로 싸움질을 해대고 있었다. 잡목들은 잡목들대로 자기가 먼저 잎을 피우겠다고 지나가는 바람을 붙잡고 마구마구 실랑이질을 해댔다. 그래도 듬직한 소나무들은 아우님 먼저 형님먼저 양보를 해가며 늘어진 가지를 양껏 벌려 기지개를 켰다. 하늘엔 뭉게구름이 파란도화지에 그림을 그려 넣듯 제멋대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능선 풀밭에는 대자로 누운 한 청년이 수시로 변하는 구름을 쳐다보고 있었다. 한참 ..

단야의 유정만리 1권 12화

안보가 무너지면 자유도 미래도 없다. 천지봉에서 남서쪽으로 2 십리쯤 떨어진 곳이었다. 계곡을 끼고 아름답게 가꾸어진 화원이 햇살아래 드러났다. 사방 100장은 족히 될 넓은 화원은 온통 국화꽃이 만발한 만화곡(萬花谷)이었다. 화원 입구에서부터 100장쯤 되는 길을 지나면 아담한 초막이 세 채 나란히 지어져 있었다. 초막 앞까지 쭉 뻗은 길은 금사(金砂)가 깔려있어 눈이 부셨다. 중앙에 있는 초막은 제법 컸다. 그 초막 앞엔 여러 명이 앉아서 쉴 수 있는 평상까지 놓여있었다. 무룡은 앞서가는 노인을 따라 국화꽃으로 만발한 화원을 가로질러 평상 앞에 다다랐다. 평상 앞엔 귀엽고 예쁜 두 소녀가 서 있었다. 소녀들은 신기한 것을 본 듯 무룡을 유심히 쳐다봤다. “할아버지! 저들이 누구예요?” “아시는 분이세..

단야의 유정만리 1권 11화

햇살이 따가운 한나절, 노소가 천지봉 깊은 골짜기로 들어서고 있었다. 무룡은 몸에 딱 맞는 지게를 지고 아버지를 따라 산에 올랐다. 지게는 아버지가 어깨나 등이 배기지 않도록 아주 편하게 만들어준 지게였다. 그런데 오늘따라 아버지는 천지봉 깊숙한 골짜기까지 들어가서야 지게를 벗었다. 주위는 곧게 자라지 못한 소나무와 낙엽송 그리고 오리목나무와 상수리나무들이 심어져 있었다. 나무들은 기형적으로 자란 나무들이 태반을 차지했다. 땅이 척박해서가 아니었다. 돌들과 바위들로 이루어진 땅이라 뿌리가 곧게 뻗지를 못해 기형적으로 자란 나무들이었다. 그렇지만 어른들 한 아름이 넘는 굵은 나무들이 많았다. “무룡아! 왜, 이곳까지 왔는지 아느냐?” “아버지! 제가 그 답을 맞히면 아버지는 한 가지 질문에 대답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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