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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와 거래했다. 58

악마와 거래했다. 38

소라와 대박이는 길에서 조금 떨어진 나무 밑으로 갔다. 붙박이 긴 나무의자가 있어서 점심 정도 먹기는 딱 좋은 장소였다. 자리를 갖고 왔다면 더 좋았겠지만... “너무 좋아서 깔개를 챙기는 걸 깜박했어요.” “이렇게 마주 앉아서 먹으면 되지, 그런데 아줌마가 뭘 싸줬을까, 김밥은 기본이고, 불고기 냄새가 폴폴 나던데...” “엄마가 등심을 찜으로 만들...” “야 맛있겠다. 빨리 꺼내,” “오빠는 으이그...” “아 미안, 별안간 등심이 땅겨서 말이야,” 둘의 말싸움은 누가 들어도 정감이 있었다. “오빠가 이렇게 서두르는 모습, 처음인 거 아시지요. 매사에 신중하고 배려가 깊었는데...” 살짝 눈을 흘긴 소라가 미소를 지었다. “아 그랬구나, 요즘 내가 조급증이 생겼다. 그래도 우리 소라 공주님이 옆에 ..

악마와 거래했다. 37

희망이네 분식집은 정기휴일이 없다. 특별히 쉬고 싶을 땐 언제든 문을 닫으면 된다. 연중무휴(年中無休) 특별한 날도 없이 영업 중이다. “오빠, 빨리 준비해, 벌써 10시야,” “준비 끝, 가자,” 소라는 신축성이 좋은 청바지에 등산용 점퍼를 입었고, 대박이도 청바지에 등산용 점퍼를 입었다. 누가 봐도 두 사람은 잘 어울리는 커플이었다. “오빠, 식당에 들려서 도시락 갖고 가야지, 엄마가 준비해 뒀을 거야, 먼저 내려간다.” “알았다 문단속하고 내려갈 게...” 소라는 앞서서 내려가고 대박이는 문단속을 했다. ‘참말로 오랜만이네, 3년 동안 기억은 없었어도 일상처럼 살았단 느낌이 드니 참 이상해, 암튼 오늘은 다른 생각 말고 소라와 즐겁게 보내자, 어린것이 맘고생도 심했을 거야,’ 한날 안 여사가 대박에..

악마와 거래했다. 36

“13일은 사부가 나를 기만하기 위한 술수겠지, 내일부터는 내재된 능력을 펼쳐보자, 정말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지, 맘먹은 대로 안개진이든 음한미리진이든 진법도 설치를 해 보는 거야, 그리고 마성을 제어하기 위해서라도 그래, 사부인 염마왕의 능력보다 모든 면에서 우위에 있어야 한다.” 대박은 자신의 방에 앉아 앞일을 생각했다. “능력과 힘을 맘대로 사용할 수 있게 된다면 먼저 할 일은 부모님을 처참하게 돌아가시게 만든 자들을 그 이상 처참하게 잡아 죽이는 거야, 기다려라, 철저하게 밟아줄 테니까,” 별안간 대박이의 눈빛이 붉게 충혈이 되었고 끔찍한 말이 쏟아져 나왔다. “일단 그놈, 그 형사 놈, 그놈을 잡아 족쳐야지,” 대박이의 뇌리에 떠오른 자(者), 할아버지의 일기장에 신상명세서가 기록되어 있었다..

악마와 거래했다. 35

사실 대박이는 사부인 염마 왕의 심기를 짐작하고 있었다. 사부는 강력한 마성을 심기 위해 대법을 펼치는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한 대박은 사부가 펼치는 대법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그것이 대법을 거부하는 것보다 의심도 덜고 마성을 억제할 힘도 얻는 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동안 대박이는 꿈속을 넘나들면서 자신을 돌아봤다. 할아버지의 죽음에는 현실에선 믿기 어려운 저승의 염마 왕과 연관이 있었다. 그 중심에는 이승과 저승의 경계에서 헤매고 있던 바로 자신이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무슨 연유로 염마왕이 자신을 택했는지는 알 길이 없었다. 다만 염마왕이 시간에 쫓기듯 뭔가 서두른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것이 대박이가 속마음으로 느긋함을 보일 수 있는 유일한 무기였다. “클클 네놈도 인간이니, 암튼 그만큼..

악마와 거래했다. 34

서늘한 바람이 몸을 스쳐 지나갔다고 느낀 순간이었다. 염마 왕의 탁한 목소리가 허공을 울림과 동시에 대박이 앞에 홀연히 나타났다. 홀로그램이나 순간이동처럼 나타난 것이다. “깜짝이야, 사부님, 이렇게 놀라게 해도 됩니까?” “이놈아, 염마왕의 제자가 이런 일에 놀라다니, 이승에서 네놈은 무적이니라!” “무적은 무슨...” “지금 뭐라 했느냐?” “무적이 무슨 말씀인지 몰라서...” 대박은 정말 모르는 것처럼 얼버무렸다. “제자야, 이승에서 너를 능가하는 자는 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제자야, 내 뜻을 잘 이행해야 한다는 것도 명심해라!” 염마왕은 말을 하면서도 대박이를 날카롭게 살폈다. ‘놈을 어떻게 해서든 수족으로 만들어야 한다. 만에 하나 잘 못 된다면, 이번엔 염라대왕께서 으... 지옥 불에 갇히겠지..

악마와 거래했다. 33

6장, 소라야 미안하다. 새벽 금정산 고당봉, 대박이가 동쪽 하늘을 응시하고 있었다. 훤칠한 키에 당당한 모습이 대장부다워 보였다. 마음을 추스르고 정진한 지 열흘이 지나고 있었다. 그동안 몇 차례 꿈을 꾸었지만 큰 문제는 일어나지 않았다. 사부인 괴인 할아버지의 가르침에 순종한 때문이겠지만 대박으로선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청출어람(靑出於藍)의 뜻을 받들기 위해서는 순종 외에 답이 없었던 것이었다. 특히 제자로서 사부의 능력을 접수한 후에 할아버지 문제를 따져 묻겠다는 것이 대박이의 속셈이었다. 대박이는 꿈속의 괴인 할아버지가 자신의 사부이자 염마왕인 적발 노인이라는 것을 이미 오래전에 인지했다. 사실 인정하기는 싫었지만, 적발 노인은 저승이 되었든 이승이 되었든 상상도 못 할 무시무시한 인물임에는..

악마와 거래했다. 32

2020년 1월 10일 오늘은 자칭 신선인 적발 노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3일의 기한, 대박이를 살리는 일이라면 그 무엇도 두렵지 않다. 적발 노인이 어떤 조건을 내걸더라도 받아들일 준비는 끝났다. 손자 대박이가 깨어나서 하고자 하는 뜻을 펼칠 수만 있게 된다면 그것으로 나는 족하다. 은근히 적발 노인이 기다려졌다. 내일은 오겠지... 오후엔 안 여사가 나를 위해 전복죽을 끓여왔다. 도통 입맛이 없어 밥을 못 먹었더니 걱정이 되었던 모양이다. 암튼 안 여사는 대박이 먹일 죽을 끓이면서 더 끓였다고 말했다. 역시 배려심이 깊은 여인이었다. 오늘 밤은 편안하게 잠만 잤으면 좋겠다. “제길, 얼마나 고단하셨으면,” 대박이의 눈에 눈물이 글썽였다. 2020년 1월 11일 108배를 마치고 일어선 때였다. 언제 ..

악마와 거래했다. 31

식당은 점심때라 그런지 손님들로 북적였다. 다행히 물이나 반찬은 셀프라 손이 부족하진 않았다. 대박이와 소라는 국수를 주문하곤 손님들처럼 물과 반찬을 먹을 만큼만 담아다가 탁자에 놓았다. “오빠, 아침도 안 먹고 국수로 되겠어요.” “다이어트 중이야,” “네 에! 오빠는 거울도 안 보세요.” 소라는 다이어트란 말에 걱정이 되었던 모양이다. “그냥 해본 소리야, 그리고 국수가 맛있어서 먹는 거야, 내가 너무 말라 보이긴 하지만 강단은 세다. 너무 걱정하지 마라,” 대박이가 깨어났을 때는 마른 장작처럼 앙상한 몸이었다. 특히 키만 훌쩍 커버린 몸이라 장작개비라고 말할 정도로 야위었다. 그나마 다행한 것은 먹성은 좋아서 음식은 가리지 않고 잘 먹었다. 그래도 지금은 장작개비는 면한 상태였다. “자 국수 나왔습..

악마와 거래했다. 30

2020년 1월 7일 새해를 맞이한 지 7일째다. 오늘도 나는 고당봉에 올라가 경자년(庚子年)에는 꼭 손자가 벌떡 일어날 수 있게 해달라고 천지신명께 빌고 또 빌었다. 그렇게 천지신명께 빌고 있을 때였다. 괴상하게 생긴 적발 노인이 홀연히 나타나 자신을 신선이라고 소개했다. 나는 놀라긴 했지만, 산전수전 다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당당한 척 내 소개를 했다. 그리고 물었다. 내게 뭔 볼일이냐고? 사실 신선이라면 편견인지는 모르겠지만 외모부터가 청수하고 위엄이 있으며 백염을 멋지게 기른 편안한 인상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노인은 치렁치렁한 적발에 먹빛 장포를 입었고 마주치기조차 싫은 눈빛에 붉으락푸르락하는 얼굴도 최악이었다. 꿈에서도 만나고 싶지 않은 그런 노인이었다. 나는 적발 노인이 청수한 외모의..

악마와 거래했다. 29

2017년 11월 16일 아침 일찍 병원에 갔다. 편하게 잠자는 손자를 보자 눈물이 글썽였다. 아무런 원한도 없는 평온한 얼굴이다. 나는 안 여사에게 오늘은 손자 걱정은 말고 일찍 들어가 쉬라고 말했다. 원래 똥고집인지, 순순히 말을 듣지 않는 바람에 결국은 엄포를 놓듯 억지로 쉬게 했다. 오늘은 손자와 그동안 못한 얘기들을 나누며 오붓하게 지냈다. 모처럼 손자의 몸도 씻겨주었다. 한 번씩 꿈나라를 여행하는지, 손자는 즐거운 표정도 지었다가 어두운 표정도 짓는다.. 즐거운 표정을 지을 땐, 얼마나 아름답고 좋은 곳인지 나름 상상을 해본다. 그리고 어두운 표정을 지을 땐, 얼마나 무섭고 공포스러운 곳인지, 대신 꿈속으로 들어가 해소를 시켜 주고 싶은 심정이다. 밤 12시가 다 되어서야 눈을 붙였다. “할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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